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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Sep 26. 2021

바흐와 헨델의 평행률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해에 태어나셨습니다. 동갑내기시지요. 두 분의 생가는 차로 2시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했습니다. 대개의 가정처럼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오래 사셨지만 어머니는 고향 근처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와 멀리 떨어진 외국에서 살다 그곳에서 돌아가셨으니까요. 신기하게도 두 분은 같은 병으로 인해 돌아가셨습니다. 평생 같은 일에 매진하셔서 같은 병을 얻으신 걸까요? 그 일은 신의 영광을 위한 일이었지만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신앙심이 더 깊으셨지요. 두문불출하시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을 하셨으니까요. 반면에 어머니는 좀 다르셨습니다. 신심은 역시 깊으셨지만 세속적인 것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주로 밖으로만 돌으셨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에 행복해하셨습니다. 매우 자랑스럽고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덕분에 저도 행복했지요. 그런 부모님이시라 저를 많이 발전시켜 주셨으니까요. 제가 누구냐고요? 저는 그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난 '음악'입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 간 오갔던 퀴즈가 있습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아들이 누구냐는 문제였습니다. 정답은 음악인데 음악의 아버지가 바흐이니 아들의 이름이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선 모차르트가 맴맴 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음악의 신동이라 불리니 말입니다. 문제를 헨델로 바꾸어도 답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음악의 어머니이니까요. 그때 퀴즈가 생각나 바흐와 헨델의 생애를 압축하여 위와 같은 인트로로 시작해보았습니다. 음악네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음악의 성(性)은 남성인가요? 그렇게 아들이라 단정해 문제를 냈으니 말입니다. 꼭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의 아버지든 어머니든 두 사람 다 머리는 다 길어도 그들 시대의 유명 음악가는 다 남성이었으니까요. 운율상으로도 음악의 자식보다는 음악의 아들이 입과 귀에 딱 떨어지기도 합니다. 요즘에 이런 문제를 내면 바로 아재란 말을 듣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흐와 헨델의 아들이 음악이다라는 퀴즈를 아재 개그라고 발끈한다면 그 발끈함은 정당하다 할 것입니다. 둘 다 남자라 생물학적으로도 말이 안 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떠나 이 두 사람은 평생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에 그렇습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데 같은 하늘을 보고 자랐음에도 이 두 거장은 끝내 서로를 못 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둘 사이에 뭐가 있을 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같은 해, 같은 지역에서 태어났고, 같은 음악을 한 동종업계의 종사자였음에도 그 둘의 연은 끝내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마에스트로 중의 마에스트로 아닙니까? 대개 동시대 동종업계의 대가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로 만나기 마련입니다. 헨델을 존경한 바흐는 그를 만나기 위하여 두 번이나 애를 쓰긴 했습니다. 헨델이 그의 고향 방문 시 그를 만나려 노력을 기울였는데 시간이 어긋나 두 번 다 만남은 무산되었습니다.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 자꾸 밖으로만 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와 조지 프레드릭 헨델(George Frideric Handel)은 모두 1685년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바흐는 1750년에 사망했고 헨델은 그로부터 9년 후인 1759년에 사망했습니다. 바흐는 독일 중부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났고 헨델은 그 북동쪽 할레에서 태어났는데 지도를 검색해보니 두 도시 간 거리는 불과 192km로 우리로 치면 서울과 강릉 정도의 지근거리입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1685~1750)


바흐는 평생 외국에 나가지 않고 독일에서만 살았습니다. 독일에서도 동쪽인 라이프치히가 주 활동지로 바이마르, 베를린, 드레스덴 등이 그의 음악 무대였습니다. 반면에 헨델은 고국인 독일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왕성하게 음악 활동을 하였는데 그중 영국을 좋아해 이 과정에서 그의 국적까지 바뀌게 됩니다. 아예 영국으로 귀화하여 그곳에 눌러앉아 칙사대접을 받으며 살았으니까요. 딱딱하고 엄숙한 독일 분위기보다 자유롭고 활기찬 영국이 더 좋았나 봅니다. 독일인에서 영국인이 된 그는 영국에서 죽었습니다.


바흐는 첫 부인을 상처해 두 번 결혼을 통해 많은 자식을 두었는데 20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들 중 절반인 10명이 성인까지 생존을 하였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속을 멀리하고 평생 순탄하다고 할 음악에만 묻혀 산 그였지만 과연 아버지의 칭호가 아깝지 않게 가문 번성을 위해 많은 자녀를 두었습니다. 바다의 모래알 같이, 밤하늘의 뭇별 같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한 것입니다.


조지 프레드릭 헨델 (1685~1759)


반면에 세속적인 영욕도 왕성하게 추구하며 살던 헨델은 특이하게도 결혼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무자식 상팔자로 산 것입니다. 여성과 이런저런 스캔들은 많았습니다만 혼외자도 그에겐 없었습니다.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삶을 산 그는 과연 이곳저곳에서 비즈니스적인 성공과 도박, 파산, 결투, 뇌졸중 등을 겪으며 부침 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참 같으면서도 다른 바흐와 헨델의 삶입니다.


위 바흐의 이야기에서 불현듯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이 생각납니다. 바흐처럼 평생 일과 공부에 묻혀 산 그였지만 그도 자식 수에서 만큼은 남부럽지 않았습니다. 18남 4녀로 총 22명, 숫자도 많지만 보시듯 압도적으로 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22명 중 10명이 중전인 소헌왕후의 자식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실과 이보다 사이가 좋은 왕은 없을 것입니다. 과연 모든 면에서 탁월하고 모범적인 우리들의 킹 세종이십니다.


같은 해에 태어난 바흐와 헨델은 같은 병을 앓고 같은 사인으로 죽었습니다. 그 둘 모두가 백내장 때문에 고통을 받았고 똑같은 시술을 받고서 죽었으니까요. 더 놀라운 것은 그 시술을 집도한 의사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돌팔이 의사 테일러가 바로 문제의 그입니다. 영국인인 그는 실력보다는 외모와 화술로 궁정 의사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바흐와 헨델의 좋지 않은 시력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게다가 맨날 악보만 보고 사니 갈수록 더 나빠졌을 것입니다.


1750년 바흐가 사는 라이프치히에 그 의사가 왔습니다. 그리고 바흐를 진찰하고 시술을 집도했습니다. 공막천공시술이라는 꼬챙이로 눈을 찌르는, 요즘으로 치면 원시적인 방법이 동원되었습니다. 바흐는 두 번의 시술 후 후유증에 당뇨 합병증까지 겹쳐 그 해 사망했습니다. 허망하게 간 음악의 아버지에 이어 이번엔 어머니 헨델이 그의 눈에 띄었습니다. 1758년 테일러는 런던에서 역시 또 시력에 문제가 있었던 헨델에게도 그 시술을 실시합니다. 그만큼 고통스러우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시술에 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헨델은 그다음 해에 사망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한스러운 일이 9년 차를 두고 독일과 영국에서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팩트는 돌팔이 의사 하나가 인류의 거대 유산을 한 명도 아닌 두 명씩이나,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순차적으로 보내버린 것입니다. (출처 :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드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미래의 창 출판)


바흐와 헨델은 바로크 음악의 대가들입니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오늘날 우리가 듣는 음악의 틀을 만든 시조들입니다. 한마디로 음악의 매뉴얼을 만든 자들이고 문학으로 치면 음악의 문법을 만든 선구자들입니다. 그 둘이 있었기에 이어서 등장한 고전파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이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버지 바흐의 역할이 중요했고 주효했습니다. 일단 음악에 문외한인 저임에도 바흐 하면 딱히 곡의 제목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대위법, 푸가, 평균율, 무반주곡, 합창곡, 오라토리오, 칸타타, 수난곡, 협주곡, 소나타, 가곡 등 많은 음악적 이론이나 장르가 줄줄이 떠오릅니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의미나 해석은 잘 모르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섭렵했기에 그는 평생 1,000곡 이상의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습니다. 예술가 중 다작으로 치면 음악계에선 거의 찾기 힘들고 옆동네 미술계의 고흐 정도가 그에 비견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한 일이라 가능했을 텐데 실제 그는 작품마다 그의 신앙 고백인 그 문구를 서명처럼 써놓았습니다. 그래서인가 그의 음악은 한 집안의 아버지 같은 중후장대한 엄숙함과 경건함이 듣기 전부터 연상이 됩니다. 그리고 바흐라는 이름도 왠지 그렇게 들리고 초상화의 외모도 참 근엄해 보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 Soli Deo Gloria', 바흐의 필사 악보


머니 헨델 하면 오라토리오, 오페라와 수상음악이 우선 떠오릅니다. 그중 영국의 왕 조지 2세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는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합창곡 '할렐루야'의 임팩트가 가장 강하게 다가옵니다. 노래를 듣다가 은혜를 받았나 봅니다. 이후 이러한 기립은  할렐루야 연주의 전통으로 굳어졌습니다. 다소 놀라운 것은 헨델은 바흐에는 없는 오페라를 무려 46곡이나 작곡했습니다. 영화 '파리넬리'에서 보이고 들려진 오페라 '리날도'의 대표 아리아 '울게하소서'의 소름 끼치는 감동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를 쭈뼛하게 합니다. 그리고 승전 축하곡인 '왕궁의 불꽃놀이' 관현악곡은 얼마나 또 경쾌하고 즐거운가요. 이렇게 헨델의 음악은 인간 감정의 고저와 진폭이 매우 크게 다가옵니다. 중심이 딱 잡혀 보이는 바흐에 비해 다소 경박단소하다 할까요? 제가 관상은 전혀 볼지 모르지만 초상화에서 보이는 헨델의 외모도 그의 삶과 음악만큼이나 도발적으로 보입니다.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한 서사시가 원작인 오페라 리날도. 리날도와 아르미다, 프란체스코 하에즈(1791~1882)


사실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음악의 족보집에는 없는 수식이고 규정입니다. 이런 거 만들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충분히 그렇게 불릴만한 동시대의 두 거장입니다. 마치 르네상스 한 시대의 미술에 미켈란젤로만 혼자 있던 것이 아니라 다빈치란 쌍벽의 라이벌도 있었듯 바로크 한 시대의 음악엔 바흐와 헨델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물론 르네상스에 라파엘로, 도나텔로, 보티첼리 등도 있었듯 바흐, 헨델의 시대엔 그들 이외에도 비발디, 텔레만, 몬테베르디 등의 거장들도 있었습니다. 인류에게 이런 시대가 있었고 그 시대의 라이벌이 있어서 후대의 우린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렇게 그들이 풍부하게 남긴 것을 고스란히 즐기기만 하면 되니까요.


바흐와 헨델, 보시듯 다른 면이 많은 것은 당연하나 같은 면도 많았던 그들입니다. 마치 평행이론이 작용하듯 말입니다. 동시대에 일반인도 아니고 위대한 두 인물이 이렇게 요람에서 무덤까지 닮은 삶을 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오히려 극 대조적이라 할 만큼 전혀 다른 삶을 산 그들인데 말입니다. 생전엔 서로 못 보고 살았지만 사후 후대엔 음악이라는 집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연을 맺어 그 둘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아마도 경제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듯 신의 영광을 위하여 음악을 한 그들을 어여삐 여기신 하나님께서 둘의 삶을 그렇게 설계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물론 그의 피조물인 많은 인간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영국인 돌팔이 의사는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요. 그만 없었더라면 노년의 바흐와 헨델이 만든 원숙한 음악들을 우리가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바흐의 고향인 아이제나흐(좌)와 헨델의 고향인 할레(우)


퀴즈로 시작했으니 마지막에도 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또 아재 퀴즈일 수는 있으나 개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 특히 아재 세대 - 가장 많이 들은 클래식은 무엇일까요?


(약간의 시간..) 저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밤 9시만 되면 TV에서 온 나라에 매일 울려 퍼진 음악입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지금은 8시대로 옮긴 MBC TV의 9시 뉴스데스크에 이 음악이 나왔는데 그때 그 뉴스의 시청률은 지금과는 비교불가일 정도로 높은 인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광고비가 탑 수준으로 비쌌음에도 그 프로에 광고를 집어넣으려면 다른 비인기 프로의 광고를 강매로 몇 개를 사야 했으니까요. 그러니 바로 그 앞에 나오는 이 음악의 시청률도 꽤나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바흐가 작곡한 바이올린 G선 하나로 연주되는 불멸의 아리아가 나오면 어린이는 안 졸려도 무조건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G선 음악 위에 고운 여성의 목소리로 아래 멘트가 흘러나왔으니까요. 음악의 아버지가 재워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잠든 이 땅, 새나라의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강한 어린이가 됩시다."



본문 내용 중 바흐와 헨델의 음악적 견해는 음악의 비전문가인  저의 사견임을 전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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