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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Dec 13. 2019

할머니에게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와 할머니>

우리 집은 낮에 볕이 잘 드는 남향 주택이다. 모두 일하러 나가고 나면 우리 집은 '우리' 집이 아니라 '동네 고양이'들의 쉼터로 변한다. 따뜻한 현관 계단,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옥상 입구와 담벼락은 그들만의 공간이 된다. 가끔 낮에 대문을 열려고 하면 마당 안쪽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난다. 간혹 용감한 녀석들은 뻔뻔하게도 현관 앞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누워있다. '누군데 우리 집에 찾아온 거냐!' 이런 표정으로 말이다. 


우리 집이 동네 고양이들의 쉼터로 사용되고는 있지만 정작 내게는 고양이가 없다. 가끔 마당 창고에 새끼와 쉬었다 가는 고양이들이 있다. 배고플까 봐 우유도 주고 물도 놔두곤 한다. 하지만 어째 이 녀석들은 나를 집사로 선택할 마음이 없는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한 마리쯤은 우리 집을 앞으로 자기가 살 집으로 생각해도 좋을 만한테 참 야속하다. 


<고양이와 할머니>는 부산 재개발 지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그 곁을 함께 하고 있는 고양이가 나오는 포토에세이이다. 머리에 꽃을 올리고 새초롬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책 표지의 고양이가 시선을 끈다. 


짧지만 여운이 남는 글과 고양이와 할머니의 일상을 잘 보여주는 가슴 따뜻한 사진이 들어 있다. 자신을 고양이 중증 환자라고 소개하는 작가의 고양이 사진에는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굳이 '나는 정말 고양이를 좋아해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사진 속 길고양이들은 참 예쁘다. 


심각하거나 무거운 이야기는 없다. 사람들이 떠나고 곧 사라질 재개발 지역에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들과 고양이에 대한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글과 사진들이다.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있지만 사진에서는 뭔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사진에 나오는 할머니들 중 한 분은 별이 되셨다는 작가의 말이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안다는 쓸쓸함과 처연한 듯한 고양이의 표정이 그렇게도 잘 어울리는지 <고양이와 할머니> 속 사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고양이와 할머니> 포토에세이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더욱 샘솟게 한다. 나처럼 어중간하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책 속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고양이 집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 정도인데 말이다. 


화려한 고양이는 없다. 예쁘게 잘 다듬어진 고양이도 없다. 골목에 주차된 차 밑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길고양이들이다. 늘 마주쳐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고양이들의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되어 좋았다.


언젠가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이 그런 말을 했다. 고양이는 외로운 사람이랑 잘 맞는 동물이라고. <고양이와 할머니>를 읽으며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어떤 뜻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울은 길고양이들에게 더욱 가혹한 계절이다. 담장 위에 보이던 치즈 고양이도 요즘 보이지 않고, 옥상에 만들어 놓은 작은 텃밭 위에서 늘어지게 자던 회색 털의 고양이도 통 보이질 않는다. <고양이와 할머니> 속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니 우리 집을 자기네 집 삼아 지내던 그 고양이들은 어딜 갔을까 궁금해졌다. 


<고양이와 할머니>에는 할머니와 고양이들의 따뜻하고 소중한 순간들이 담겨 있다. 그들의 함께 하는 일상이 있다. 그리고 다들 떠나버린 그곳에 아직 고양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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