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를 읽고
2020년 독서 모임에서 마지막으로 선정된 책은 김혜진 작가의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였다. 책을 좋아하는 동생이 인스타그램에 인상 깊은 평을 남겼던지라 언젠가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제목을 보고 82년생 김지영과 비슷한 내용일까 추측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책은 요양 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와 그녀의 딸에 관한 이야기다. 딸이 동성과 연애의 감정으로 동거하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엄마는 처음에 인정하지 않고 자식을 회유하지만 결국 딸의 삶을 인정하게 되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참고로 책에 남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읽으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책 속에 나오는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예전에 보험 설계사, 식당, 가사 도우미 직업을 거쳐 지금은 요양 보호사로 일을 하고 계신다. 특히 요양 보호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고 보진 못했지만 엄마가 일하는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자식의 입장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고,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두라는 말씀을 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본인보다는 자식을 위해 일을 하는 모습이 너무 닮아서, 나는 내 행복이 가장 중요한데 나도 자식이 생기면 엄마처럼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엄마처럼 자식에게 헌신할 자신은 없다.
제목은 딸에 대하여 였지만 딸이 아니라 아들에 대하여 라고 제목을 바꿔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단, 내가 여자의 입장이 아닌 남자이기에 책에서 말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불편함은 100%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는 책을 통해 동성애, 비정규직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닌 우리가 당장 생각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넌지시 던진다.
벌써 다음 달이면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성인이 되고 갑자기 동성 친구를 사랑한다며 내게 커밍아웃을 한다면 나는 쿨하게 인정할 수 있을까. 평소에 동성애를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나였지만 막상 그런 질문을 받으니 바로 대답할 순 없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내 모습을 보며 실망했지만 이게 진짜 내 모습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책을 소개해 준 후배가 갑자기 고마워졌다.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생각을 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 위해 소비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딸 : 엄마, 레인은 내 친구가 아니라고. 나한테는 남편이고 아내고 자식이라고. 그냥 내 가족이라고.
엄마 : 남편이고 아내고 자식이라니.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니? 결혼을 할 수 있니? 새끼를 낳을 수 있니? 너희가 하는 건 그냥 소꿉장난 같은 거야. 서른이 넘어서까지 소꿉장난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책 속에서 엄마는 딸의 동성애를 처음에 인정하지 않는다. 자식의 동성애도 기가 막힌데 자신이 혼자 사는 집에 갑자기 들어와 살겠다니 나 같아도 어이가 없을 것 같다. 딸과 엄마의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본인은 평생을 딸을 위해 헌신했는데 딸은 남들이 하는 결혼, 출산, 직장 등에서 자신이 바라는 길로 가질 않는다. 마지막 부분에 가면 자신이 보살피던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동성 친구에게 수육을 많이 먹으라며 챙겨주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 결국 딸의 삶을 인정하기로 했구나 라고 이해했다.
그럼에도 나는 질문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묻고 또 묻고 지칠 때까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딸애는 내 자식이니까. 끝내는 내가 알고 싶고, 내가 알아야만 한다. 적어도 나는 도망가는 부모이고 싶지 않다. 그런 식으로 회피하고 머뭇거리면서 딸을 잃고 싶지 않다.
세대 간 가치관 차이는 어쩔 수 없다지만 책 속에서 엄마는 끝까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딸을 모습을 이해하려 한다. 무작정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게 아닌 가치관의 차이를 극복해보려는 그녀의 모습이야말로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필요한 게 아닐까. 언젠가 나도 자식이 크고 가치관의 충돌이 발생했을 때 2020년 12월에 읽었던 김혜진의 소설 '딸에 대하여'를 떠올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