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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l 30. 2017

음악을 보다 <꿀벌과 천둥>

역시 온다 리쿠였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시작으로 온다 리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재미있는 일본 소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온다 리쿠의 책을 권하기는 하지만 워낙 그녀의 이야기는 호불호가 강한 편이라 추천할 때마다 늘 조마조마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꿀벌과 천둥>은 의심 없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온다 리쿠의 세계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책이 나왔다. 

어렸을 적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엄마의 소망으로 전혀 피아노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다니고 싶었던 태권도 학원 대신 피아노를 쳐야 했다. 못 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잘 치지도 않았다. 재능은 없지만 재능이 있지도 않을까라는 희망을 한 번쯤 갖게 해줄 피아노 실력 덕분에 없는 형편에도 엄마는 무리해서 피아노를 사주셨다. 그 피아노는 여전히 방 한구석에 장식장처럼 놓여있고 나의 피아노 실력은 그 시절에서 끝났다. 그래서 늘 열망한다. 원하는 한 곡을 막힘없이 칠 수 있기를, 어느 순간 갑자기 음악적 재능이 생겨나기를. 


<꿀벌과 천둥>을 읽는 내내 피아노가 치고 싶었다. 왠지 지금 피아노를 치면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굉장하게 피아노를 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온다 리쿠가 보여주는 음악은 나를 드넓은 들판으로 데려다주기도 했고 심장을 조여올 만큼 긴장 속에 빠져들게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닌 눈으로 읽는 음악적 상상 역시 그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책 속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열정을 바쳐 연주한 곡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곡부터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음악, 이번 <꿀벌과 천둥>을 통해 알게 된 명곡까지 요즘 나는 책에 나온 수많은 곡을 무한 반복으로 듣고 있다. 

<꿀벌과 천둥>은 '제6회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 그 자체다. 1차부터 3차까지의 예선과 본선까지 콩쿠르의 청중이 되어 그들의 연주를 기다리고 감상하고 감동한다. 그리고 콩쿠르에 참가하는 4명의 등장인물이 바로 이 책을 이끌어가는 뮤즈들이다.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천재소년 가자마 진, 한때 천재소녀로 불렸으나 엄마를 잃는 슬픔으로 음악계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에이덴 아야, 재능을 가진 엘리트 마사루 그리고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직장인 아카시까지 <꿀벌과 천둥>은 4명의 인물들을 따라갔다가 다시 콩쿠르를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음악 속에서 그들만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음악이 담겨있는 책은 그 속의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는 즐거움까지 있다. 특히 <꿀벌과 천둥>은 피아노 콩쿠르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그 어떤 책보다 더 많고 다채로운 클래식을 접해볼 수 있고 각각의 곡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가장 빠른 템포로.
진은 쉴 새 없이 어지러운 16분 음표로 반주를 붙였다. 그 틈새에 아야가 초고속 글리산도를 끼워 넣는다.
날아오른다. 어디까지고 날 수 있다.
아야는 피아노를 치면서 어느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너무 높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있었다.
저기까지. 아니, 더 멀리.
지금 우리는 달마저도 뛰어넘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그 순간 아득한 우주 저편을 날고 있었다.
콩쿠르도, 음악의 신도, 모든 것을 잊고 칠흑의 우주를.
"앗!"
아야는 허공에 둥실 떠서, 아득히 점으로 빛나는 별을 올려다보았다.
봄과 수라. 나만의. 저기에.
      
      


음악과 피아노 콩쿠르에 관한 이야기인데 왜 제목이 <꿀벌과 천둥>일까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꿀벌은 음악의 신에게 사랑받고 있는 천재 소년인 가자마 진을 일컫는 말이다. 양봉업자인 아버지를 따라 떠돌아다니는 진을 책 속에서는 꿀벌 왕자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천둥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콩쿠르를 따라 음악을 즐기다 보면 어렵지 않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꿀벌과 천둥>에 등장하는 많은 음악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라흐마니노프 3번'이다. 본선의 첫 번째 연주자인 한국인 김수종이 연주하는 음악이다. 주인공 4인 외에 콩쿠르 참가자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지만 라흐마니노프 3번 연주는 아카시의 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꿀벌과 천둥>이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09년에 우승했던 '하마마츠 콩쿠르'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혹시 이 한국인을 온다 리쿠는 조성진이라고 생각하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 더해지면 몇 배로 풍성해진다.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울림을 주지만 거기에 이야기가 더해지면 소리는 우리 마음 깊숙이 들어와 일상에 지쳐있던 감성을 흔든다. <꿀벌과 천둥>을 읽으며 잠시 잊고 있었던 음악이 주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온다 리쿠의 이야기는 고요하다. 인물들 사이의 격한 갈등과 강한 에피소드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거기에 수많은 음악가들의 위대한 음악이 더해져 <꿀벌과 천둥>은 사람을 마구 끌어들인다. 700페이지의 두꺼운 책이지만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는 중간중간 잠시 멈춰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을 찾았다. 음악의 신이 사랑한 소년의 천재적인 음악에 가슴 두근거렸고,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달려가는 평범한 음악가가 주는 감동 속에 빠졌다. 눈으로 느끼는 음악의 감동이 궁금하다면 읽어라, 그리고 들어라. 그곳이 바로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진행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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