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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31. 2019

에세이, 누가 쓰기 쉽다고 하는가

<어쩌다 보니 사중 인격 : 손수현>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에세이 쓰기에 도전하지 않았을까. 마치 일기처럼, 때로는 마구 써 내려간 메모 같은 에세이를 읽으며 '아, 이 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구나.' 그렇게들 생각한다. 물론 나 역시도 그랬다. 참 건방진 생각이었다. 


누군가 에세이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감동이 흘러넘치게 쓸 수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당장 펜과 종이 한 장을 건넬 것이다. 조건은 단 하나다. 글을 쓴 다음에 사람들 앞에서 그 글을 읽을 것. 에세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나를 사람들 앞에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 누군지도 모를 무리 앞에서 벌거벗은 채 서있는 기분을 이겨내는 것. 


몇 달 전 콘텐츠코리아 랩에서 에세이 쓰기 수업을 들었다. 에세이 쓰는 것을 배워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강사분이 브런치를 통해 에세이 작가로 데뷔하신 분이라 관심이 갔다. <어쩌다 보니 사중인격>의 손수현 작가님. SNS를 통해 책 소개 글을 보고 책도 읽었다. 센스 있는 제목도 마음에 들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브런치에 올린 글로 작가로 데뷔하셨다는 저자 약력에 호기심이 생겼다. 고민 없이 수강신청을 했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 첫 수업에 참석했다. 


이대로 라면 정말 알찬 수업을 들었다는 훈훈한 결말로 이어져야 할 테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수업 도중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 작가님께도 말했었는데, 첫 수업을 듣는 내내 다음 수업에 참석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었다. 


에세이 수업은 글을 공유하고 함께 공감하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쓴 글을 처음 만나는 수강생들에게 읽어주고 그들의 감상평을 듣는 수업 방식에 당황했다. SNS에 책 리뷰를 올리고는 있지만 나는 내 글에 자신이 없다. 리뷰 또한 최대한 내 이야기를 배제하고 쓰기 위해 노력하는 편인데, 에세이는 온전히 나를 드러내야 하는 글이 아닌가. 그런 글을 사람들 앞에서 읽어야 한다고?! 오 마이 갓...


토요일 에세이 쓰기 수업이 끝나면 그날 저녁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계속 고민했다. 이번 주 수업은 빠질까, 차라리 사정이 생겨 수업을 취소해 버릴까. 꾸역꾸역 수업을 들으면서 다행히 에세이 수업 방식에 대한 당혹감은 사라졌다. 하지만 에세이 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나는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해 굉장히 잘못 알고 있었구나. 내게 에세이는 부끄러움을 극복해야 쓸 수 있는 글이었다. 


한 편의 소설처럼 써보기도 했다. 내가 겪었던 한 장면을 카메라를 통해 보듯이 썼다. 내가 썼고 글 안에도 내가 있지만 알고 보면 내가 없는 이상한 글이 나왔다. 부끄러웠다. 에세이 수업을 들으며 수강생들과 글을 공유하는 순간뿐만 아니라 홀로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에세이를 쓰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수업 막바지에 이르러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사님과 일대일 피드백을 하던 날, 에세이를 쓰고 있으면 벌거벗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우문현답. 나의 유치한 고백에 대한 강사님의 현답 덕분에 그동안 가졌던 에세이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는 시작했다. 


길었던 에세이 쓰기 수업이 끝난 후, 손수현 작가님의 <어쩌다 보니 사중인격>을 다시 읽었다. 같은 책이지만 수업 전과 후의 느낌이 전혀 달랐다. 수업 중간중간 들려준 이야기들. 작법보다 에세이를 쓰는 태토에 관한 솔직한 경험담이 그제야 제대로 이해되는 것 같았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황혼기에 접어든다면 에세이 쓰기가 편해질까. 적어도 지금 내게 에세이는 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글쓰기이다. 그럼 안 쓰면 되지, 왜 자꾸 힘들다고 하면서 쓰려고 하는 거냐.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맞다. 안 쓰면 그만이다. 그걸 잘 알면서도 끊임없이 에세이를 썼다 지우는 이유는 에세이 쓰기를 통해 알게 된 사유와 치유의 순간을 더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 혼자 보지만 혼자라도 부끄러운 에세이 한편을 썼다. 쓸 때마다 이걸 저장할지, 삭제할지 고민한다. 그럴 때 <어쩌다 보니 사중인격>을 꺼내 휘리릭 책장을 넘긴다. 덜컥 손가락에 걸리는 페이지를 스윽 읽고 덮는다. 수업 시간에 들려준 작가님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저장 버튼을 누른다. 오늘도 나는 한 페이지만큼의 부끄러움을 이기고 에세이를 썼다. 


그때, 이 책과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여전히 '칫, 에세이 정도야 마음 먹으면 쓸 수 있는거지.' 라는 오만한 착각에 빠져 살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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