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사람들 - 제임스 도즈
#악한사람들
‘중일전쟁 전범들의 인터뷰’. 자극적 소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정작 인터뷰 내용의 양이나 정도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물론 대단히 충격적이긴 하다.) 대신 이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 고백이 어떤 방향의 문장으로 전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압도적 주를 이룬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생성된 관계, 어쩌면 친밀감이라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감정, 전시상황이라는 특수성으로 강제된 집단화된 정체성으로 인해 발생된, 어쩌면 또 다른 희생자일지도 모를 그들의 이야기에 깊이 동하다가도, 그들에게 희생된 다른 이들의 상처와 피해를 고려해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질 수 없는 작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범죄 포르노그라피가 공연한 세태가 되어버린 시대, 그저 인터뷰 내용만으로도 세간의 주목을 끌었을 법한 내용들은 그렇게 작가의 깊은 고민과 사유가 어우러져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되어간다. 가해자 고백을 통한 가해자에 대한 이해, 그 이해가 피해자의 상처를 들쑤시는 결과가 되지 않아야 하고 그들의 고백이 섣부른 용서로 이어지지 않아야 하지만, 그 고백은 진실 (물론 진실의 정의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자체로 발화되고 기록되어야 한다는 필연성. 책에 담긴 작가의 고뇌는, 애당초 특정 누군가, 혹은 어떤 시스템에 나쁜 놈 개새끼 하고 넘길 수 없는 이슈를 우린 참 쉽게 그렇게 하고 살았던 것이라는 통렬한 반성으로 이어지는 복잡다단한 사유의 과정 그 자체였다.
물론 책의 서술 방식은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광활히 뻗어 나가는 주제와 사유를 한 흐름으로 이해하고자 무던히 집중하고 애써야 했다. 그런데 그런 혼란스러운 서술 방식이 깊이 있는 사유란 이런 과정으로 진행되는구나 보여주는 것이라, 자체만으로도 진귀한 배움이자 경험이었다. 책은 중일전쟁 전범의 이야기로부터 확장된 다채로운 주제들을 말 그대로 ‘쏟아내’는데, 전시 상황에서의 강간으로 이어지는 젠더 문제, 인권 운동, 고통과 상처를 다루는 문학의 역할과 의미, 타자성의 윤리 등, 단 하나도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사유 거리였다. 하염없이 밑줄을 그으며 생각했다. 그 특유의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던지는 물음표가, 책을 읽은 3주보다 몇 배는 긴 시간 동안 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할 것 같다고. 이런 책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어마어마한 숙제를 받아 든 기분이다.
“인간의 집단 폭력은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 사람이 자신의 행위 주체성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것을 허락하는 이 단순한 순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복잡한 문제들과 더불어 불가피하게 불완전한 해결책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광신은 단순하고 완전한 해결책을 약속한다. 폭력도 마찬가지다.”
“검열은 당신이 곤란한 정보를 받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막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곤란한 정보를 자신이 이해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포르노그래피, 남성 입회식, 괴롭히기와 결속을 다지기 위한 관행은 내면의 여성을 죽이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그리고 외부의 여성을 죽이는 토대를 마련한다.”
“나는 인권 강의에서 곧 세상을 바꿀 예정인 낙관주이자, 이상주의자 학생들에게 일말의 절망을 가르치려 한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나는 그것이 실망에 대한 예방접종이며, 인권활동의 냉엄한 현실에 대한 사전 준비로서 그들이 현장에서 불가피하게 무력함과 실망, 실패를 접할 때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대비하게 해 줄 거라고 여겼다. 이상주의자들은 부서지지만 현실주의자들은 터덕터덕 걸어간다고 나는 주장한다.”
“우리는 직접적인 대면에서 대단히 이질적이면서도 불가항력적으로 친밀하게 느껴지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개별적인 인간으로 태어난다. 이질적인 것은 타자가 동화되거나 같음으로써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고 친밀한 것은 동일성은 결국 상호 주체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타자에 대한 응답 이전에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존재하는 자아란 없다. 주디스 버틀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얼굴에 응답하는 것,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에서 위태로운 것이 무엇인지, 더 정확히는 삶 자체의 위태로움을 알아채는 것을 의미한다.’ 타자의 얼굴은 ‘나를 자기애에서 불러내 더 중요한 것으로 향하게 한다.’ 고 그는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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