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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캣 Oct 24. 2019

육식조선 肉食朝鮮08

䘓감 

소의 사골과 질긴 부위의 고기를 넣고 오래오래 고아 국물이 뿌옇게 되도록 
만든다. 소의 힘줄이 흐물흐물할 정도가 되면 선지·콩나물·무 등을 큼직하게 
썰어넣고 된장으로 간을 하여 다시 오래 끓인다. 골수에서 철분이 우러나오고 
선지에서 철분·단백질 등이 우러나와 영양성분이 농후한 국이 된다.




“도망친 노비가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

“너를 쫓는 추쇄(推刷)가 진행 중인걸 아느냐.”

“⋯.”

“그래서 선 씨를 찾아간 것이더냐.”

“⋯.”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난설이 의지할 곳이 선 씨네 가게뿐이었다니. 최정보는 권력의 허무함과 초라함을 동시에 느꼈다. 존경받던 권세가가 딸을 부탁한 곳이 다름 아닌 우시장에서 소부산물탕을 팔아먹고 사는 예전 자신의 노비였다니. 선 씨가 하필 그 인물이었다는 것 보다는 선 씨야말로 허문영 대감이 생각했을 때 가장 믿음직스럽고 안전한 사람이었다는 그 사실에 최정보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품고 있는 태산 같은 모순을 느꼈다. 

아무 말 없이 굳게 입을 다문 난설의 얼굴에는 갑자기 닥친 공포와 슬픔을 느끼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우시장 주점으로 숨어들어가 선 씨네 가게를 찾았던 그 날의 표정이 담겨있는 듯 했다. 조선의 밑바닥 피비린내 나는 우시장에서 국밥을 만들어 팔던 선 씨는 그렇게 자신을 찾아온 은인의 딸을 숨겨주고 그 대가로 결국 불에 타 죽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설농탕의 조리법을 남겼다. 목숨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그가 내놓지 않았던 건 단지 한 음식에 대한 조리법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백성의 손을 잡아준 그의 유일한 주인에게 남긴 그만의 충정이었다. 

최정보는 선 씨의 탕이 왜 그리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인지, 그리고 양반인 자신이 미처 몰랐던 조선 백성의 눈물이 담긴 이 음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슴 깊이 느꼈다. 선 씨가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라 함은 결국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배려해준 허 씨 가문의 딸에게 백성의 눈물을 이해하고 이를 위해 삶을 다하라는 선 씨만의 마음이 담긴 행위였던 것이다. 


“음식이라 함은 우리 몸으로 들어가 생명을 일으키는 힘이 되지요.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배웠습니다. 나리. 감사합니다. 이걸 제게 주셔서.”


최정보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든 난설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얼마나 참았던 눈물일까. 눈물마저도 맘껏 흘릴 수 없는 것이 도망친 노비의 신세가 아닌가. 주야로 자신을 쫓는 추노꾼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를 심장을 옭죄는 심정으로 견뎌야 하는 그녀에게 눈물은 어쩌면 가장 큰 사치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넌 너의 이름을 잊거라.”

“⋯?”

“아무도 너의 이름을 알아선 안 된다.”

“⋯.”

“유백증은 물론 유황에게도 말하지 말거라.”

“⋯.”

“너 자신마저도 너의 이름을 잊도록 하여라. 그것만이 네가 살 길이다.”

“⋯.”

“당분간은 이곳에 있거라. 태풍이 불어오면 그 한가운데로 가야 살 수 있는 법. 모두가 유황을 주시할 때 넌 그 그늘에 숨으면 된다. 그리고 그 종이는 가능한 빨리 불태워 없애거라.” 


난설은 타고난 감각이 있는 듯 했다. 마치 몸집은 작지만 예민한 후각으로 포식자의 이빨로부터 재빨리 도망칠 수 있는 작은 설치류처럼 말이다. 그것이 부친의 명이었든 본인의 판단이었든 강원도로 끌려가기 직전 도망을 친 것, 그리고 선 씨를 찾아갔고 유백증의 현방으로 간 것, 그 후 유황의 곁에 있는 일련의 행동들은 대담함과 동시에 현명하기까지 했다. 보통의 처녀 아이들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아니 사내들이라도 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난설은 그렇게 생각했고, 행동했다. 그 덕분에 선 씨네 전방까지 찾아온 추노꾼들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문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다방(茶房)에서 최정보를 기다리고 있던 옥택은 최정보가 도착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예를 갖추며 인사를 했다. 


“그래, 잘 지냈느냐?”

“예.”

“자, 그럼 오늘부터 나에게 몽골어를 가르치거라. 내 사부로 깍듯하게 모실 터이니.”

“송구합니다. 나리 덕택에 이리 좋은 곳에도 와보고.”


다방은 이조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각 기관에서 필요한 약제를 제조하거나 약차를 만드는 곳이다. 하지만 최정보는 짬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들러 몸에 이로운 차를 마시곤 했다. 더불어 김홍중은 물론 다른 친우들이나 일에 필요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는 장소로도 애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옥택을 이리로 부른 데에는 그만의 속뜻이 있었다. 


“허허. 이곳 다방 말이더냐? 하긴 여기가 아무나 오는 곳은 아니지. 하지만 누구라도 이유가 된다면 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옥택으로 하여금 최정보가 자신을 매우 특별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의도였다. 나아가 유황 사건은 물론이고 다양한 달단관련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장소적 압박감이 필요한 터였다. 게다가 비안정의 눈에 가급적 띄지 않고 옥택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송구합니다. 저같이 미천한 것에게.”

“옥택아. 세상에 미천한 사람은 없다. 이 나라에 사람을 나누는 신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다.”

“⋯.”


아주 잠시. 최정보는 옥택의 눈에 이는 마음의 동요를 본 듯했다. 지금 옥택에게 최정보가 해주는 모든 말과 행동은 보통의 달단 청년들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아닌가. 


“나리.”

“그래.”

“제게 몽골말을 배우고 싶다 하시니 제가 감히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말 해 보거라.”

“저는 언어란 그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담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몽골말은 몽골인들의 정신입니다. 저희 몽골인들에게 자연은 저희 자신이자 우리가 죽고 난 후 돌아갈 고향입니다. 제 이름 설렁거는 무지개라는 뜻이고, 무지개는 땅과 하늘과 물이 만들어내는 자애로운 미소입니다. 설렁거, 설렁거⋯ 이렇게 자꾸 부르다보면 무지개가 만져질 것처럼 제 마음 속에 피어납니다. 몽골어를 배우실 때는 그렇게 사물의 형상을 연상하시면서 하시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옥택의 이야기는 마치 지혜로운 몽골 노인이 초원에 앉아 막 떠오른 무지개를 보며 말하는 듯 아름다웠다. 


“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비록 조선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방인이지만 조선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더불어 뿔뿔이 흩어진 몽골인들에게 길이 기억될 수 있는 조상이 되는 것. 그래서 누구라도 어디선가 무지개를 본다면 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옥택이 이런 말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었다. 최정보가 누구인지, 왜 굳이 자신에게서 몽골어를 배우고자 하는지를 모를 리 없는 옥택이었다. 그런 그가, 조선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건, 근간 달단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난폭하고 흉측한 사건들에 대한 일종의 자기변호가 아닐까? 나아가 설사 자신이 가담했다 하더라도 이는 옥택 개인로서의 의지가 아닌 달단 수장의 아들로서의 의무였음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그래. 내 이제부터 몽골어를 입으로 말 할 때마다 너의 그 말을 가슴에 새기마. 그리고 넌 분명 조선을 위해 의미 있을 일을 할 것이다. 그건 네가 몽골의 아들이자 이제는 조선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몽골족 특유의 변발에 울뚝불뚝 솟은 근육들, 여기에 육척 장신이 풍기는 사내스러움까지. 하지만 정작 옥택을 가장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사내스러운 강한 체구와는 다른 그의 맑고 고운 눈빛이었다. 설렁거, 무지개라니. 이름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를 지칭하는 고유한 단어가 아닌가. 이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그 누구를 위한 호칭. 맑은 눈을 가진 장신의 몽골 청년에게 무지개라는 이름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최정보는 생각했다.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마음을 풀어 놓는 이방의 젊은이에게서는 머나먼 북쪽, 광활한 평원에서 날아온 바람이 불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숨이 탁 트이게 만드는 욕심없는 바람.  


“나리, 여쭙고 싶은 게 있사옵니다.”

“그래. 무엇이더냐?”

“제가 감히⋯ 스승님이라 칭하기를 청하여도 괜찮겠사옵니까?” 

“나를? 허허. 네가 나에게 몽골어를 가르치고 있으니 내 스승은 네가 아니더냐?”


스승님이라⋯ 그 마음을 모를 최정보가 아니었다. 이민족의 아들인 그에게는 조선팔도 그 어디에도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없었던 것이다. 스승. 참 좋은 말이다. 누군가를 스승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귀한 경험이다. 동시에 누군가로부터 스승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 또한 고결한 기쁨이 아닌가. 


“그러려무나. 그렇다면 나도 너에게 뭔가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어쩐다?”

“스승님의 모든 언행이 제겐 빛나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말씀 거두어 주십시오.”


최정보는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을 만큼 괜찮은 인물이던가. 성균관을 졸업하고 한성부에 들어간 이후 이십년이 넘도록 한 일이라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골치 아픈 사건들 속에서 판결을 내리고, 처벌을 하고, 보고를 하고, 다시 사건을 보고 받고⋯. 그 뿐이었다. 그 속에는 무엇을? 어떻게?라는 문제만 있었지 누가? 왜?라는 의문은 없었다. 최정보에게 사건들은 그저 해결해야만 하는 업무이었을 뿐, 모든 범죄행위 속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삶과 아픔 따위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자신을 스승으로 부르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으로 출렁이는 설렁거의 눈을 보는 건 참으로 생경한 기분이 드는 경험이었다. 내가? 이 아이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동시에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신뢰감을 통해 달단인 속으로 좀 더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허허. 알았다. 그럼 이제부터 너와 나는 서로에게 스승이자 제자이니라. 그리고 그건.”

“⋯?”

“너와 나 사이는 세상 누구보다도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겠느냐?”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럼 됐다. 난 너에게 합당한 스승이 되고자 노력을 할 터이니 너 또한 그렇게 애쓰며 살아야 한다. 그리하면 언젠가는 우리 둘 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떳떳한 삶을 살았다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


순간 옥택의 눈에 일렁이는 흔들림은 무엇일까. 최정보는 궁금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하거라. 난 누구보다도 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예.”

“옥택아.”

“예.”

“달단인들이 처한 상황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

“너의 아비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누구에게든 한 무리를 책임지고 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

“하지만 말이다. 그로 인해 네가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한다면, 그 때는 그 누구도 아닌, 네 자신의 의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

“네 아비와 종족을 위해서 한 일이 결국 모두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

초겨울 답지 않은 맑고 따뜻한 날, 다방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신뢰의 기운이 흘렀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향후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을 그런 관계로 두 사람을 묶었다. 

“스승님.”

“그래.”

“달단인들이 난폭하고 파괴를 일삼는 무리라는 것에는 조선인들이 가진 편견이 지나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문제는 그러한 곱지 않은 시선이 저희들을 더욱 단단히 뭉치게 만든다는 겁니다.”

“⋯?”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결속력이 종종 이기적인 집단행동으로 나타나고 이에 폭력성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

“그 날 유백증의 현방에 제가 있었다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최정보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옥택은 사제간에 마땅히 있어야 할 신뢰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랬구나.”

“그 날 유황을 해한 것은 저희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계속해 보거라.”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나, 누군가가 제 아비에게 지시한 일입니다.”

“그로 인해 달단이 얻는 것은?”

“저희 부족이 최소한 굶어죽지 않고 더 이상 도적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 도적이 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난도질했다? 이것은 죄인가? 죄가 아닌가? 굶주린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 갈기갈기 찢어 먹은 것을 일컬어 살인이라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 가엾은 육식동물의 목엔 그 줄을 단단히 옭아쥔 채 쥐락펴락하는, 살기 의해서가 아닌 더 가지기 위해 살인을 일삼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하지만 그것은 분명 옳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너희에게 그 일을 시킨 자가 약속은 지켰느냐?”

“⋯.”

“옥택아. 가진 자들은 더 가지기 위해 가지지 못한 자들을 압박한다. 너희가 더 가지기를 원한다면 어찌 해야 할 것 같으냐?”

“⋯.”

“가진 자의 편에 서서 가지지 못한 자의 것을 뺏는다고 그 이득이 너희에게 돌아갈 것 같으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어찌해야 할 것 같으냐?”

“⋯잘 모르겠습니다.”

“더 가지려하기보다는 함께 나누며 살려고 하여라. 이 땅엔 달단인 못지않게 힘들고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뻔한 말밖에 할 수 없다니. 옥택과 다방에서 나눈 이야기는 최정보에게는 어떤 충격으로 남았다. 옥택은 자칫 자신과 가족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털어 놓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최정보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최정보는 스승이라는 호칭으로 자신을 부르는 제자에게 냄새나는 고서에서나 나옴직한 고리타분한 말만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난 비겁하다. 이 달단 아이보다도 한 없이 작다. 멀쩡한 다리는 가졌지만 나아가길 잊은 채 주저앉은 앉은뱅이다. 눈 앞에서 저질러지는 명확한 불의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 뜬 맹인이다. 아…’

옥택의 행동은 최정보가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뭐어라? 지금 대단하신 운암 최정보를 자성하게 만든 게 고작 그 설렁거라 이 말을 하는 건가? 자네 좀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그 아인 그저 달단족일 뿐일세. 그런 아이가 자네한테 스승이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도 있는 것임을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지 않는가? 난 자네가 흔쾌히 그 고얀 녀석의 청을 들어준 게 더 놀라울 뿐이네. 허허 고 녀석. 앙큼한 구석이 있단 말이지.”


말은 그렇게 해도 김홍중은 옥택을 싫어하지 않았다. 눈치 빠르고 말도 잘 타는 옥택은 김홍중이 일하는 사역원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의 말 비단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와 순식간에 수습을 하곤 했다. 민첩한 데다 영민하기까지 한 옥택은 느려터지고 불평이나 해대는 조선인 참군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일꾼이었다. 게다가 달단 수장인 아비를 둔 덕에 종종 달단 깊숙한 곳의 정보들을 조근조근 알려주기까지 하니 솔직히 설렁거의 입장에서 보면 김홍중으로부터 심부름 값이라도 톡톡히 뜯어내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정보 자네 긴장감을 풀어서는 안되네.”

“뭐라?”

“설렁거 저 자식은⋯ 속을 모르겠단 말야.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는데⋯”

“꿍꿍이라니?”

“아, 그렇잖은가? 저 녀석이 뭐가 부족해 내 수족처럼 움직인단 말인가? 다른 달단들은 다들 뻣대고 콧구멍에 홧김만 잔뜩 담아서 미친 말들처럼 팽팽거리는데 말일세. 장차 뭔가 저지를 녀석임이 분명하네. 오늘 자네한테 한 행동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뭔가 저지를 녀석⋯이라는 김홍중의 말과 함께 옥택은 계속해서 최정보의 머릿속에 남아 맴돌았다. 아니 최정보의 머릿속을 맴도는 건 옥택 뿐만이 아니었다. 옥택의 옆에 있는 유황과 난설. 그 셋은 분명 뭔가 저지를 녀석들이었다. 뭔가 저지르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가. 그건 바로 자신의 강한 의지로 강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세상의 부조리한 부분에 대해 목소리를 냄을 말하는 게 아닌가. 




“이보게 좌윤. 내 하도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


갑자기 한성부를 찾아온 김도술은 자리에 앉자마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김도술 이 자가 투덜거린다? 이는 분명 그의 탐욕을 채워주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또 어딘가에서 새로운 탐식가가 나타나 자네의 자리를 위협하기라도 한 것인가?”

“예끼 이 사람. 누가 들으면 내가 뭐 엄청난 탐식가라도 되는 줄 알겠구먼.”


웃기는 소리다. 김도술은 한성에서도 소문난 탐식가거늘. 정작 그 자신은 그를 부정했다. 이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가 아닌가. 


“그래 무슨 일이길래?”

“아 글쎄. 거골장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네.”

“거골장들이 왜?”

“무슨 연합인지 뭔지를 만들었다지 뭔가.”

“거골장⋯ 연합?”

“그렇다네. 천한 것들이 그저 주는 대로 고기나 끊어 나를 일이지. 뭔 짓들을 하는 건지.”

“음⋯.”

“문제는 말일세. 그것들이 앞으로 소고기 균등유통제를 법으로 만들어 달라 상소를 했다지 뭔가.”

“균등유통제?”


“소고기가 몇몇 이들에게 몽땅 가는 걸 막겠다는 거지.”

“⋯.”

“아, 그러니 그것들이 미친놈들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지들이 뭐라고, 내 참.”

“누가 주동자인가?”

“아, 글쎄 그게 유백증의 아들 녀석이라지 뭔가? 새파랗게 어린놈이 뭘 안다고. 벌써부터 다들 난릴세. 그 놈

이 매운 맛을 못 보고 자라서 그렇다고 괴씸 죄를 붙여 하옥시켜야 한다고⋯.”


최정보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조선의 한낱 하층관리인 거골장이 연합을? 그것만으로도 자칫 대역죄이거늘 소고기균등유통제를? 그 가운데에 유황이 있다? 


“조정의 반응은 어떠한가?”

“근데 그게 말일세. 말들은 많은데 정작 주상 앞에선 한 마디들도 안한다는 게 문제지.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이 어느 땐가? 우금령에 얼마 전 신계우 대감 상소 건까지 분위기가 좀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니 어느 누가 주상의 심기를 어지럽힐 발언을 하겠는가. 다들 눈치만 볼 뿐이지. 비겁하게들. 쯔쯔.”

“음⋯ 그렇지. 딱히 비난할 근거가 없는 게지. 거골장들은 어쨌든 나라에서 그 일을 하도록 지정한 사람들이니.”

“그러니 좌윤. 자네가 유백증을 좀 만나보지 않겠나?”

“내가?”

“자네는 유백증의 아들을 살린 은인이 아닌가? 그러니 우리 쪽으로 오는 물량은 그대로 두라고 말 좀 해보게나. 아, 아무리 그렇다 한들 소고기를 매일 안 먹고 어찌 산단 말인가? 그렇다고 천한 것들 틈에 끼어서 그 국물밥인지 소탕인지 하는 걸 먹을 수도 없지 않은가. 듣자하니 거기엔 소 발톱까지 넣는다 하던데. 우웩 사대부의 체면이 있지, 내 어찌 그런 음식을 먹을 수가 있겠나.”


먹지 않으면 될 일이지.라고 최정보는 김도술의 살찐 얼굴에 대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기름기 줄줄 흐르는 그가 매일 먹어치우는 소는 백성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야 할 국가의 자산인 것이다. 사실 우금령 하에서도 버젓이 소를 잡아 먹어치우는 이러한 권세가들 때문에라도 소고기균등유통제는 법제화되어야 함이 옳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상을 받을 수도, 혹은 대역죄의 빌미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골장들의 움직임은 엄연히 후자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럼세. 내가 유백증을 만나보겠네.”

“아이고 좌윤, 고맙네. 네 자네라면 말이 통할 줄 알았네.”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왕 씨 대신 이 씨가 이 나라의 왕조가 된 데는 ‘바뀌어야만 한다’는 목소리가 힘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최정보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구의 목소리? 그리고 어쩌면 그 목소리는 가진 자들의 목소리가 아닌 가지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는 아니었을까 하는. 




“우리는 소를 죽입니다. 하지만 그 행위는 그 살을 뜯어 먹기 위함이 아닙니다. 도살은 우리의 일이며 소의 몸과 육식을 분리시켜줌으로써 소의 영혼이 상계에 무사히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하고 있는 일은 특정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천박한 행동으로 전락해 있습니다. 그들의 기름진 배를 더 살찌우기 위해 우리가 소 한 마리 한 마리마다 기도를 드리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제를 올리고, 우리의 칼을 적시는 건 아닙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였다. 유백증의 집을 들어서자마자 최정보의 귀를 뚫고 들어오는 그 목소리.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벌판에서 반갑게 들려오는 피리소리인 듯 한 마디 한 마디가 듣는 이의 심장을 찌르고 파고드는 목소리. 


“그런데 왜? 그들은 더 먹지 못해 죽지 않아도 될 소까지 죽이는 겁니까? 왜? 더 먹기 위해 백성들이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는 마지막 소까지 끌어내지 못해 안달입니까? 그건 누구를 위한 도살입니까?”


유백증의 마당에는 수십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얼굴 가득 삶의 주름이 가득한 그들은 누가 보아도 지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듯했다. 그런 그들이. 보리 한 줌도 나오지 않는 유황의 말을 듣고 있다니. 최정보가 마당에 들어서서 한참을 서 있는데도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도포자락 휘날리며 자신들 뒤에 서 있는 사대부를 몰라볼 정도로 그들이 집중한 것은? 


“우리가 잡을 수 있는 소의 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잡은 소는 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육질이 연하고 풍미가 좋은 등심, 채끝, 안심, 양지⋯ 그리고 뜯어 먹는 질감이 독특한 갈빗살까지 질 좋은 도육을 몽땅 가져가는 건 백 명이 채 안 되는 세도가들입니다. 왕께서도 금육을 하시는 이 때, 그들은 버젓이 고기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우역병으로 기르던 소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피눈물을 쏟아내는 이 때, 사방에 숯불구이 냄새를 피우고 있는 그들입니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한 번도 입에 담지 못했던 너무나 솔직한 동시에 무서운 말이다. 지금, 유황은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이 나라 조선의 모든 소는 우리의 손을 거쳐 유통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모든 이들에게 균등하게 가도록 조절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고기균등유통제의 근간입니다. 우리 거골장들, 그리고 신백정들은 모두 이 법을 따를 것이며 이에 따라 우리의 신성한 도살의 행위는 그 의미를 퇴색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정보는 자기도 모르게 행랑채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이 장면, 서 있는 이곳에서 조만간 벌어질 살육의 현장이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현기증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바뀌어야만 한다’는 시대정신은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방식으로 일어나면 안되는 거였다. 이는⋯ 피를 부르는⋯ 변화였다. 


“이 땅의 모든 백성을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죽는 모든 소들을 위하여!”

“소들을 위하여!”

“소들을 위하여!”


유백증의 행랑채 난간이 기대어 있는 최정보의 귀에 수십의 사내들이 목청껏 내는 이 소리가 점점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들은 결코 이들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들이 가진 가장 잔인한 칼로 이들을 난도할 것이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왜 나는 미리 유황을 저지하지 못했던 것일까. 왜 세상의 일들은 이미 저만치 가고 나서야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일까?’




우족탕 牛足湯 

소는 평생을  개의 다리로 천천히 걸어 다닙니다  개의 다리는 급하다고 빨리 뛰는 법도 없고 춥거나 덥거나 힘이 들다고 걷지 않는 법도 없습니다그렇게  년에서  오년을 묵묵히 살아가다가 늙고 병이 들면 그대로 쓰러져 숨을 거둡니다

우족에는 소의 우직함과 근면성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임금님은 우족을 드시면서 일년 내내 소처럼 열심히 일한 백성들의 노고를 생각하신다고 합니다

우족의 물렁뼈는 눈과 관절을 좋게 하고피부재생을 도우며 약으로도 뛰어난 치료효능을 갖고 있어 허약함을 다스리는 약재로 사용하기도 하기도 합니다또한 우족은 산후 젖이  나오지 않는 산모들에게 유용한 약재로 출산으로 인해 약해진 뼈에 영양을 보충해주며 기력회복에도 좋습니다

우족은   마리에  개가 나올 뿐입니다그리고   개의 다리는 예닐곱  식구의 농사를 책임지던 착한 짐승의 다리고 짐승은  나라의 농경을 책임지는  하나의 백성입니다우족탕은  먹겠다는 탐욕으로 백성으로부터 빼앗고백성의 삶을 짓밟으면서까지 자신들의 뱃살을 불리는 포악한 권세가들을 위한 음식이 아닙니다우족탕은평생을  식구로 살아온  가족을 위해 소가 남기고 가는 마지막 선물입니다근면하십시오차분하십시오말보다는 행동이 앞선 이가 되십시오당신의  발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가십시오.


그 시간, 난설은 안채 깊은 곳에서 뭔가를 쓰고 있었다. 선 씨가 쓴 ‘설농탕’에 이어 그녀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께서 내게 바라시는 건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이 세상의 것인 글, 누구나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글, 가진 자들에게는 참회와 겸손을 알게 하고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더욱 근면하고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만드는⋯ 선 씨 아저씨. 감사합니다. 당신은 제게 정말로 큰 선물을 주셨어요⋯.’


최정보로부터 선 씨의 유품을 받은 그 날 부터 난설은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난설은 왜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불러 그렇게 말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날의 사선은 난설에게는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고 더불어 그 순간 아버지의 그러한 명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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