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표정에 무너지던 날들에서 벗어나
한때는 그랬다.
누군가의 얼굴빛 하나, 말투 하나가
내 하루의 온도를 결정했다.
상대방이 말없이 지나치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떠올렸다.
말을 곱게 하지 않았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나.
스스로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이 없으면 상상으로 채웠다.
‘내가 또 실수했겠지.’
‘괜히 기분 상하게 했을지도 몰라.’
그래서 괜히 사과했고, 괜히 죄책감을 가졌다.
누군가 다시 웃으며 말을 걸어올 때까지
나는 하루 종일, 아니 며칠씩 불안 속을 헤맸다.
그제야 “다행이다. 미움받지 않았구나.”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누군가의 감정에 갇혀,
눈치로 촘촘하게 짜인 좁은 방 안에서
조심조심, 작게, 조용히 살았다.
나는 나를 지우며 ‘괜찮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사랑받기 위한 삶이 아니었다.
그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 모든 게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저 사람의 기분에
이토록 인생을 저당 잡히고 있는 걸까?
왜 나는 늘,
나 자신보다 남의 눈을 먼저 살피는 걸까?
그 질문 하나가,
오래 잠겨 있던 문을 열었다.
이제 나는 안다.
누군가의 기분이 나의 책임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각자의 하루를 살고 있고,
그 하루엔 수없이 많은 이유들이 얽혀 있다는 걸.
그 사람의 날 선 말은
내가 아닌 그의 피로일 수 있고,
그 무표정은 나와 상관없는
그저 그 사람의 날씨였을 수 있다는 걸.
물론 아직도 가끔은 흔들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더 이상 그 안에 갇혀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는 더는
사람들의 반응에 나를 구기지 않는다.
내 마음이 무너지기 전에
먼저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나는 이제 벗어났다.
남의 얼굴빛에 따라
내 하루를 저당 잡히던 시간에서,
내 존재를 줄이며
조용히 살아내던 그 방에서,
나는 걸어 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조심스럽지만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나를 기준으로 살아간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한참 동안 돌보지 못했던 나의 마음을
지금은 매일 만난다.
그 마음에게 묻는다.
“오늘 너는 어땠어?”
그리고 그 대답을 가장 먼저 들어주는 사람이
이제는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