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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an 04. 2018

글쓰기, 창작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무엇이든 쓰게 된다>

김중혁 작가는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먼저 알게 되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엉뚱함이 재미있어서 작가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역시 팟캐스트를 통해 느꼈던 작가의 감성이 책에서도 잘 표현되었다. 이런 느낌의 책을 읽는다면 김중혁 작가풍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생각했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 역시 이전에 느꼈던 김중혁이라는 작가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었다. 바로 옆에서 김중혁 작가 특유의 말투로 시크하게, 글쓰기는 별게 없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물론 세상의 모든 글쓰기에 관련된 책의 결론은 하나다. 하지만 그 하나의 결론으로 가기 위해 독자를 얼마나 격려하느냐, 초보자들도 잘 따라갈 수 있게 얼마나 쉽게 설명해 주느냐가 좋은 글쓰기 안내서인지 아닌지로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김중혁 작가의 창작 글쓰기 비밀을 알려주는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그의 말처럼 당장 노트북을 켜고 뭐라도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창작 글쓰기의 비밀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이라 누군가는 '뭐야~이게 비밀이야?'라며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자신있게 '비밀'이라는 단어를 말한 것은 글쓰기 방법뿐만 아니라 작가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작가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소설가 김중혁의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우리는 책을 열면서 소설가의 서재를 똑, 똑 두드린다. 어서 오세요. 김중혁 작가가 친절하게 문을 열고 그의 작업실 구석구석을 안내해 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안내를 따라 느긋하게 창작의 준비 단계부터 창작 과정, 그리고 작가가 알고 있는 글쓰기의 비밀을 찬찬히 듣기만 하면 된다. 자, 그럼 이제 소설가 김중혁의 작업실로 들어가 볼까?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김중혁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창작의 도구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글쓰기 비법을 알려준다는 책에서 글을 쓸 때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를 소개하다니. 작가들은 어떤 방에서 어떤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지, 그리고 그들은 글을 쓸 때 어떤 음악을 듣는지 알고 싶었다. 작가는 나처럼 이런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간파했구나. 

그는 자신의 모든 창작의 도구들을 친절하게, 직접 그림까지 덧붙여 알려준다. 아주 사소한 에스프레소 잔, 몰스킨 뿐만 아니라 1993년부터 현재까지 글을 쓸 때 사용했던 컴퓨터도 소개한다. 작업실 안의 물건들을 봤으니 이제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봐야겠지. 작가는 글을 쓸 때의 일상과 글을 쓰지 않을 때의 일상을 시간대 별로 정확하게, 마치 일기처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글을 쓸 때 음악이 꼭 있어야 한다는 사람이라면 빼놓지 말아야 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만드는 법'도 무척 흥미로웠다.


많은 책과 여러 작가들의 말을 덧붙여 창작의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글쓰기 방법을 하나하나씩 번호 붙여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각각의 주제에 따라 한 편의 단편과 같이 창작의 방법을 들려준다. 김중혁 작가가 문장 속에 숨겨놓은 비법들을 숨바꼭질을 하듯 잘 찾아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작과 끝을 경험하는 일이다. 글의 시작이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고, 글의 끝까지 달려가본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게 된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재미있게 읽은 이유 중에 하나는 작가의 솔직함이 좋아서였다. 많은 책에서 글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써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어야 하며 글쓰기의 시작은 두 개의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글쓰기 방법을 설명하면서 문장을 써서 벽에 붙이기, 책을 읽을 때 밑줄 치기 등 몇 가지 팁을 소개한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충고를 한데 끌어모았을 때, 그 교집합이 최고의 비법일까. '열심히 쓴다', '꾸준히 쓴다' 정도만 교집합에 남아 있겠지. 충고 따위 무시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해설을 보지 않고 문제집을 풀 때처럼, 작가들의 충고는 모두 잊고 혼자서 밤을 꼬박 지새우며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작은 깨달음이 올 때가 있다. 자기만의 공식이 하나씩 생겨나고, 작가들의 충고가 무슨 말인지 몸으로 알게 되는 때가 온다. 그 사소한 깨달음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의 대부분은 창작 글쓰기에 대한 A to Z를 소개하고 중간에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실전 그림 그리기에 대해 설명한다. 책 속에 함께 하는 모든 그림은 김중혁 작가가 직접 그런 거라고 하는데 '실전 그림 그리기'에서 작가는 예전에 짧은 웹툰을 그렸다고 이야기한다.  '무엇이든 그리게 된다'는 <무엇이든 쓰게 된다>의 별책부록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모아야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흐트러뜨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글을 쓴다는 것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같은 창작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작가의 말처럼 글이 안으로 모으는 집중이라면 그림은 바깥으로 분산해야 하는 집중이다. 그림이든 잘 그리기 위해서는 그림을 못 그리거나, 손재주가 없어서 창피하다는 마음을 버리고 일단 그냥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글도 역시 그렇다. 완벽한 한 편의 글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한 문장, 한 줄부터 시작한다. 일기도 되었다가 넋두리도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 외의 등장인물이 나오고 주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서 글과 그림, 두 가지의 창작에 대해 설명하지만 본질은 딱 하나다.


마치 수능 문제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글쓰기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험 문제가 나왔으니 문제 해설을 보기 전에 먼저, 문제를 풀어보길 바란다.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틀렸다. 문제 해설을 읽어보면 아하, 무릎을 치게 되지만 이미 답을 틀렸으니 어쩔 수가 없다. 아직 나의 뇌는 작가의 뇌가 되려면 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방식이라 조금 낯설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차근히 문제를 풀어보고 작가가 설명해주는 문제 해설을 읽다 보면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작의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018년을 시작하며 이제 더 열심히 글을 써볼까 생각해 봤다. 열심히 써야지, 기필코 한 편의 글을 완성해야지라고 쓰지 않은 이유는 작가의 말처럼 나도 아직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글쓰기 비법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 보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다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쓰기, 창작 방법에 대한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해보고는 싶지만 어떤 가시밭길이 펼쳐질지 잘 알기 때문에 앞서 간 사람들의 작은 조언이라도 들어보고 싶은 가벼운 열정이 자꾸만 글쓰기 책을 읽도록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무조건 쓰면 된다든가, 일단 이런 방법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미 소설가이기에 가벼운 듯 보이지만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안쓰러운 시선과 어떤 글을 쓰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힘들게 나온 것임을 알기에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낸다는 위로가 담겨있다. 

누군가는 책을 통해서 어떻게 글을 처음 써야할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작가의 소품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했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해보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나는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읽고 내가 걸어보고 싶은 길이 쉽지 않은 길임을 다시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필사를 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책을 통해 어렵지만 걸어보고 싶은 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더 확인했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작가 김중혁의 서재에서 나왔다. 맛있는 차를 마시며 작업실도 구경하고 그의 책장에 꽂힌 책들도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건투를 빈다'는 작가의 응원을 들어서 좋았다. 나도 언젠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단 한 줄을 써보고 싶다. 이제, 읽었으니 쓰는 일만 남았다. 무엇이든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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