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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Aug 03. 2022

뭘 좀 못해서 아름다운 사람들

나의 복숭아 - 글항아리 엮음



가파른 산비탈에 복숭아나무를 심는 아빠를 보며 가족 모두가 극렬히 반대했었다. 반평생 직장인이었던 사람이 무슨 농사를 짓느냐고, 사서 고생 그만하고 편하게 살자 했었다. 아빠는 들은 체도 없이 바득바득 나무를 심고 키웠고, 그러길 다섯 해가 지난 즈음부터 내 주먹보다 훨씬 큰 복숭아가 아빠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박스에 가지런히 담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해야 본전 혹은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것 같으니 여전히 농사꾼은 아니고 농사 ‘꿈나무’라는 말이 더 적합해 보이지만, 피부가 흙색이 되도록 아빠는 참 고집스럽고 부지런하게 매년 복숭아를 키워낸다.


그런 농사 꿈나무 아빠의 고생이 마음 아파 그만하라 노래를 부르지만, 그 수혜를 가장 톡톡이 보고 있는 게 바로 나다. 아빠의 농장서 가장 크고 실한 복숭아는 공판장이 아니라 딸이 사는 거제로 향한다. 이리저리 치이면 쉽게 상처받고 무르는 과일이라 포장을 얼마나 야무지게 해서 보내는지, 몇 년 동안 거제로 내려온 복숭아들은 상처 하나 없이 갓 딴 듯 토실토실 탐스럽고 깨끗하다.


단점 혹은 상처란 역시 쉬이 무르는 부분이니, 이를 ‘복숭아’라 칭한 제목이 기발하고 절묘하다. 완벽하게만 보이는 남궁인 작가의 음치 고백도 좋았고, 씩씩하고 치열한 투사 같은 김신회, 임진아, 이두루 작가의 글에서는 저마다의 슬픔과 아픔, 여린 속내가 보인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과 함께 뭐든 잘해 보이고 싶고, 멋있어 보이고 싶은 욕심에 한껏 부풀리고만 사는 몸에 스르르 힘이 빠진다. 무너지거나, 어설프거나, 뭘 좀 못해서 더 아름다운 이들의 이야기. 이들의 문장은 무른 복숭아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복숭아 박스에 고운 종이와 테이프를 감는 아빠의 손길과 닮았다. 어설프고 투박하나, 조심조심 정성스런 마음으로 전해진, 반갑고 귀한 아빠의 복숭아 같은 이야기였다.


“인간은 책 속에 사는 캐릭터가 아니다. 방금 내뱉은 말과 전혀 다른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내가 있다. 그를 굳이 세울 필요도 없고, 어깨를 잡고 이쪽으로 데려올 필요도 없다.” (임진아)


“말이라는 추상은 기술과 자본 없이도 무한하기 짝이 없다. 무형의 무한을 존재 가능하도록 만드는 언어라는 도구는 단말기도 충전기도 필요 없는 필승의 오락이다.” (이두루)


“나무가 되지 못한 갈대처럼 흐느적거리며 다행히 아직까지는 부러지지 않았다. 대쪽 같은 믿음이 있어서 버티는 게 아니고 어쩔 줄 몰라서 이리저리 번민하다 살아남고 강해진 사람. 그런 내가 이제는 조금 마음에 들었다.” (김사월)


#글항아리 #북클럽문학동네 #에세이추천 #K가사랑한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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