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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y 01. 2018

다른 시간, 같은 공간을 여행하다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같은 곳을 걷더라도 여행은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추억으로 저장된다. 무작정 걷다가 만난 뒷골목에 눈길을 빼앗기는 사람도 있고 빽빽한 관람객들을 뚫고 마주한 명작이 머릿속에 각인되기도 한다. 이렇게 여행은 누구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겨진다.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은 바로 그런 여행의 발자국을 따라 써 내려간 책이다. 여행지 속에 담겨 있는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을 찾아가는 저자는 그 속에서 영화를 다시 떠올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독자와 함께 나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진이 무척 인상적인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은 그동안 비슷 비슷한 여행 에세이에 지루함을 느낀 사람들에게 색다른 여행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에서 저자는 여행 촬영지를 찾아가 기록을 남긴다. 영화의 한 장면이 담긴 사진을 같은 공간 속에 두고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한다. 다른 시간, 같은 공간을 여행하는 저자의 여행법은 무작정 관광 명소만을 찾아다니며 미션 클리어를 외치고, 여행의 8할은 먹는 거라고 말하는 단순한 나의 지난 여행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책에는 8편의 영화가 담겨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시작으로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미드나잇 인 파리', '노팅힐&어바웃 타임', '클로저', '원스' 그리고 '카모메 식당'까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영화 보기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굳이 찾아서 보는 편이 아니라 8편의 영화 중에서도 본 영화보다 보지 못한 것이 더 많았다. 그래서 저자가 느낀 만큼의 감동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를 읽은 후에 보고 싶어진 영화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 촬영지를 찾아가는 저자의 여행도 흥미로웠지만 영화의 한 장면이 담긴 사진을 같은 장소에 두고 찍은 사진들이 매력적이었다. 여행을 가게 될 곳에서 촬영된 영화가 있다면 나도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의 사진처럼 순간을 남겨보고 싶어졌다. 

책 속에는 영화의 장면과 영화의 대사,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있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다른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들려주는 여러 편의 에필로그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아쉽게 끝나는 한 문장 때문에 가끔은 다음 편 영화를 보기 전에 빠르게 감기를 해서 에필로그를 먼저 읽기도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파리, 수많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우두커니 실체 없는 사랑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런던 그리고 구름처럼 움직이지 않는 듯 움직여서 도착한 핀란드까지 우리는 각각의 나라를 다양한 영화처럼 전혀 다른 이미지로 마주하게 된다. 

자신을 조금 느린 아이라고 말하는 저자처럼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은 천천히 흘러간다. 책 속에서 소개하고 있는 영화와 그 영화에 대해 들려주는 저자의 목소리는 같은 박자를 가지고 있다. 속도가 느껴지지 않는 영화의 한 장면과 그 영화를 담고 있는 저자의 사진이 이 책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탁, 탁, 탁, 탁. 책을 읽는 내내 느린 속도로 가볍게 바닥을 쳤다. 아마 나는 그녀와 함께 골목을 걸었나 보다. 문득 나와 같은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을 읽고 있을 그 누군가는 어떤 자세로 책을 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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