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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Sep 09. 2017

인류학자의 눈으로 본 자본주의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인류학에는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의미의 '문화상대주의'라는 용어가 있다. 인류학에서 다루는 수많은 정의 중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다. 너와 나는 다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끼리 다른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쌓아온 문명과 문화를 나의 시각으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오래 살았든, 남들이 해보지 못했던 많은 경험을 했든,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다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딱 그만큼의 시각 안에서 판단할 뿐이다. 그래서 누구든 상대방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내가 보는 세계가 모든 것이 아님을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는 그렇게 읽어야 한다.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라는 제목만 두고 봤을때는 매일 출근, 지옥같은 회사 생활에 지친 우리들에게 과감히 사표를 던질 용기를 담고 있을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은 책을 읽을수록 보기좋게 날아가 버렸다. 이 책은 '자, 직장생활이 힘들지? 적게 벌고, 하루 벌어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께.'를 말하는 책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많은 나라가 있고 그 중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직접 현지 사람들과 살고 체험하고 느낀 점들을 탄자니아로, 중국으로 가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들려준다. 인류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는 안 될 책임에는 틀림없다. 앞으로 일을 계속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답은 없다. 다만 스스로 해답을 구할 수 있는 시야를 넓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나라는 남아프리카의 탄자니아와 중국, 홍콩에서 아프리카 상인들과 관련된 지역이다. 주류 경제가 무시할 수 없는 비공식 경제가 이끌어 가는 그 곳의 일과 삶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걸까' 라는 의문이 들만큼 척박하고 무질서한 탄자니아에서 그들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책은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삶을 둘러싼 가치, 실천, 인간관계, 그 연속선상에서 나타나는 사회 및 경제의 양상을 밝힘으로써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미래 우위, 기술과 지식의 축척에 근거한 생산주의적이고 발전주의적 인간관에 질문을 던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문화인류학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그것을 지탱하는 지혜, 사회구조, 인간관계를 밝히는 학문이다.


탄자니아 도시민은 '일은 일'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고 한다. 살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을 구하고 일의 높고 낮음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만 생각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무계획적인 삶을 듣고 있다보면 어이가 없을 때도 있지만 그 역시도 내가 살아온 사회를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저자 역시 이야기한다. 우리에게는 삶의 목표와 직업적 정체성 없이 부유하고 표류하는 그들의 삶이 불안해 보일수도 있지만 영세 자영업을 전전하는 그 사람들이 그 곳에서는 사회 경제의 주류이다. 일의 질이 삶을 특정하고 개인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들의 삶에 열등감을 느끼거나 멋지다고 떠벌릴 필요가 없다.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를 읽으며 탄자니아와 홍콩, 중국 등의 비공식 경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들의 돈에 대한 생각과 왜 중국에서 모조품과 복제품이 사라지지 않고 시장이 점점 더 넓어지는지에 대한 이유는 무척 흥미로웠다. SNS 와 송금시스템의 등장으로 돈과 경제가 바뀌고 변화에 대한 실제 사례들을 보며 앞으로 탄자니아의 상인들과 세계의 비공식 경제가 어떻게 변화할 지 궁금해 졌다. 


오늘에 충실해 돈과 시간을 바꾸지 않는 그들의 삶이 옳다고 하지 않는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고 일하는 우리가 틀렸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자본주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실타래 속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내가 속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를 통해 다른 나라, 그 곳 사람들이 일하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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