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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Nov 06. 2021

미국의 주인이 된 사람들 <하>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탄 청교도들은 천신만고 끝에 북미 신대륙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1565년 그 땅엔 이미 유럽인이 세운 백인들의 도시까지 있었습니다.      


    

식민지(Colony)    

     

유럽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던 미국 독립 전 북아메리카 지형도 (출처. 그림 쏙 사진 쏙 세계사)

신대륙에서 유럽 열강의 싸움을 막기 위해 교황 알렉산더 6세는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자마자 2년 후인 1494년 그의 중재 하에 지구의 기준선을 정해 동쪽은 포르투갈이, 서쪽은 스페인이 사이좋게 나눠 먹으라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하게 합니다. 그래서 광대한 브라질은 포르투갈 식민지가 되었지만 서쪽의 국가들은 피사로, 코르테스 등의 정복자들을 동원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 룰에 따라 미국도 에스파니아인들이 가장 먼저 들어왔을 것입니다. 동남부의 플로리다 쪽엔 쿠바계 히스패닉이, 서남부 캘리포니아 쪽엔 멕시코계 히스패닉이 신대륙을 범하기 위해 남에서 북으로 전진하였습니다.     


프랑스는 미국 북부 캐나다의 퀘벡 지역과 당시로는 광대한 서부인 루이지애나 지역을 식민지로 삼습니다. 영국은 당연히 그곳에 이주한 영국인들의 거주지인 동부 지역을 식민지로 삼지요. 그리고 스페인은 플로리다를 비롯한 남부와 오늘날 서부라 불리는 지역을 그들의 식민지로 삼습니다. 유럽의 최강국들이 주인 없는 땅인 북미 신대륙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으르렁대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들 중 최후 승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국이 최후 승자인 듯했지만 그들도 결국 그 땅에서 발을 빼고 교역 최우선 대상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통치했던 영국의 여왕과 왕들은 통치커녕 군림도 못하고 그들의 이름만을 지명으로 미국땅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최후의 승자(Final Winner) 

        

플리머스의 추수감사절, 제니 오거스타 브라운스컴, 1914

미국의 소유권을 차지하게 되는 주인은 가장 먼저 그 땅에 온 사람도, 가장 힘이 센 사람도, 가장 부유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결국은 확고한 철학이 있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필그림 파더스와 그 후예들은 영국인, 스페인인, 프랑스인 등과 그런 면에서 달랐습니다. 유럽 강국들은 광활한 미국 땅을 그들 국가 이익을 위한 착취와 수탈의 땅으로만 생각을 하고 무력과 정치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런 경제적인 이익만을 위해 그들은 때론 땅을 안 뺏기기 위해 전쟁을 하고, 때론 돈을 위해 땅을 팔았습니다. 세인트오거스틴이 있는 플로리다주도 1821년에 스페인이 미국에 500만 달러를 받고 팔은 땅입니다. 그런 것에 철학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남미의 경우 개종과 포교라는 종교적인 명분은 있었을 것입니다.     


필그림 파더스의 미국 상륙은 절실함에서 시작됩니다. 프로테스탄트, 말 그대로 저항성을 가지고 기존 종교의 박해를 피해서 간 것이었으니까요. 이것엔 필그림 파더스라는 이름에서 보듯 순례자의 여정이라는 신화성이 부여됩니다.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출애굽 하여 가나안을 향해 갔던 유대인들처럼 그들은 신대륙을 향해 그렇게 갔을 것입니다. 도착 후 그런 종교적인 절실함은 생존에 대한 절실함으로 바뀝니다. 그들의 종교적인 절심함은 해소되었으니까요. 이제 새 땅에서 그들은 그들이 찬미하는 하나님을, 그들의 종교 예법대로 마음껏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철학이 있다는 것은 이런 종교적인 사상에서 비롯합니다. 그런 강력한 신앙 공동체적인 정신적인 연대와 결속이 상륙 전부터 있었기에 그들은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그 땅에서 믿음과 복음의 뿌리를 내리며 생존하고 다른 세력들보다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땅의 영원한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들보다 13년 먼저 도착해 제임스타운을 건설한 동족 영국인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겐 이들과 같은 철학적 구심점은 없었습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바쁘게 움직였을 것입니다.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  

       

메이플라워 서약서. 원본은 분실. 아래는 서약한 41명의 서명

1620년 11월 매사추세츠주 케이프 코드 곶에 정박한 메이플라워호 선상에서 41명의 성인 남자들은 함께 모여 서약을 합니다. 이른바 메이플라워 서약서, 또는 헌장으로도 불리는 이 문헌은 1776년 독립국가로서의 미국이 선포되기 전이기는 하나 그들이 뿌리로 생각하는 필그림 파더스의 유물이니 미국 최초의 기록물이라는 의미를 부여해도 될 것입니다. 이 서약서엔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함께 살아가자는 신앙공동체로서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의 삶의 방식이 담긴 종교 철학이 개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4년마다 지켜보듯 역대로 미국 대통령들은 취임 선서 시 대법관 앞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합니다. 이것은 지켜야 할 행동 강령으로 1787년 건국의 아버지들이 필라델피아에서 제정한 헌법과, 섬겨야 할 영적인 철학으로 1620년 순례자의 아버지들이 메이플라워호에서 서약한 청교도 정신이 미국이란 국가의 두 초석임을 상징하는 장면일 것입니다. 필그림 파더스 이후 정교가 분리되었어도 종교의 영향력이 그만큼 센 미국임을 반증하는 장면입니다.

    

메이플라워 서약서엔 오늘날의 미국 민주주의와는 다른 영국 국왕 신하로서의 충성 서약도 들어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이룸이지 신분의 자유까지는 시대 여건상 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신대륙 상륙 전 서약까지 마치고 나서야 그들은 하선을 하고 본격적인 미국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라는 성경의 예수님 말씀처럼 이렇게 미국의 첫 주인은 빵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돌아간 것입니다.          



인디언(Indian)         


The First Thanksgiving, 진 리언 제롬 페리스, 1915

여기에 배제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그곳에 오고, 가장 오래 그곳에 살던 토착 인디언들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엄청난 피해자입니다. 무력 비교를 떠나서 기득권자임에도 그들은 전체를 통합하는 공동체로서의 통일된 철학을 생성하고 공유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일방적으로 당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국가라는 개념은 아예 그 자체도 없었겠지요.     


사실 필그림 파더스가 도착 다음 해인 1621년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절대적으로 그들을 환대했던 인디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인디언 중 유럽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스콴토와 정착촌 부근 마사소이드 추장 등 많은 인디언들이 정착과 생존에 도움을 주었기에 그런 경작과 추수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지 않았다면 1620년 첫 해 겨울에 그들 중 절반이 죽은 것처럼 많은 희생자들이 또 나왔을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민들이 인디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많은 이유들 중 최초의 이유라 하겠습니다.        


실제 첫 추수감사절 예배엔 90명에 달하는 그 인디언들도 초대를 받아 그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이지만 올 때는 빈 손으로 오지 않고 선물 겸 제물로 들짐승인 사슴을 잡아와 바쳤습니다. 날짐승 칠면조는 정착민들이 준비해서 지금까지 추수감사절 전통 음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는 것이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인디언들은 그들이 주인인 땅에서 바다 건너 멀리서 온 손님들에게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을 상징하는 첫 추수감사절에 초대까지 받았던 인디언들은 이후 우리가 알고 있듯 고통의 흑역사로 멸족에 이르게 됩니다. 주인에서 완전 탈락된 것입니다.     


1830년 필그림 파더스의 후예인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은 인디언 이주법을 통과시켜 인디언을 당시는 미국 땅이 아닌 몹쓸 땅 미시시피강 서부로 다 추방해버립니다. 어디든 가장 먼저 온 사람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인데 그 좋은 땅이 탐이 나 법을 만들어 내쫓은 것입니다. 영국과의 독립전쟁 영웅으로 대통령이 된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인디언과의 전쟁에서도 영웅이 되었습니다. 마치 주인인 아브라함이 본처 사라가 뒤늦게 아들 이삭을 낳자 여종 하갈과 그녀가 낳은 아들 이스마엘을 추방해버린 것처럼 용도가 다한 인디언은 그렇게 주인에서 이방인으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거꾸로 이방인은 그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아메리카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     


건국 당시 13개 주에서 50개 주로 완성된 미국 (지도에 빠진 알래스카, 하와이 포함) (출처. 미상)

마침내 필그림 파더스의 후예들은 경쟁자들을 다 쓸어버리고 그 땅의 완전한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들만으로 이루어진 독립국 동부의 13개 주에서 이후 50개 주까지 가는 과정은 그들만의 내전인 남북전쟁 빼고는 큰 위기 없이 속된 말로 땅을 줍고 줍는 줍줍의 과정으로 나아갔습니다. 눈덩이가 커질수록 잘 굴러가고 더 커지는 격입니다.  종교의 자유를 찾고자 메이플라워호를 탄 102명을 가지고 동부 대서양의 조그만 항구 플리머스에서 시작한 미국이 마침내 서부 태평양까지 연결된 광활한 대국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국가철학(State Philosophy)     


우리는 종종 철학의 부재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주로 개인보다는 조직과 단체의 방향성이나 지향성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지적성 발언입니다. 그곳에 철학이 없다면 생각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일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때론 목표한 대로 되어도 거기에 철학이 부재했다면 정통성과 지속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곤 합니다. 물성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함께 가야 그 자체로 이상이 없고, 지금도 이상이 없고, 앞으로도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것은 개인이 속한 가장 큰 사회인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존립과 의의, 목적 등의 국가철학이 선결되고 전제된 후 운영과 실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의 철학으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았음에도 국가의 선을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한술 더 떠 가장 이상적인 국가는 철인이 다스리는 국가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굳이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철학을 잘 알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역으로 그에게 철학이 부재하다면, 또는 헛 철학을 좇는다면 국가는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래서인가 최초의 민주적 사회계약론자로 불리는 홉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최악의 스승이라 칭하였습니다. 이상에 치우친 정의와 미덕이 완벽하지 못할 경우 사람들의 불만을 조장해 세상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가서 메이플라워 서약서 앞에 선 필그림 파더스의 이상은 온전하고 확고했습니다. 신대륙의 주도권을 다투던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했을 때 숫자나 힘이나 돈 등의 물성적인 것은 열세였을지 몰라도 그들의 정신을 통합하는 철학적인 면에서는 가장 우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청교도인 그들의 프로테스탄트 종교성이 이렇게나 필요한 철학을 대신한 것입니다.       

   


세계중심화(To the Hub of the Globe)     


세계화 정책이 실시된 후 약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세계화란 이 용어는 이제 거의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세계화가 되었고 그것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는 외국에 나가는 것이 큰일이 아닌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기업의 영어 어학연수 프로그램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입사 전부터 이미 글로벌화된 인재들이 차고 넘치니까요. 또한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것의 강국인 우리는 지금 세계를 손으로 들고 다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세계화 초창기 IMF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것을 조기에 딛고 일어선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의 변방에서 주인으로 우뚝 서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곤경에 빠트렸던 IMF의 대주주가 주도하는 G7 정상회의에도 초청받는 국가가 되었으니까요. 일찍이 세계화에 기치를 올리며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낸 기업 브랜드들의 성과에 힘입어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의 가치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그렇다고 25년 전 IMF가 터지기 직전 세계화와 OECD 가입 등으로 조기에 도달할 거라 착각했던 선진국이 지금은 되었는지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진정한 선진국은 빵의 풍요로만 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성조기가 펄럭이는 옛 스페인 식민지 플로리다의 아름다운 고도 세인트오거스틴

과거 플로리다로 날아가 글을 쓰다 보니 코로나로 죽어있던 저의 여행 본능이 다시 살아나는 듯합니다. 코코아 비치의 파란 하늘, 파란 바다와 헤밍웨이가 살던 키웨스트의 생가를 제가 생각하는 비행기 여행 나이인 다시 또 25년 안에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탈리아 플로렌스처럼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땅이라 하여 플로리다로 불리는 그곳입니다. 혹시 가게 되면 직항인 미국 남동부 허브 공항인 애틀란타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그쪽으로 가야겠지요. 대합실 창밖으로 보였던 세계에서 가장 큰 공항인 애틀란타 공항의 비행기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델타와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허브답게 두 가지 유니폼을 입은 많은 비행기들이 일사불란하게 일렬종대로 줄을 맞춰 마치 항공모함에서 전투기가 발진하듯 순차적으로 플로리다를 향해 쌔엑~ 하고 날아올랐던 그 모습이..



글은 2021 1106 1156 뉴스버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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