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나 영화를 미리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을 보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아는 척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히 알려줄 때가 많다. 책 또한 그렇다. 다양한 시각으로 소개해 주는 많은 도서 리뷰를 읽고 나면 몇 권의 책을 후다닥 읽은 기분이 들곤 한다. 자신의 생각을 중심으로 구절 구절을 일목요연하게 집어주는 글이 있는가 하면 완벽히 깔끔하게 줄거리를 알려주는 사람도 있다. 가끔은 영화를 소개하는 제목에 '스포일러 포함'이라고 적듯이 너무 자세한 책의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는 리뷰라면 역시 '스포일러'라는 단어를 포함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물론 바쁜 일상 속에서 책 한 권 제대로 읽기는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먼저 알려주는 책 소개를 읽고 조금 더 자신에게 맞고 필요한 책을 찾는 것일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여러 사람의 리뷰를 읽으면서 재미있을 것 같아 구입하기도 하고 나와 맞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되면 리뷰만으로 만족하고 넘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절대 줄거리 소개와 리뷰만으로 읽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책이 있다. 책의 두께와는 상관없다. 저자의 유명도와도 관련이 없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절대 읽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 눈으로 천천히 집어가며 필요한 부분은 줄쳐가면서 읽어야만 하는 책이 있다.
몇 편의 리뷰를 조합해서 읽은 후에 '나는 <호모 데우스>가 생각보다 재미없더라, 왜 유명한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꽤 두꺼운 이 책은 시작부터 일단 사람을 주춤하게 만든다. 그리고 인문학이니 미래네 하는 어려운 단어들의 나열들은 특히 평소에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첫 장을 들출 수 없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호모 데우스>의 발간을 기다린 이유는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절대 몇 편의 리뷰로 알 수 없는 방대하고 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나에게 2016년 최고의 책이었다. 읽는 내내 입이 쩌억 벌어질 정도로 엄청난 그의 지식에 감탄했고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재미있는 저자의 유려한 글 솜씨에 두 번 반했었다. 일 년 내내 <사피엔스>는 정말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쉽게 읽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분명 <사피엔스>는 모든 사람들이 신나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인간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살아와서 역사가 되고 현재까지 이어져 왔는지를 알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2017년이 되었고 드디어 <사피엔스>의 뒤를 이어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가 출판되었다. 제목에서부터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명쾌하게 알 수 있는 <호모 데우스>는 저자의 전작인 <사피엔스>를 읽어보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이 집중하며 읽을 수 있다.
<호모 데우스>를 읽기 전에 단어의 뜻을 찾아봤다. Deus는 신을 뜻하는 단어이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이 <호모 데우스>로 바뀐 것이다. 저자는 도대체 어떤 곳에서 신이 되고자 하는 인류를 본 것일까.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계의 물결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나는 막연하게 신기술이 발달했고 기사들을 통해 앞으로 변할 세상을 어렴풋이 이해하고만 있었다. 하지만 <호모 데우스>를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은 더 빨리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들은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나타난 것들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 역사 속에서 반복되었고 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모 데우스>는 인류의 미래를 막연히 예측하는 책이 아니다.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겪어온 일들을 설명한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함께 이야기하고 독자들을 이해시키면서 현재가 왜 이러한지, 그리고 앞으로의 인류에게는 어떤 일들이 생겨날 것인지에 대해 마치 수백 명이 함께 자유롭게 토론하는 강의처럼 질문과 대답, 반박과 논리를 자유롭게 펼친다.
세계를 정복한 호모 사피엔스부터 현재를 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와, 앞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3부로 나눠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본격적인 문제에 앞서 인류에게 닥친 새로운 의제에 관해 먼저 들려주는데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렇구나'를 중얼거렸다. 기아, 전염병과 감염병, 전쟁에서 벗어난 인류에게 어떤 새로운 의제들이 생겨난 것일까? 저자는 그 자리를 대신해서 불멸에의 도전, 행복의 열쇠 찾기가 들어왔다고 말한다.
역사학자들이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그것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이다. ~ 역사 공부의 목표는 과거라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 과거를 영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관점을 <호모 데우스>를 통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역사에 대한 생각이 한쪽만을 바라본 편향된 것이었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보이는 그대로만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의 새로운 기본 의제를 던지며 저자는 말한다. "시간을 되짚어 호모 사피엔스가 누구이고, 인본주의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으며, 왜 인본주의의 꿈을 이루려는 시도가 그 꿈을 해체할 수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기본 얼개이다."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줄을 쳤다. <호모 데우스>를 읽은 사람이라면 줄 쳐놓은 구절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고,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호모 데우스> 안에는 이런 굉장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꼭 읽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제1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를 정복하다' 와 같은 큰 주제 안에 '2 인류세'라는 작은 주제, 그리고 그 안에 뱀의 자식들, 유기체는 알고리즘 등 다양한 지식이 담겨 있다. 짧은 단편소설을 읽듯 가장 작은 주제의 이야기부터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20년 전 일본인 관광객들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온갖 것을 찍는다는 이유로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그렇게 한다. 당신이 인도에 가서 코끼리를 볼 경우, 당신을 코끼리를 보면서 '내 느낌이 어떤지' 자문하지 않는다. 당신은 스마트폰을 꺼내 코끼리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뒤 2분마다 한 번씩 '좋아요'가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확인하느라 바쁠 것이다. ~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것을 왜 쓰는가? 새로운 모토는 이렇게 말한다.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
21세기의 검열은 사람들에게 관계없는 정보들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쟁점에 대해 조사하고 논쟁하느라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다. 고대에는 힘이 있다는 것은 곧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힘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 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혼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우리는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처음 <호모 데우스>를 읽기 시작할 때 메모지를 옆에 두고 요점과 의미들을 적어가며 책을 읽었다. <호모 데우스>를 제대로 정리해서 읽지 않은 사람들, 읽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곧 메모를 포기하고 책 읽기에만 집중했다. 내가 어떻게 요약을 하고 이해한 내용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아도 <호모 데우스>에서 말하고 있는 수만 가지의 이야기들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 속의 인류에 대해 설명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를 예측하는 이 책을 단 몇 줄, 몇 페이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류가 겪어온 일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통해 신이 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궁금하다면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가 그 답을 알려줄 것이다. 당신이 현생인류인 사피엔스라면, 그것만으로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