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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Oct 02. 2021

다보스에서 브론테까지

다보스와 브론테..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요? 다보스는 우리에게 다보스포럼으로 알려진 도시이고 브론테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 세 자매인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를 지칭합니다. 사실 이 둘 사이에 연관성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기에 그것을 매개로 각기 다른 두 이야기를 한 글 안에 쓰고 있습니다. 한 지붕 두 가족 글입니다.


지난주 올 추석 연휴엔 그래도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명절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여 그간 떨어져 있던 보고픈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완전한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정부 방역 시책을 따라야 하는 만남이었기에 만나는 가족의 수와 접촉 범위가 정해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제한적이지만 그간 못 봤던 부모형제와 친지를 볼 수 있었으니 쌓인 그리움을 푼 가족들은 오히려 전에 자유롭게 만남을 가졌던 일상의 명절 때보다 더 반가운 만남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만큼 응축된 만남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집에서도 가족들이 모였지만 집 밖 장소 중에 상당한 가족들이 몰려든 장소도 있었는데 그곳은 요양원과 요양병원입니다. 이곳에선 그간 철통 같이 봉쇄해오던 면회를 9월 13일부터 26일까지 한시적으로 특별히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니 가족이 있는 그곳에 2주 동안, 특히 명절인 추석 연휴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물론 사전 예약으로 철저하게 방역 정책을 준수하며 진행된 면회였습니다.  


저희 가족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연휴 기간 중 저는 세 번의 면회를 하였습니다. 마치 남북 이산가족이 극적인 상봉 후 다음을 기약할 수 없어 만날 때 필사적으로 최선을 다하듯 저도 그러했나 봅니다. 이번 면회의 문이 닫히면 또 언제 열릴지 모르니까요. 사실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불가할 줄은 몰랐던 이번 면회였습니다. 요양 병원의 경우는 코로나가 발병한 지난봄부터 거의 1년 6개월 동안 면회가 불가했으니 말입니다. 참 이곳저곳에서 못된 짓만 하는 코로나입니다. 인지상정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가족애까지 차단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서 빨리 완전히 풀려 면회도 자유로워지고 외출도 허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저는 접종 후 2주가 지나 그분 바로 곁에 앉아 접촉 면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슬며시 두 손을 꼬옥 잡아드렸지요.


지금 우리는 자격 요건을 갖추고 심사를 통과하면 국가 지원 하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이런 요양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부자들의 전유물인 시대가 있었습니다. 과거의 이야기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차이는 시설면으로만 보면 의료인이나 의료 시설의 유무에 따라 구별이 됩니다. 요양병원은 병원이니까 당연히 의사와 진료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양원은 간호사와 간병인이 주요 인력이며 주변에 언제든 출동 가능한 병원이 연계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를 누비는 여행이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 아, 코로나 때문에 이것도 못 하고 있네요. - 여행도 역시 과거엔 부자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조선 시대에, 또는 중세 유럽에서 일반 백성이나 성 안의 농노가 이곳저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 자체가 안 될 것입니다.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태어나고 살던 곳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 내에서 평생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니 프로이센의 칸트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그리고 죽은 쾨니히스베르크(오늘날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에서 평생 100마일 밖으로 나가지 않고 살았다는 것은 그가 일반인이었다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름이 널리 퍼진 당대의 유명 석학인 칸트니까 그가 타 도시로 출장 강연이나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현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양과 여행의 위 두 가지 사실을 모으면 과거엔 이것들이 부자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인데, 출현한 시대적 순서로 보면 요양이 먼저이고 여행은 나중이었습니다. 요양이나 여행 모두 집을 떠나는 것인데 신병 치료차 떠나는 요양이 늘어나면서 여행이 발달했다는 것입니다. 여행은 교통, 접근성, 용품, 가이드, 숙박 시설과 식당 등 많은 인프라가 필요하기에 발달이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이뷔통 같은 명품들이 떠오르는 여행 산업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부자들의 여행 가방을 만들었을 것이고, 에르메스는 교통수단인 마구를 더욱 고급화시켰을 것입니다.


반면에 의학이 발달 안 됐던 시절 요양지나 휴양지는 수려한 풍광, 따뜻한 햇볕과 좋은 공기가 있는 곳에 숙소만 갖추면 되었습니다. 병든 부자들은 신병에 좋다는 곳이면 집을 떠나 그곳을 향해 갔습니다. 무엇보다 여행은 여가 선용이라 안 가도 그만이지만 요양은 생명과 직결되기에 서둘러 좋다는 곳으로 떠났을 것입니다. 과거 로마의 황제나 귀족은 요양하러 따뜻하고 건조한 지중해 연안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옛날 진의 시황제는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러 백방으로 사람을 풀었습니다. 만약 동쪽 끝 한반도에 그런 효과를 보는 장소가 있다 하면 그는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을 것입니다. 요양하러 말입니다.


특히 폐와 직결된 불치병이었던 결핵은 좋은 요양지에서의 요양이 필수였습니다. 이때 유럽의 중심에 있는 산악 국가 스위스의 다보스가 결핵 환자의 최고 요양지로 떠올라 발전했습니다. 교통은 안 좋았지만 워낙 풍광이 수려하고 공기가 좋아서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보스를 요양보다 포럼으로 우선 기억합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신년 새해가 밝으면 TV든 신문이든 포털이든 경제 뉴스에 다보스포럼 뉴스가 등장했습니다.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경제 뉴스에 인구 1만 1천에 불과한 이 산골 도시가 헤드라인으로 뜨는 것입니다.


요양지 다보스 & 포럼 다보스

도 그럴 것이 '다보스포럼(Davos Forum)'은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 WEF)'의 다른 이름이라 그럴만합니다. 세계 경제계의 주요 인사들이 눈 덮인 추운 겨울 이 작은 도시에 모여 새로운 해의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예측하고 논의하고 발표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마치 밀라노에서 보여주는 패션쇼가 다음 계절에 유행할 지구촌의 패션을 선도하듯이 말입니다. 이 포럼은 1971년부터 시작되었지만 근자에 우리 귀에 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 위상이 올라갔기에 그럴 것입니다. 최근엔 정치 인사와 할리우드의 유명 연예인까지 참가시켜 영향력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보스는 요양으로 이름을 날렸던 과거나, 포럼으로 이름을 날리는 지금이나 부자들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연회비로 7만 불 이상을 내야 다보스포럼에 참가할 수 있다 하니 말입니다. 개별 이동과 숙박 비용은 별도라고 합니다. 봄여름가을은 요양이었지만 겨울엔 눈이 많고 절경이다 보니 요양과 포럼 사이 스키로도 꽤나 유명해진 다보스인데 스키 비용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스위스  지도, 동쪽 끝 다보스와 생모리츠

저는 2017년 11월 초 동계올림픽을 소재로 한 모 기업의 CF 촬영을 위해 설원을 찾아 알프스를 갔었는데 근처에 과거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생모리츠가 있어 잠깐 경유한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지도를 보니 생모리츠 지근거리에 다보스가 있네요. 아쉽습니다. 그 명성 높은 도시를 코앞에 두고 뒤로 돌아 했으니 말입니다. 1월이 아니었으니 돈 들 일 없이 그 현장을 볼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국내 모 기업의 총수는 10년 이상 개근하며 다보스포럼에 참석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이 있습니다. 그만큼 그 포럼의 밸류를 인정하기에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 1월엔 코로나로 인해 다보스포럼이 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계 경제가 표류하나 봅니다.


결핵이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닌 오늘날 다보스는 이렇게 포럼으로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과거에 결핵은 치명적인 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잘 안 보여서 사라진 것 같지만 2020년 우리나라에서도 2만여 명이나 발병한 현재 진행형 질병입니다. 부끄럽게도 OECD 회원국 중 꼴찌입니다. 그중 65세 이상 노인들이 절반이라는데 다보스 같은 곳에서 요양을 안 해도 조기에 치료만 하면 완치되는 병입니다. 치료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들에 대한 관심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좌로부터> 앤(1820~1849), 에밀리(1818~1848), 샬럿(1816~1855)

여기 결핵의 희생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고풍스러운 그림 속 아름다운 여성들입니다. 이들은 한 가족으로 영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그 유명한 브론테 세 자매입니다. 공통점은 이들 모두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중앙 우측 지워진 사람은 브란웰이라는 브라더인데, 이 그림은 화가를 꿈꾸던 그가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그를 지운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자매님들이 너무 잘 나서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빠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도 31세에 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초상화 좌로부터 '아그네스 그레이'를 쓴 막내 앤 브론테는 29세에 사망, '폭풍의 언덕'을 쓴 둘째 에밀리 브론테는 30세에 사망, '제인 에어'를 쓴 맏언니 샬럿 브론테는 39세에 사망했습니다.


이쯤 되면 결핵은 꽤나 무서운 병 맞습니다. 이렇게나 재능 있고 뛰어난 한 집안 자제들의 씨를 말려 버렸으니까요. 그것도 한창 젊은 나이에 말입니다. 당시 다보스 같은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이라도 했음 그녀들의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개 성공회 관구 였던 아버지의 재력으로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브론테 세 자매는 위의 대표작들을 신기하게도 1847년 같은 해에 출간했습니다. 나이는 연달아 두 살 터울로 샬럿과 앤은 6년이나 차이가 나는데 말입니다. 추론컨대 사이가 좋아서 그랬을 것입니다. "우리 함께 같이 내자" 하며 서로 짜고서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요크셔의 작은 도시 하워즈에서 모두 함께 산 세 자매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움이 큰 그녀들입니다. 아울러 세 자매가 같은 해에 출간한 소설들이 후대에 모두 특급 고전이 되었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해석이 돼야 하나요? 확률을 따져보기도 그렇고 찬사를 뛰어넘어 뭐라 설명드리기 어려운 기적적인 사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오래 살고 유일하게 결혼까지 한 맏언니 샬럿 브론테조차 아이는 없었습니다. 38세에 결혼해 1년 만에 임신한 채로 사망했으니까요. 몹쓸 결핵균이 그녀의 몸을 파고들었겠지요. 그녀들의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84세까지 당시로는 꽤나 장수한 것으로 보아 결핵은 유전병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아니라고 판명도 되었습니다. 자녀를 모두 잃은 아버지 브론테는 샬럿과 고작 1년 남짓한 결혼 생활을 하고 무자식 홀아비가 된 사위가 그를 수발하고 임종까지 지켜주었는데 그는 장인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이듬해 재혼을 하였습니다. 샬럿 그녀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일찍 죽었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쓴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 로체스터 백작보다 백배 멋있는 열부이자 의리의 사나이였습니다. (로체스터 백작에 대한 이러한 반론 아닌 반론은 제가 쓴 에세이집 '지명에서 이순으로의 기행'의 한 꼭지인 '제인 에어 vs 버사 메이슨'이란 에 나옵니다.)


초상화의 상태로 보아  그림은 오랫동안 구겨진 채로 팽개쳐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성 경시 풍조가 심했던 시절임을 입증하는 초상화입니다. 실제 브론테 세 자매는 그녀들의 여성성을 숨기기 위해 위의 작품들도 모두 필명을 사용해 출간을 하였습니다. 남자로 보이기 위해서였겠죠.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대의 얼굴'이라는 테마로 영국 위인들의 초상화 전시회가 열렸는데 위의 구겨진 브론테 세 자매의 초상화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당시 그녀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그 시대 평론가의 글이 초상화 옆에 게시되어 있었는데 그 글을 소개합니다. 19세기 영국의 모습입니다. 아, 21세기가 되어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이 근처에 조차 오지 못하고 있네요.


"젊은 숙녀들이 공부에 진지하게 열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졌다. 특히나 글을 쓰는 일은."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여성들은 지식인 티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응접실에 앉아 바느질을 해야 했다."


<해리엇 마티노(1802~1876) - 데버러 러츠 지음, 박여영 옮김, '브론테 자매 평전' 2018년 재인용>


영국 하워즈에 있는 아버지 브론테의 사제관을 개조한 브론테 자매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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