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하 Nov 08. 2021

낙엽을 찍으면서 - 1

겨울이 길어지는 건가요? 아님 이상 기온인가요? 베이징엔 눈까지 왔네요. 춥고 차가운 가을비가 새 주 시작부터 뿌려지고 있습니다. 신발이 닿는 바닥은 비와 함께 들이닥친 세찬 바람으로 지전 같은 낙엽이 지천으로 깔려있습니다. 떨어져 나가는 순간 더 이상 쓸모없기에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노래했던 시인의 쓸쓸한 추일서정이 흐르는 딱 그런 날입니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며 찍은 길가 보랏빛 포도 위에 난데없는 비바람에 무자비하게 목이 잘려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입니다. 어제까지는 공활한 하늘, 더운 태양 아래 따사로운 볕을 쬐며 튼튼하게 매달려 있던 그들이었는데 말입니다. 인간 팔자, 아니 잎새 팔자 알 수 없습니다. 가을은 다른 계절에 비해 가장 짧음에도 세 번이나 옷을 갈아 입어 다양한 패션을 연출합니다. 그래서 다른 계절은 갖고 있지 못한 초추, 중추, 만추란 이름으로 기승전결과 같은 그의 생을 보여줍니다. 단풍으로 가장 화려하게 타올랐던 가을은 이제 낙엽으로 바닥에 바짝 그의 몸을 낮추고 있습니다. 화무십일홍인가요? 이제 그들은 쓸려지고 태워지거나 묻히겠지요. 겨울이 도착하기 전에 말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사진 속 낙엽과 아래 등장할 미국 초기의 작가가 저로 하여금 번개성 글을 쓰게 합니다. 이때만 되면 떠오르는 우리 교과서에 던 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도 함께요. 저는 이곳에 산문을 게재하고 있습니다만 시는 그 어느 곳도 게재커녕 써본 적도 없습니다. 시적인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첫 단어부터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방향 자체도 잡지 못해서입니다. 일단 짧게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안엔 없는 시인을 문학가이면서도 대단한 예술가라고도 생각합니다. 제가 산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평가는 차치하고 시와는 달리 일단 이렇게 써지기는 하니까요.


오늘 오후에 읽은 책에서 '월든'으로 유명한 세기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조차도 운문과 산문 중에 산문을 선택한 것이 시인으로서 자신의 심각한 한계를 느껴서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멘트일 것입니다. 하지만 산문에 대해 진실한 이론적 선호도를 발달시켰기에 그의 이러한 선택은 현명했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인용은 그의 초월주의 작품 중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 보낸 일주일'에 나오는 산문과 운문의 비교글입니다. 이렇게 산문 예찬론자가 그였습니다.

 

"위대한 산문은 똑같이 고양되어도 위대한 운문보다 더욱 우리의 존경을 받는다. 그것은 사상의 장엄함이 스며있는 삶을 더욱 영속적이고 높은 수준에 도달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종종 파르티아인처럼 난입을 했다가 다시 물러서고 후퇴하면서 쏘아댄다. 그러나 산문 작가는 로마인처럼 정복하고 식민지에 정착한다."


(출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인생과 예술, 리처드 J. 슈나이더 지음, 유인호 옮김)            

작가의 이전글 미국의 주인이 된 사람들 <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