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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Sep 10. 2017

음악은 삶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리뷰 제목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특히 더 재미있었고 인상깊었던 책의 경우에는 몇 일을 제목만 곰곰히 생각한 적도 있다. 꼭 글을 읽지 않더라도 어떤 책인지 느낄 수 있도록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름 제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에 작가정신에서 나온 박상 작가의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을 읽으며 적어보고 싶은 제목이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쓰고 보니 왠지 너무 성의없어 보이는 것 같아 얼른 지워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내가 쓰고 싶었던 제목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와 함께 한 웃음을 제목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 박상 작가 특유의 병맛 유머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오랜만에 온 몸에 힘을 빼고 편하게 읽은 책이었다. 

왠지 몰랑몰랑한 음악에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가 가득할 것만 같지만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제목과 전혀 다른 음악과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모쪼록 달콤한 사랑이 쩍쩍 달라붙는 날들 되시길'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의 말과 달리 지금 당장 저렴한 항공권을 검색해 카드로 긁은 후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든다. 이 책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랑은 없다. 여행과 일상, 그리고 그 곳이 어디든 자신만의 세계로 만들어 버리는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 있을 뿐이다. 


본격뮤직 에쎄-이 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하나의 CD처럼 구성되어 있다. 이 CD 안에는 하루종일 들어도 절대 지루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음악이 들어있는데 SIDE A에는 세계 곳곳을 여행다니며 겪었던 에피소드와 그 순간을 함께 했던 음악들을 소개해 준다. SIDE B 에서는 저자의 일상과 추억이 담겨 있는 음악과 이야기가 들어 있으며 꽤 멋진 보너스 트랙도 함께 한다. 

책을 소개해주는 책을 좋아한다. 같은 책을 다른 느낌으로 읽은 글도 좋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숨은 보석같은 책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나에게 그런 책이다. 각각의 음악이 저자에게 어떤 추억으로 기억되는지를 함께 돌아보는 것도 좋았고 다양하고 멋진 음악을 선물로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덧붙여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것 같은 저자의 이야기인데도 곳곳에서 의외로 비슷한 부분이 많이 발견되어 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즐거움을 누리고 온 이비자에서 들었던 'Get Lucky'는 현실로 돌아온 후 생의 초라함과 울적함을 튕겨낼 카드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이만한 약을 갖고 산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며 나에게 일상의 피로를 날려버릴 음악과 추억이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다. 


어째서인지 가방에 여권이 들어있었다거나 항공권이 의외로 무척 저렴해서라는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에는 저자가 훌쩍 떠난 많은 나라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뮤직 에세이답게 음악에 집중해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 이 책은 음악보다는 음악 소개를 가장한 본격 여행 뽐뿌 에세이로 다가왔다. 

버스 두 대는 나를 사이에 두고 부르릉 지나갔고, 인간이란 얼마나 고독한 존재인가, 그 순간 생각했다. 마침내 나는 오토바이 다섯 대와 롤스로이스 한 대를 더 피한 뒤 건너편 육지에 상륙했다. 건너고 보니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으며, <걱정 말아요 그대>의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부분을 종교의 기도문처럼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읽을수록 사람을 긴장시키는 책이 있고 처음에 가졌던 기대가 무너져 뒤로 갈수록 설렁 설렁 읽게 되는 책도 있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음악이 스며들어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그의 병맛스러운 유머에 반응하게 되고 키득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자꾸 뭔가를 가르치고 이해시키려는 책들에 지쳤다면 박상이 알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치고 들어오는 저자만의 재치가 가득한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이 그런 피로감을 해소시켜 줄 것이다.


뒷장이 궁금해 덮을 수 없는 소설처럼 고생스러웠던 여행 에피소드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특별한 순간들이 궁금해 주말 오전 잠시 읽으려고 집어든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을 결국엔 끝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재미있는 책 한권 뚝딱 읽은 것도 좋지만 조금씩 아껴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모두 모두 하루에 백 번씩 즐거운 농담이 생각나길 빕니다' 라고 책을 끝내는 문장처럼 지친 일상과 우울한 영혼을 그의 장난같은 농담과 순간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으로 깨우기 위해 사무실 책상 한 켠에 꽂아둘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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