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Netflex 오리지널 웹드라마 <소년심판>
장르 : 범죄 시리즈, TV프로그램·법정, 한국드라마, 드라마
크리에이터 : 홍종찬, 김민석
출연 : 김혜수, 김무열, 이성민, 이정은
시리즈 : 시즌1 (1화~10화)
관람등급 : 18세 청소년관람불가
Prologue
지금은 2022년 바야흐로 OTT(Over the Top) 전성시대다. 경쟁의 속성으로 콘텐츠의 퀄리티는 상향 평준화 되어가고, 넘쳐나는 콘텐츠는 소비자에게 더할 나위없이 다양하고 풍성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다만, 우리는 한정적인 시간 속에서 어떤 콘텐츠를 잘 골라서 볼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킬링타임용 미디어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보성 미디어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후자에 속한다.
흔히 인기를 끄는 로코, 예능 보다는 범죄, 심리, 정보성 영상을 선호한다. 그래서 요즘 핫한 콘텐츠 넷플릭스 오리지널 웹드라마 <소년심판>을 리뷰해 볼까 한다.
Drama Story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드라마는 소년범죄를 다룬다. 무엇보다 고구마 100개를 먹은듯한 답답함은 참지 못하는데, 이 드라마는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스토리라 그리 답답하지 않았고, 김혜수가 연기한 심은석 지방법원 소년부 판사의 역할이 나름 ‘사이다'였기 때문에 참고 볼 만했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스토리의 전개는 나를 더 열받게(?)했다. 동시에, 세상은 동화같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다시한번 사회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았나 싶다. 자신 또한 피해자로 살아가는 심은석 판사는 ‘나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는 말을 마치 좌우명 처럼 여기며, 차갑고 냉철한 판결을 내린다. 감정보다는 ‘원리원칙’을 따지는 판사가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드라마가 더 재밌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각자가 직접 보길 바라며, 보고 난 후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볼까 한다.
살면서 느낀 '어른'의 존재
30살의 어른이 된 나는 ‘어른’이 무엇인지 자주 생각해본다. 자주 생각해본다는 의미 자체가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와 다소 관련 없는 내용일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느낀 어른의 존재를 말해보자면...
아이에게 어른은 믿어야 할 유일한 존재다.
세월호,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등 학생들이 겪는 참사의 규모는 선생님들의 역할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진다. 왜냐, 학생들은 선생님만 믿기 때문이다. 어른은 그만큼 아이들에게 믿어야할, 내가 갈 길을 알려주는 엄청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나도 희한한 경험이 있다. 나를 잘 챙겨주신 은사님의 성함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상처주고 유치하게 괴롭혔던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의 이름은 아직도 또렷히 기억한다. 내가 믿던, 믿어 마땅한 어른이 나한테 상처를 주다니. 난 아직도 기억한다.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른이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부모님들은 ‘이상한 사람이 말걸면 따라가지마~’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요새는 아이들에게 왜 따라가면 안되는지를 가르쳐 주라 한다. 요새는 아이들의 도덕성을 이용해 아이를 유인하는 범죄가 많다고 한다. 이제는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 “00아, 이상한 어른이 너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저는 어린아이에요. 다른 어른들에게 부탁하세요!”라고 말하렴. 어른들은 절대로 어린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단다.”라고. 그렇지. 어른이 아이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른이란 자고로 많은 걸 베풀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엄마도 ‘잘자란’어른에 속한다. 어느날, 가게 알바생 중 집도 없고, 돈도 없어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우리엄마가 선뜻 집도 구해주고 불성실한 태도에도 일일이 가르쳐 가며, 알바생을 케어해줬다. 그래도 다큰 여자아이를 ‘네가 알아서 해’라고 둘 수 없는 엄마의 도덕성이었겠지. 그때 엄마가 너무 존경스러웠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선뜻 한다는 것이 잘자란 어른임을 엄마를 보고 다시 느꼈다. 물론, 드라마에 나온 청소년들처럼 ‘갱생’불가했던 그 학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도움을 행운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은혜도 잊은채 도망가버렸다. 그래도 엄마에게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할 일을 했다. 어른으로서.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스펀지처럼 모든 행동을 따라하는 걸 보고 적잖이 놀랄 것이다. 아이들은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미숙하지만 모든 행동을 따라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건강한 생각을 하는 부모와 어른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새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저 나이만 먹은 미숙한 어른이 많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살기 좋아지는데, 현대병인 '공황'과 '불안장애'가 더 많아지고 있다. 자신의 심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정서적 결핍으로 가득 찬 사람이 어떻게 한 인간을 제대로 키워낼 수 있겠는가.
요새는 주변 친구들이 ‘나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어.’라고 하면 잔소리보다는 “잘생각했어!”라고 칭찬해준다. 국가는 비혼주의가 늘어남을 걱정할 게 아니라, 잘 자라지 못한 어른이 아이를 낳아 길러내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한다. 본인이 책임감이 부족하고,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건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도 스스로에 대해 잘 파악한거고 2차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을테니까.
우리 모두의 탓이다
살인이나 범죄는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 될 순 없지만, 그 사람들에게도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한 인간이 자라는데는 환경이 중요하다. '맞고 자란 애가 자기 자식도 때린다'는 말이 어릴 때 나의 눈엔 너무나 편협하고 색안경과 고정관념에 휩싸인 말이었다.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말하지마세요. 달라질 수 있는 친구에게 프레임 씌우지마세요!"라며 말했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점점 굳은 살 처럼 자리잡고 있어서일까.
누가 뭐라든 우리 모두의 탓이다. 한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사회의 탓, 무관심한 어른들의 탓이다.
앞으로 "난 세상에 피해준거 없어! 피해만 안주고 살면되지~"라고 쉽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피해를 안주고 살았다고? 과연 그럴까?
'잘자란'어른
어른도 배우고 자란다. '잘자란'어른의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난 세상에 피해주고 산게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살 수 있도록 나도 '잘자란'어른이 되고싶다. 드라마가 너무 많은 생각이 들게 해서 글의 두서가 없었던 것 같다. 꼭 드라마를 본 누구라도 '어른'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능력을 베풀 수 있는 어른이 되었고,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