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소개한 모힌더 할머니가 내일이면 인도를 떠납니다. 꼭 우리 어머니처럼 남에게 신세 안 지려고 매번 사양하시는 분. 내가 같은 집에 8년이상 살다보니 알게 된 좋은 인연이십니다.
올해는 집을 처분하시려고 꽤 오래 계셨습니다. 10여년 넘게 손주들을 돌보느라 몇년에 한번씩 오시면 보통 한달 정도 계시다보니 지나칠 때만 인사드리던 사이였답니다. 좋은 분이라는 것은 이웃 지인인 돌리를 통하여 알고 있었구요.
이번에 오셨을 때 관절염에 울퉁불퉁해진 손을 보면서 우리집에서 일하던 아야도 소개해드렸지요. 일은 잘 못하지만 손타지는 않았거든요.
할머니의 우리집 첫 방문때
어쩌다보니 8월에는 미국의 치과의사인 딸과 손주아이들과도 만나게 되어 울 집에서 하루 저녁 초대도 하구요, 집에 계시는 동안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차 마시러 오라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알고보니 할머니는 사우스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부자집 막내딸이었네요... 집안이 광산도 하고 댐건설등 엄청 큰 관급공사를 수행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 고향에서 쫒겨나듯이 다 나와야 했다고 합니다. 현재 오빠와 언니가 다 영국에서 상류층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인도에는 남편 친척들만 계시는데 할머니를 잘 챙기더라고요. 매번 지방과 사프다르정의 조카들이 할머니를 모셔가서 며칠이나 몇주씩 머물게 하더라고요. 아주 큰 부자들이어서 물리치료사까지 불러서 어깨나 다리 마사지를 해주고 운동도 시켜준다고 들었습니다. 아주 우애가 깊은 친척들입니다.
결혼식이 있다고 11월 말에 16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미국에서 왔답니다. 그중에는 90가 넘은 할머니도 계셨는데 온 가족이 한데 모여서 인사나누고 어울리는 모습이, 연세드신 분들을 대접하면서 모시는 아름다운 전통이 좋고 부러웠습니다.
어렸을 적 저희 강씨 문중사람들도 계한다고 일년에 몇번씩 삼오정에서 모여서 불고기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지금도 일년에 두번은 모인다고 들었습니다.
****
남편은 저더러 오지랖이 넓다고 하지만 혼자서 낡은 집에 계시는 분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집으로 초대하려고 하면 계속 사양하시는 바람에 집에서 만드는 음식이나 과일등을 조금씩 가져다 드렸습니다. 저녁은 안드시고 워낙 조금씩 드십니다.
보통 일을 잘 모르는 인도 부자 마담들 같지 않게 하나부터 열까지 꿰차고 있어 놀라기도 했지요. 잔 정도 많아서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하는데 저는 제가 베푸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뭘 주시면 더 부담이 되더라고요. 할머니는 독립심이 매우 강하고 매사 잘 꿰뚫어보시고 일에 관한 한 철두철미하신 것이 꼭 우리 어머니를 보는 듯 합니다. 말도 잘 통하고요...다만 우리 어머니는 일 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ㅡㅎㅎㅎ
할머니는 외출가는 길에 키가 무겁다고 우리집에 맡겨 놓기도 하고 외출 다녀오는 길엔 꼭 둘러서 어디 다녀왔다고 보고하시곤 했지요. 오후 4시면 차이 마시러 오라고 부르는데 정수한 물도 있는데 꼭 수돗물로 차이를 끓여서 약품냄새가 나곤 했어요... 지금 쓰자니 그 기억도 그립네요.
몇달 간격으로 우리 윗집과 옆집에는 새로운 가족들이 이사왔는데 할머니를 통하여 이웃동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아셨는지이웃 호구조사를 꿰차고 계셨어요.
우리 윗집은 지방에서 델리로 전배온 장군가족인데요, 대학생 쌍둥이 딸과 스타트업회사에 근무하는 아들, 어머니는 메이요칼리지의 교장이랍니다. 예전 메이요칼리지의 교장선생님이셨고 제네시스 글로발 학교의 디렉터였던 샤마 선생님 이야기도 나누었지요. 스몰 월드인 듯 합니다.
할머니 아랫집 모든 가족이 총출동해서 굿바이를 했다
토요일 오후에 차와 군고구마를 준비해서 방문해서 티타임. 할머니는 당신의 식기도구를 미리 장안에 다 넣어두셨지요. 제 눈치도 보통은 넘지요? 마호병에 짜이를 담고 찻잔과 스픈까지 가져갔으니 말이에요. 이후에 마지막 짐정리하는 것을 도와드렸습니다. 저처럼 버리기를 아까와 하다보니 결정장애가 있어서 널어놓으신 거에요.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다 장안에다 넣고 가져다 드린 화분은 다시 울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남편이 짐 가방 5개를 아래에 가져다 주고 우리는 우버가 오기를 같이 기다렸는데요, 웬걸... 5분내 온다는 우버는 30~40분 기다려도 나타나질 않았어요. 다른 운전기사로 핸드오버해서는 함흥차사...
남편에게 얘기해서 모셔다 드리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옷을 갈아입고 나는 뭐 아침내 운동하던 차림이었는데 할머니께서 도착하자 같이 들어가자고 강력히 이끄십니다.
그 조카 가족들은 지난번 구루드와라에서 만난 적도 있는 분이에요. 하지만 제 차림이 영... 거기다 저녁시간이라서...
현관으로 들어서니, 세상뜨신 남편 형제 쪽 조카 가족이 할머니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이와 다과 대접받으면서 한시간여 오붓한 대화 나누었습니다. 며느리도 치과의사라고 합니다.
할머니께서 제 얘기를 많이 했는지 관심을 많이 보이셔서 남편과 제가 주로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ㅎ 사람 나름이겠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 뿔뿔히 흩어져서 살더라도 서로간에 정을 유지하면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사는 인도의 대가족제를 실감했습니다.
할머니 무사히 인계했으니, 할머니 공항길 잘 맡아주십시요... 남편과 나는 그새 친해져서 농담을 건내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좋은 일 해서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가벼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