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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l 29. 2019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가가 형사의 첫 번째 이야기 <졸업, 설월화 살인 게임>

한국인이 좋아하는 일본 추리 소설 작가를 말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책이 없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바로 '가가 형사'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 성장해 온 가가 형사는 그의 추리 소설 속 캐릭터임과 동시에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현대문학에서 10년 만에 가가 형사 시리즈 전면 개정판을 출판했다. 7권의 가가 형사 시리즈는 각각이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이며 가가 형사의 성장을 따라가는 한 사람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번 전면 개정판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각 권에 대한 최환욱 작가의 표지화였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난 다음에 보면 표지화가 전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 중 이번에 읽은 책은 가가 교이치로가 형사가 되기 이전에 맞닥뜨린 첫 번째 사건인 <졸업>이었다. 부제로 붙은 '설월화 살인 게임'은 책 속에 등장하는 꽤 중요한 장면으로 어떤 게임인지 알게 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일본 추리소설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졸업> 역시 추리와 드라마가 잘 어우러진 매력적인 책이었다. 청춘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불리는 <졸업>은 청춘이라는 말처럼 대학 졸업을 앞둔 불안한 청춘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가가 형사, 가가 교이치로가 가장 먼저 등장한 <졸업> 속의 사건은 그와 그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학 친구들 중 한 명이 죽었다. 자살처럼 보이지만 그녀에게는 자살할 동기가 없었다.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고 직장도 구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남은 친구들은 그녀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생각하며 그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타살이라고 생각한 순간,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죽음의 진실을 알아가는 중 또 다른 친구가 죽었다. 그것도 모두 함께 있는 자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이제는 모두 용의자가 되어 버렸다. 누가 그녀를 죽였으며 왜 죽인 걸까. 언제나 한발 물러서 있던 가가 교이치로의 부드러운 추리가 빛나기 시작할 때 청춘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진실이 드러난다. 


누구보다 믿었던 사람이 범인일 수도 있다는 사실만큼 두려운 것이 있을까. '범인은 바로 이 안에 있다'라고 외치는 이야기처럼 <졸업>은 학교와 숙소를 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밀실 살인 사건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방에서 죽은 첫 번째 피해자, 모두 함께 하는 다도 의식 중에 죽은 두 번째 피해자 모두 지극히 사적이고 좁은 공간 거기에 고등학교 때부터 뭉쳐 다닌 일곱 명의 친구라는 갇힌 관계 속에 놓여있다. 늘 페이지의 마지막에 탐정이 누군가를 가리키며 '범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외치는 것처럼 범인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가가 교이치로가 형사가 되기 전, 풋풋한 대학생이기 때문인지 <졸업>에서 그의 활약은 눈에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그가 있었고 앞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 가가는 모든 것을 살펴보고 있었다. 다정함과 인간적인 배려가 매력이라는 설명처럼 <졸업>에서도 그의 따뜻함은 이야기 곳곳에서 드러난다. 


가가라는 멋진 캐릭터와  물 흐르듯 쉽게 읽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토리텔링이 합쳐진 이 책은 '추리' 보다 '추리 드라마'에 더욱 가까운 책이다. <졸업>에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이나 굉장히 역동적인 장면은 없다. 마치 살인 자체가 일어나지 않은 일인 양 일상은 아무 일 없이 흘러간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 더욱 흡입력이 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추리 소설을 읽을 때 살인에 대한 동기가 거창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굉장히 엄청난 일이지만 현실 속 대부분의 살인 동기는 사소하고 의외일 경우가 많은 것이 대부분이다. '와, 죽일만 하네.' 보다 '저런 걸로 사람을 죽여?'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이미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추리 소설과는 또 다른 공포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졸업>은 누구나 겪어 봤을 법한 청춘의 한때를 보여준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툭 던지듯 일어나는 누군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났지만 일상은 변하지 않았고 유난스러움 따위는 없었다. 평온한 책 속의 분위기가 마치 현실 같아서 더욱 소름 끼치는 <졸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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