熟鰒烝숙복증
전복을 통째로 삶아 그 물은 따로 둔다. 전복을 속을 베어 뚫은 후 전복살과 소고기에 여러 가지 양념을 섞어 잘 다져서 진흙처럼 만들어 뚫어 놓은 전복 속에 넣고
실로 꿰맨다. 목알을 묻혀 기름에 튀겨낸 다음 전복 삶은 물에 넣어
세차게 끓인다. 계란을 풀어 넣고 초피 가루를 뿌려 먹는다.
“이름까지 소상히 알고 있었단 말이지?”
“그렇다네.”
“허허! 황이 그 아이가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알 방법은 없지 않은가.”
“그렇지. 그 아이들의 나이와 이름을 모두 아는 이는 한성부 내에서도 몇 안 되네.”
“거 참⋯ 그렇다면 다섯 영혼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네.”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않는 김홍중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유황은, 도대체 정체가 뭘까? 가뜩이나 유황을 둘러싼 소문은 대부분 그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우왕’의 특별한 아들이라니⋯ 사람들의 입과 입이 더해져 만들어진 이 특별성에 이제는 ‘힘’까지 더해질 조짐을 느끼며 두 사람 모두 얼굴이 굳어졌다.
“이 사실을 자네 말고 또 누가 아는가?”
“아직은 없네만⋯ 장담할 수 없네. 유백증의 집에만 해도 믿지 못할 입이 수십이나 되지 않은가. 내일이면 이 사실을 온 도성안 사람들이 알게 될 걸세.”
“불길해⋯ 너무 불길해⋯.”
“그렇지. 거골장의 아들에 얹히는 사람들의 기대 심리가 점점 무거워지는 건 바람직하지가 않아.”
그리고 그 날 최정보와 김홍중이 느꼈던 무거운 불길함은 곧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다음 날. 김홍중은 또다시 한성부 판윤 이상덕의 공첩*을 받았다. 이상덕은 지난 소 도난 사건을 계기로 부쩍 최정보가 다루는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가뜩이나 무거운 최정보의 마음을 더욱 짓누르고 있었다.
*公牒 조선시대 관청에서 발급하는 공문서
거골장 유백증의 자 유황이 흘리는 거짓 소문으로 인해 혹세무민 현상이 도처에 번지고 있으니 한성부 좌윤 최정보는 유황을 불러들여 엄히 문초하고 이에 일로써 순진무구한 백성들이 현혹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백성을 위해 유황을 문초하라⋯ 참으로 얄팍한 이유가 아닌가. 언제부터 판윤 대감께서 백성을 생각하셨다고⋯.”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이었기에 최정보는 그저 혼자 혀를 끌끌 찰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덕으로 말하자면 왕실의 아주 먼 종친일 뿐이지만 그가 휘두르는 권세로 말하자면 대군*을 능가하는 인물이었다. 문제는 그의 권력이라는 것이 대부분 왕실 종친들과의 긴밀한 관계 유지를 통해 얻어지고 유지되고 있다는 점. 이는 즉 그에게 힘을 부여하는 인물들의 한 숨 한 번, 눈 찡그림 한 번만으로도 한성부가 들썩거린다는 것이었다. 한성부 판윤 이상덕으로서의 소신이나 판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오로지 그가 기생하고 있는 힘에 좌우되는 이상덕의 얄팍한 판단은 사시에 하달되었던 공첩이 미시에 완전히 반대로 뒤집혀 전달되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였다.
*조선시대 정궁(正宮)의 몸에서 태어난 적실 왕자(嫡室王子)
문제는, 지난번 소 도난 사건에 이어 이번 유황 사건에 왜 이다지도 그분께서 관심이 지대한 가였다. 이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던 최정보는 불현듯 달단과 이상덕 사이에 있을지도 모를 연관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종친과 달단족이라⋯ 어찌 보면 참으로 무관한 이 두 조직에 대해 최정보가 원가의 연결고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는 데에는 그 가운데 바로 거골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종친들은 개국 초부터 돈 되는 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들 중 누군가는 거골장이 쥐고 있는 소고기에 대한 권리를 탐내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그것을 달단과의 합의에 의해 와해시킬 수 있다면 달단과 종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었다. 종친은 돈과 고기를 챙기고, 달단은 안정적인 도축권을 갖게 되는.
‘이상덕이 고기 맛을 너무 본 건가⋯.’
문제는 최정보는 어쩔 수 없이 하달된 공첩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황이 기대 이상으로 쾌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앉아서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를 한성부 문초실로 데려와 험한 일을 겪게 한다면 유황은 사흘 이내로 죽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이번 사건의 진상은 영원히 묻히게 될 것이었다.
‘어쩐다⋯?’
최정보는 종이를 꺼내 생각나는 단어들을 나열해 보았다. 사방이 꽉 막힌 기분이 들 때마다 나오는 오래된 버릇이었다.
유황
다섯 개의 영혼
혹세무민
지옥불
빙의(망상)
무녀
무당
백지
“⋯백지?”
최정보는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 한성부에 남아있던 참군들을 모조리 들라 일렀다. 그리고 둘은 유백증의 집으로, 둘은 무녀 백지에게로, 그리고 둘은 달단 마을 정촌으로 보냈다. 서윤 김훈과 판관들은 영문을 모른 채 최정보의 신속한 지시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혹세무민 죄를 범한 죄인을 엄히 문초하라는 공첩을 최정보는 무시하고 있는 걸까? 글쎄⋯ 아무튼 이 모든 상황은 한성부 내 간자에 의해 판윤 이상덕에게도 바로 보고되었다. 하지만? 엄중히 문초하라는 지시사항을 어긴 것은 아닌 만큼 한성부의 모든 눈들은 그저 최정보의 다음 행보를 주시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남촌 유백증의 집에 속속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하루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유시경이었다. 유백증의 집 앞마당에는 커다란 멍석이 깔려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작은 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술시가 가까워오면서 수십으로 늘어났고 드디어 유황이 일꾼들의 부축을 받고 멍석 한가운데 앉혀지자 일백에 가까운 숫자로 늘어났다.
“도대체 저들은 어디서 들 모여든 것인가?”
짜증 섞인 김홍중의 물음에 평소 최정보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서윤 김훈 김훈마저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빠른 말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유백증네 집에서 무녀 백지를 문초한다네?”
“그래? 거 참 얼른 가보세. 재밌겠잖은가?”
“그런데 무녀 백지가 무슨 죄를 진거야?”
“몰라? 사람을 죽였다잖아.”
“사람? 누구를?”
“그 왜 개천 다리 밑 독 안에서 발견된 그 아이 말일세.”
“아, 그게 백지 짓이었던 건가?”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온통 무녀 백지가 어떻게 문초를 당할 것인가, 어디쯤 갔을 때 실토를 할 것인가, 무녀는 보통 사람보다 얼마나 더 문초를 잘 견딜까, 날아가는 새도 잡는다는 한성부 관리는 무녀 백지를 어떻게 실토시킬까⋯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추측으로 끊일 줄 몰랐다.
하지만 이윽고 무녀 백지가 나타나고 최정보가 등장하자 구경꾼들의 와글거리던 소리도 일시에 멈추었다. 혹시라도 놓칠세라 모두의 입은 봉해지고 눈은 두 배로 커졌다.
“무녀 백지는 앞으로 나오너라.”
볼 때마다 나이와 얼굴이 달라 보이는 무녀 백지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나이보다 몇십 년은 늙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파랗고 붉은색으로 휘감던 평소의 복장과는 달리 연한 옥색치마에 흰색 저고리를 입고 허리마저 꾸부정한 게 영락없는 칠순의 노파였다. 무녀 백지의 이러한 형태 변화는 늘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신통력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엄청난 힘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당의 신묘함을 증명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일반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무당이 어느 순간 목소리와 몸가짐을 바꾸고 말투까지도 바꿔 전혀 다른 영혼이 빙의되었음을 폭발적으로 보여주는 그 순간이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백지이옵니다.”
“하는 일은 무엇이냐?”
“무녀이옵니다.”
최정보의 곁에 서 있던 서윤 김훈이 묻는 말에 백지는 조근조근 대답했다. 얼핏 봐선 전혀 무녀다운 구석이 보이지 않는 다소곳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눈동자는 김훈이 질문을 할 때마다 무녀 백지가 대답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고개가 김훈에서 백지로 왔다 갔다 물결을 이루었다. 언제쯤 무녀 백지의 진짜 모습이 나올까? 이미 종로 일대에선 독에서 발견된 사내아이를 죽인 게 무녀 백지라는 소문이 무성한 터였다. 신력이 쇠한 백지가 새로운 기운을 얻기 위해 한창나이인 아이를 죽였다던가, 혹은 굿 할 때 쓰는 큰 신칼을 아이의 목에 단번에 꽂아 넣고 콸콸 흐르는 피를 단숨에 마셨고, 그래서 오늘 한성부에 끌려 나왔다는 둥⋯ 백지는 무녀라는 일을 하는 까닭에 무수한 오해를 뒤집어쓰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근거 없는 비난에 너무나 익숙한 듯 다소 지쳐 보이긴 했어도 백지의 표정에는 분노의 감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는 누군가의 몸에 다른 영혼이 들어가 있다면 이를 알아볼 수 있는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무녀와 기대가 잔뜩 들어간 눈초리로 한성부 관리와 무녀 사이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긴장된 분위기에 확 찬 물을 끼얹은 것은 최정보였다.
“에잉? 당연한 거 아냐? 무녀가 그걸 못하면 누가 해?”
“아니, 오늘 저 나리들은 백지를 문초하려고 온 게 아니란 말야?”
“그게 백지가 죽인 게 아니라는 구먼. 아이는 청계천에 오기 전부터 죽어 있었데.”
뜬금없는 최정보의 질문에 사람들은 실망한 눈치가 역력했다. 하긴 그들이 원하는 건 별 거 아니었다. 누군가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나라에서 벌을 주고 잘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착하게 살아가는 자신들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것. 유백증의 마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머릿속엔 그 어디에도 혹 무고한 사람이 다치면 어쩌나⋯하는 걱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건 그들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자신들의 능력 밖인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이 조선 백성들의 현실이었으니까.
“예. 신기를 모으면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다른 영혼이 들어와 있다고 말한다면. 너는 그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더냐?”
“예. 나으리.”
“좋다. 오늘 우리는 혹세무민의 혐의를 받고 있는 유황에게 엄하게 문초를 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유황의 다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굳이 한성부로 오지 못할 상황이라고 판단, 오늘은 한성부 문초실 전체를 이리로 옮겨왔음을 모두들 유념, 이에 맞는 엄숙한 언행을 보여주길 바란다.”
최정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유백증의 집에는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엄한 문초를 받는 게 무녀가 아니라 유백증의 아들 유황이라고? 그것도 유백증의 집에서? 유황이 혹세무민? 언제? 그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되살아난 신묘한 인물인데? 게다가 지옥에도 다녀왔다는데? 지옥에서 장수 몇 명을 몸속에 넣고 돌아와 기운이 엄청 세졌다는데? 그런데 혹시 무민이 뭐람? 사람들의 궁금증은 가지가지, 하늘을 찌르고도 남지만 그 누구도 입 밖으로 끽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자칫 유황의 문초에 덤으로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유황이 창백하나 안온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일꾼들의 부축을 받고 걸어 나온 그는 마당에 깔린 멍석 한가운데에 앉아 가만히 호흡을 내쉬었다. 조금 불편한 듯 보이지만 지극히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유황과는 대조적으로 유황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보이는 유백증의 얼굴은 거듭되는 아들을 둘러싼 감당 못할 일들에 또다시 흑색이었다. 그리고 탄 쌀알처럼 보이는 유백증의 얼굴 뒤로 우뚝 솟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변발에 장신이 그는 한눈에 봐도 달단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유황과 백지를 지켜보느라 구경꾼 속 달단인에겐 관심도 없었다.
“거골장 유백증의 자, 유황은 듣거라. 너는 지난 동지 스무 아흐레 날에 입관 직전 정신을 차린 후 정신을 잃은 사흘 동안 지옥에 다녀왔다고 말한 게 사실이더냐?”
“그렇습니다.”
차분하고 나지막한 유황의 목소리가 유백증의 마당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나올 즈음, 다섯 영혼이 너의 몸속으로 들어왔다고 말한 것 또한 사실이더냐?”
아하⋯. 사람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다섯 영혼이라니? 이는 금시초문이 아닌가? 유황의 몸에 다섯 영혼이 들어갔다면 그는 여섯 영혼이 함께 들어있는 몸뚱이가 아니던가? 그건 다시 말해 신통한 능력을 가진 존재하는 것?
‘정보 자네⋯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건가⋯?’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유황을 문초하는 최정보를 지켜보는 김홍중의 얼굴이 어두웠다. 자칫 이번 일이 최정보에게까지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홍중이었다. 지금 최정보가 달단 범인을 잡고자 저러는 건 분명 아니었다. 그는 달단을 이용해 거골장을 무너뜨리고 그로 인해 소고기를 둘러싼 모든 힘을 장악하고자 하는 ‘그 어떤 권력가’에게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구경꾼들을 일부터 빼곡하게 모아 놓은 이유도 바로 이런 사실이 더욱 널리 퍼지도록 하기 위함으로 보였다.
“그렇습니다. 제 몸속으로 다섯 영혼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너는 알고 있느냐?”
“예.”
“누구인지 말해 보거라.”
“열네 살 먹은 소년 둘 과 일흔아홉 살 먹은 노인, 그리고 서른아홉 먹은 사내와 서른 살 먹은 여자이옵니다.”
아⋯ 사람들의 탄성 소리가 높아졌다. 지금 저 말이 사실이라면, 무녀 백지의 신통력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소문난 알부자 유백증의 아들 유황이 이제는 신통력까지 가지게 된 건가?
“거골장 유백증의 아들 유황은 듣거라.”
술렁거림은 최정보의 한 마디에 단번에 사라졌다. 한성부 좌윤의 한 마디에는 누군가를 죽일 수도 또 살릴 수도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유황은 오늘 이곳,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집에서 죽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과연 한성부 좌윤은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할까?
“지금 네가 한 말은 명백히 혹세무민에 해당된다. 즉! 너는 요사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혼란케 하였고 이로 인해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나아가 이 나라 조선의 근간이 되시는 주상전하의 성안*에 근심을 드리우게 했다. 즉! 이러한 죄상이 사실일 경우 유황은 극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聖顔 임금의 얼굴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공포와, 호기심과, 냉소와, 동정심 등 젊은 유황이 겪어야 할 앞으로의 일들을 각자 생각하며 떠오르는 표정을 감추지 못해 유백증의 마당에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은 다양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여기에 이미 송장처럼 변한 아버지 유백증에 집 안 어디선가 숨죽이며 천지신명께 아들의 무사기원을 하고 있을 유황 모친의 얼굴, 그리고 차갑디 차가운 표정의 달단인의 얼굴까지 더해지니⋯ 이곳은 마치 온갖 표정의 박물관 같았다.
“하지만!”
또 무슨 말이 이어질까?
“만약 유황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를 둘러싼 모든 혐의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나, 한성부 좌윤 최정보는 이 자리에 한성에서 제일 신묘하다는 무녀 백지를 불러 이를 시험케 하고자 한다. 아울러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의 이 시험에 대한 증인자격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니 단순한 구경꾼의 마음을 떠나 진심으로 유황에게 떨어진 죄의 유무를 살펴보도록 하여야 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이제 놀라움과 부담감으로 굳어졌다. 증인? 진심? 우리 같은 백성들에게 이게 뭔 일 이래?
“무녀 백지는 다시 앞으로 나오너라.”
무녀 백지가 나왔다.
“너는 지금부터 네가 가진 신력을 모두 모아 유황의 몸속에 들어있다는 다섯 영혼의 유무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그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를 밝혀내도록 하라.”
“예. 나으리.”
“만일! 조금이라도 살핌에 있어 소홀함이 있다거나 거짓을 고할 시에는 유황에 앞서 무녀 백지부터 엄한 문초를 받을 것임을 명심하거라!”
“예.”
무녀 백지는 여전히 다소곳하게 최정보의 말에 답했다. 백지의 손에는 서른아홉 개의 은방울이 달린 작은 언월도*가 들려있었다. 다소곳하게 걸어 나온 백지가 드디어 유황의 세 걸음 정도 앞에 서자 유황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금 자기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개의치 않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백지는 과연 어떤 결론을 내릴까? 거짓인 게 들통나면 유황은 어떻게 될까?
*偃月刀 초승달 모양으로 둥그렇게 휘어진 칼. 무속인들이 접신 때 주로 사용하는 칼
눈을 감은 유황과는 달리 백지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유황을 노려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지극히도 순종적이고 다소곳하던 백지의 눈동자는 유황을 노려보는 시간과 비례해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미동조차 없던 잔잔한 호수에 달빛이 비치고, 바람이 불면서 파동이 일고, 그 파동이 점차 거센 물보라로 바뀌다가 급기야는 호수 전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일련의 과정 같았다. 무녀의 눈동자는 이 세상을 떠도는 혼령들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던가.
잠시 후. 유백증의 마당에 작은 소리가 들렸다.
딸랑딸랑 딸딸딸랑딸랑 따따따-----
처음엔 방울 하나가 흔들리는 듯한 작은 소리였으니 차츰 이 소리는 두 개, 세 개, 열 개⋯ 등으로 그 방울 소리가 커지더니 급기야는 언월도에 붙어 있는 서른아홉 개의 방울들이 일시에 흔들리는 기이한 상태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청천벽력 같은 힘을 지녔는지 사람들은 놀라고도 두려워 잔뜩 몸을 사렸다. 혼령이 감지될 때마다 흔들린다는 언월도 은방울이 일시에 흔들리다니.
“원진 조상 한진 조상 모두 모두 오시옵소서. 이 몸 조상님들을 위해 이렇게 열려있사오니 모두들 오시어 가슴속 한 맺힌 말씀들일랑 시원하게 풀어놓으시고, 그리하여 이 세상 구석구석에 맺혀있는 한들을 말끔히 해소하시옵소서⋯.”
미친 듯이 주문을 쏟아내는 백지는 이제 더 이상 나이 들고 지친 노파의 모습이 아니었다. 백지의 얼굴은 젊은 여인네의 모습이었다. 발그레한 홍조 기운마저 보이는 두 볼은 영락없이 오랜만에 님을 만나 한껏 부풀어 오른 여인의 심정을 담고 있었다.
“아⋯ 저기에 내 님이 보이네. 님이시여⋯. 난 이렇게 가오만 부디 죽을 때까지 날 잊지 마시오⋯ 흑흑⋯ 내 비록 비구니의 신분으로 한없이 높으신 님을 마음에 담고 그 죄로 이렇게 죽지만⋯ 아아아악! 그러지 마시오! 잘못했소⋯. 아아아악악악! 님이시여! 날 버리지 마시오! 모, 목이 아프⋯오⋯. 내 목이⋯.”
사람들은 백지가 질러대는 고통과 공포로 가득 찬 비명 소리에 두려움을 느꼈다. 누구일까? 저런 고통 속에서 죽어간 여자는?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여인이여.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당신을 떠나보낸 그의 마음도 결코 평안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나 또한 조정의 오해로 불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만호*였오. 하지만 왜구를 섬멸한 나의 업적을 시기한 무리들의 허황된 음모로 인해 난 조정을 능멸했다 하여 참수를 당하였다오. 아⋯ 하지만 나의 사랑 도야지**는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오. 하지만 그들은 도야지 또한 가만 두지 않았지⋯ 난 그녀를 찾아 속죄를 해야 하오. 지켜주지 못한 사내의 마음을 그녀에게 꼭 전해야 하오⋯.”
*萬戶 조선 때 각 진에 배치한 종 4품의 무관
**조선시대 신분이 낮은 여자들이 많이 사용했던 이름
이건? 쩌렁쩌렁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 이제 무녀 백지는 기상으로 충만한 남정네의 얼굴이었다. 그의 말대로 군인이었을 말투와 풍채가 짐작되지만 슬픔과 억울함이 배어 있는. 순식간에 키가 서너 치는 커진 듯 보이는 백지의 변화에 사람들은 더욱 놀랄 뿐이었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백지는 장수에 이어 또 다른 변신을 했다.
“이보게 젊은이. 자네 사정도 참으로 딱하네만. 난 모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죄로 인해 모든 혈족을 잃은 불쌍한 몸이라네. 평생을 글만 읽고 틈나는 대로 성균관에서 동지사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내 아들이 모반을 일으켰다니⋯ 내 아들 문영은 단 한 번도 나라와 주상을 저버린 적이 없는 충절 넘치는 학자였거늘⋯ 그런 아이를 능지처사라니⋯ 며느리는 곡기를 끊어 자결하고 손녀 아이는 노비로 끌려가고⋯ 아⋯ 이리하여 내 절대로 눈을 감지 못할 늙은이가 되어 내 집안을 이 지경으로 만든 그 자들의 마지막을 지켜보겠나니⋯.”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또렷하게 문장을 구사하는 노 선비의 목소리로 한참을 말하던 백지가 드디어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유백증의 마당 한가운데 쓰러져 가슴팍을 겨우 들썩이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정치싸움에서 모든 혈족을 잃고 말을 이을 기력조차 없는 노인이 보였다.
“하이고. 저러다 백지 죽겄네. 시상에나 시상에 저러콤 억울한 혼령들을 몽땅 불러들인 것인가?”
“아니 그럼 저 혼령들이 백지 몸에 있는 거냐? 유도령 몸에 있는 거야?”
“아 이 사람아, 무녀는 그냥 입만 빌려주는 거야. 저들은 모두 유도령 속에 있는 거지.”
“아 그런데 아까는 뭐지? 거 남자애들 거시기도 있다 하지 않았던가?”
“잠깐, 기다려 보자구. 백지가 다시 눈을 떴잖은가.”
송장처럼 식어버렸던 백지가 갑자기 말똥말똥 눈을 뜬 건 자시 후였다. 배시시 웃음까지 띈 백지는 그 자리에서 홀짝 일어나 앉더니 눈을 비비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어라? 여기가 어딘감? 난 우리 누렁이한테 어서어서 풀을 먹여야 하는디? 어메가 서둘러 오라 했는디?”
“쳇. 지금 소가 문제야? 저 재수 없는 노인네 기침 소리 땜에 온 남촌에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데. 형조 정랑이면 다야? 늙은 아비가 각혈을 하면 멀리 암자로 보내던가 해야지 원 동네 사람 다 죽게 생겼잖아! 재수 없게! 어차피 금방 죽을 텐데⋯. 어? 어어어어어어? 난 아무 소리도 안 했어요! 왜들 이래요? 아, 왜 내 목에 줄을 감는 거예요? 할배는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는데 내가 뭘요? 악! 아부지! 나 좀 살려⋯⋯.”
이번엔 또롱또롱한 소년의 목소리였다. 처음엔 어눌하고 착한 목소리, 그리고 나중엔 되바라지고 빠른 말투의 목소리. 그건 분명 두 소년의 목소리였다.
총 다섯이었다. 백지는 그렇게 두 식경 정도 유백증의 마당에서 다섯 혼령의 사연을 각 혼령의 목소리와 얼굴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냈다. 두 소년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젊은 여인네가 울부짖었고, 어느새 젊은 남자가 다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가, 초로의 노인네가 세상을 한탄하는 어조로 바뀌는 식으로 그녀의 혼령빙의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무녀 백지의 말투와 몸짓에 온 넋을 빼앗긴 듯 그 자리에서 괴시*처럼 있을 뿐이다. 다섯 영혼이라니⋯ 그것도 하나같이 억울하고 한 맺힌 영혼이라니⋯.
*怪屍 죽어서 영혼은 없으나 계속 움직이는 시체
“다들 이제 그만 하십시다. 그러다 무녀도 함께 하시기라도 바라는 것이오?”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목소리.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동시에 위엄이 서려있는 그것은 유백증의 아들, 유황의 목소리였다. 무녀 백지에 의해 오르락내리락 울고 소리 지르고 고함치고⋯ 난리 굿판이 되어버린 분위기를 일시에 정리하는 발언. 유황의 목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무녀 백지는 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앉아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지옥 불을 온몸으로 체험하시고, 한 맺힌 다섯 영혼의 억울한 기운을 가두시고, 그들의 입과 눈이 되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신 유도령 님께 소인 무녀 백지 인사드리옵니다. 저는 미천하고 또 미천한 바닥 인생 무녀이오나 그 대가로 무엇이 존엄하고 무엇이 천박한지는 구별할 줄 아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안목을 가지게 되었나이다. 부디 유도령께서는 이곳 세상에 평안 강림하시어 이 땅과 하늘, 물 곳곳에 배어있는 억울하고 갈 곳 없는 혼령들을 대신하는 목소리가 되시어 우리 모두를 지상낙원이 있는 그곳, 교산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무녀 백지는 예를 다해 머리를 조아리며 유황에게 절을 올렸다. 동시에 사람들의 눈은 튀어나올 듯 유황을 향하지만 유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무녀의 절을 받아들였다. 거골장 유백증의 아들에게 조선 최고의 무녀 백지가 절을 올린다? 그 사건은 내일 오전 경이면 온 도성을 가득 메우고 그 담을 넘어 더욱 멀리까지 나아갈 것이었다. 이미 구경꾼들 중 몇몇은 사라진 후였다. 유황에 대한 소문. 그것은 이렇게 직접 본 자들의 입에 그들이 경험한 생생한 체험까지 더해져 온 나라를 흔들 것이었다.
“이보게, 좌윤. 이, 이게 도대체⋯.”
무녀 백지가 유황을 스승 도령으로 선포하고 까맣게 타들어갔던 유백증의 얼굴에 희미한 화색이 돌아오자 어느새 다가온 김홍중이 궁금증의 보따리를 풀어놓으려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최정보는 손으로 급하게 김홍중을 제어하고는 자리를 떴다. 친우의 사라짐과 동시에 김홍중은 민첩하게 정신을 차리고는 유백증에게 손짓을 했다.
“자, 모두들 시장하시고 피곤하실 테니 오늘은 여기서 요기 좀 하시고들 가시게나. 자 자. 먹을 것과 마실 것은 충분하니 그냥 그 자리에들 앉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게들.”
유백증은 능숙하게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사이 일꾼들이 먹을 것을 내왔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탕에 소 부산물이 담긴 맛깔스러운 탕이었다.
“어르신들께서는 따로 조촐하게 주안상을 마련했사오니 안채로 드십시오.”
역시 유백증이었다. 아들이 엄한 문초를 당할지도 모를 이 판국에 그는 언제 준비했는지 기름기 졸졸 흐르는 고기로 가득한 상을 내왔다. 김홍중을 비롯한 한성부 관원들과 몇몇 양반들은 유백증을 따라 안채로 향했다. 솔직히 온갖 혼령들의 억울한 사연을 실감 나게 체험한 직후이니 제정신으로 어두운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럴 때 맛난 고기와 술 한 잔은 필수. 모두들 군말 없이 안채로 사라지고 어느새 유백증의 마당은 텅 비었다. 아니, 저만치 구석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최정보와 난설이었다.
“아까 그자가 맞느냐?”
“⋯.”
“쉽지 않겠지만 기억해 내야 한다.”
“⋯.”
“난설아.”
“아닙니다.”
“아니라⋯ 정확한 것이냐?”
“⋯예.”
하지만 최정보는 난설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무엇을 위해? 난설이 거짓을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최정보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한성부 좌윤으로서 이십 년을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맞서 온 최정보였다. 하지만 이 상황은 그로서도 난감했다.
최정보는 그 날, 유백증의 현방에 분명 옥택이 있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유황에게 떨어진 엄한 문초 대신 무녀 백지로 하여금 유황의 빙의 상태를 오히려 증명하게 하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상덕이 보낸 공첩에 대한 답을 하는 자리에 옥택을 굳이 부른 것이었다. 최정보는 옥택을 처음 본 순간부터 어쩌면 그가 유황을 상하게 한 자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겨울 하늘에 떠 있는 부조화스러운 무지개처럼 옥택의 눈 속에는 본의 아니게 저지른 잔인한 일에 대한 죄책감이 분명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걸 놓칠 최정보가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 심증만으로 가득한 옥택에 대한 혐의를 난설을 통해 입증하고자 한 것이었다. 난설이 옥택을 기억한다면 그건 달단인이 거골장을 해하는 사건에 개입한 증표가 되고 어쩌면 이를 통해 좀 더 높은 곳으로부터 뻗친 음모의 실체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최정보의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난설은 옥택이 그 자리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수한 소고기 냄새가 남촌 유백증의 집을 온통 메우는 그 시각. 최정보는 뻥 뚫릴 것 같았던 길에서 갑자기 커다란 바위를 만난 듯 막혀버리고 말았다. 난설⋯ 이 여자는 누구인가. 이 작은 몸 안에는 어떤 사연, 어떤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걸까. 한성부 생활 이십 년.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진 그의 눈에도 좀처럼 읽히질 않는 마음이었다.
그 시각, 한성 북촌 언덕 위에 자리한 고래 등 같은 이상덕의 집.
“뭐라? 무녀가 진정 그리 했다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요. 그건 분명 자신보다 몇 수 위인 신령들께 보이는 그런 존경심의 절이었습니다요.”
“음⋯.”
“유도령이라는 자의 한 마디에 줄곧 울고 소리 지르고 떠들어대던 다섯 혼령이 동시에 딱! 멈추고 고분고분해지는 걸 수백의 눈이 보았습니다요.”
“음⋯. 그리고 그 모든 걸 최정보 그 자가 획책했다 이거지⋯. 내⋯. 그 자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야. 감히 나한테 맞서겠다 이건가? 가소로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