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어머니는 언제나 돈에 민감하셔서 평생을 절약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지금은 여유가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일도 많이 하시니 자식인 제가 뿌듯하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 또한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아서 별로 허투루 돈을 쓴 적이 없습니다. 가성비를 무척 따집니다.ㅎ
요즘 결혼 때 예물로 명품가방이 오가고 무슨 브랜드의 가방이 가격이 오른다고 긴 대기 줄을 서가면서 구입하느라 애쓴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예전에 재난지원금 받아서 명품가방 사러 간다는 뉴스를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글쎄요... 명품가방, 매일 들고 다녀보세요. 아무리 아껴도 일, 이 년 뒤엔 안 들고 다니고 싶어 집니다. 옆이 까이고 흠집이 나서요... 예전 한국서는 금강제화나 엘칸토, 비제바노, 랜드로버에서 나온 가방과 신발을 샀었는데 그것도 처음에만 기분 좋게 들고 신고 다닙니다. 몇 개월 지나면 색깔이 이쁜 니나리찌 노란색 양 새끼 가죽 가방도, 매치되게 산 아이보리 양가죽 신발도 전철 타고 다니던 시절이라 금방 때가 끼고 까여서 비싼 돈은 주고 샀기에 들고 있다가 마음을 비우느라 힘들었답니다.
십수 년 전에 어머니께서 짜주신 가방 두 개가 있습니다. 제겐 명품가방이지요. 저희 어머니께서 그것을 짜고 오십견으로 너무 힘들어하셨어요. 자랑한답시고 몇 번 들고 다니다가 낡아질까 봐 들지 못하고 곱게 싸놓았습니다. 우리 어머니 만드는 솜씨는 정말 대단하세요. 명품입니다!
인도에서는 다밀라노의 튼튼한 소가죽 가방을 좋아합니다. 세일할 때면 몇 개씩 사서 들고 다녔는데 폼나고 좋지요... 한데 나이가 드니 무거운 것이 싫어요. 학교 일 때문에 다니려면 다이어리도 갖고 다니고 서류도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ㅠㅠ 어깨가 휩니다.
3년 전 베트남 가서 원숭이 표 가방을 몇 개 샀어요. 어머니도 드리고 저도 여행용 가방에 데일리 가방까지... 그런데 그 원숭이 표는 천은 가볍고 질기고 좋은데 부착된 것이 가죽이 아니다 보니 닳아서 보기 흉합니다. 그래서 그것도 2년 지나니 못 들고 다니겠고...
올해는 작은 가방이 유행이네요. 지금껏 큰 가방에 다 넣고 다녔는데... 남대문시장에서 산 작은 파우치가방은 장 보러 갈 때 가벼워서 딱입니다. 운동 다니는 요즘은 어깨에 메고 다니는 작은 방수가방이 최고고요.
이렇게 살다 보니 선견지명이 있는 어머니 말씀대로 금이 최고의 재산 수단인 듯합니다. 다음은 제가 최초로 산 제 금붙이 사연입니다.
21년 전 뱅갈로르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당시 둘째 임신 중이어서 열심히 졸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모님요, 이거 우예 작성하는긴기요? 좀 갈켜주쇼..." 깜짝 놀라 깨면서 "네에.. " 하고는 도와드렸습니다ㅡ
그런데 뱅갈로르 공항에서 짐 한 개가 안 나오는 것이에요.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데 그 아저씨도 가져온 짐가방이 안 나왔다고 하시네요... 한참 있다가 보니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외국인 찬스를 살려서 안으로 들어왔어요. 어째 우리 둘의 짐만이 안 나왔네요... 그분은 어쩔까나... 밖에 나가면 누가 기다린다고 계속 중얼거리는데요... 영어도 안되지요, 인도 돈도 없지요, 인도 뱅갈로르는 누가 가보라고 해서 왔답니다... 가보면 누가 나와서 다 안내하고 잘 대접해 준다고 했다네요... 어쩌면! 우리 집으로 가도 방이 많고 커서 하룻밤 주무셔도 괜찮은데 처음 본 사람이 그것도 좀 이상한 사람을 데려가기가 뭐해서 저희가 집 근처에 괜찮고 가격도 저렴한 호텔로 모시고 갔습니다.
밤 12시가 지나서 집에 도착하니 새벽 6시면 꿈나라 행입니다. 그런데 전화벨이 마구마구 울리는 것이에요. 간신히 일어나 받아보니 "사모님요, 한국에 연락했더니 다 해결됐심더" 하는 것이에요. 인도 업체 측에서 짐과 숙소 및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하면서 우리 짐도 다행히 같이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참 잘되었지요! 알고 보니 인도 최고의 의류 수출업체인 고칼다스그룹에서 신시장개척 차원에서 합섬 폴리 공장을 세우면서 그분을 기술이사로 초빙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영어가 전혀 안되기에 저에게 통역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전 쾌재를 불렀습니다. 용돈 벌이 하기에 딱이잖아요.ㅎㅎㅎ
그분 덕분에 많은 좋은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뱅갈로르 주총리인 가우더씨의 손자라고 하는 키도 작은 분이 제일 기억납니다.어찌나 세심한지 저의 부모님이 오셨을 때 모시고 난디힐이랑 구경도 다녀왔습니다. 아주 작은 차였는데 피앙세랑 같이요. 한국서 공장일 배우러 가서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더라고요. 아직도 생각납니다. 고맙고 참 좋은 분이세요.
고칼다스그룹에서 매월 2만에서 3만 루피의 돈을 주었는데 그 돈이 생활비로 쉽게 쓰이는 것을 보고 하루는 보석점에 가서 팔찌를 샀습니다. 10그램짜리 뱅글인데 22K라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 아줌마라고 18K를 속여서 판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20여 년이 지난 아직도 내 팔목에서 그때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귀한 팔찌가 되었네요. 가격이 엄청 올랐어요. 세,네배정도 오른 것 같지요?
저희 어머니께서 돈 생기면 금을 사라고 계속 그러셨는데 자질구레한 은이나 금으로 만든 보석 박힌 반지나 펜던트 등을 많이 샀답니다. 하이얏트 호텔의 시탈다스보석점은 저와 울 둘째 아들이 들러서 차와 간식을 대접받으면서 두세시간을 보내던 장소였습니다. 그 당시는 여러 색깔의 영롱한 보석 박힌 반지 목걸이가 얼마나 이뻐 보이던지 그 안에서 이것저것 끼고 해 보면서 인도 생활의 힘든 것을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주인도 우리를 좋아해서 비싼 엄청난 것들을 걸치고 만지고 끼고 원없이 하도록 접대해 주었지요.
그런데 지나서 생각하니 다 부질없어요. 지난번에 델리 쪽에 지진이 많이 났었기에 중요한 물품 챙기려고 보니 웬 자그만 것들이 한 무더기인지... 예전부터 전쟁이 나면 반지 등 작은 것을 몸에 지니다가 먹을 것과 바꾸는 용도로 쓰라고 하신 어머니의 말을 넘 잘 들은 듯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보면 웃을 일이에요!ㅎㅎㅎ 얼마 전까지 저희 친정집에는 붉은 다라이와 붉은 큰 물탱크가 뒤쪽 베란다에 있었습니다. 난리나도 거기에 물받아서 먹고살려고요. 웃어버리곤 했는데 얼마전 좀비 영화를 보면서 집에 먹을 것, 마실 것을 좀 쟁여놓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