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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Aug 08. 2022

찌질함과 기특함 그 중간 어딘가

이별 기록




점점  나아질 거라고 했는데. 지난 기억예상치 못한 시점에 불쑥거리고 올라와 뒤통수 앞통수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강펀치를 날린다. 그래서  년이랑 행복하냐, 개새끼 지옥에나 떨어져라 하다가도, 우리가 얼마나 좋았었는데,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사진 뒤적거리며 울고불고. 아름다운 이별 없다더니, 밖으로 보이는 나는 어떨지 몰라도, 내가 아는 나는 세상 찌질하기로서니 이런 찌질이 상등신이 없다.


각종 SNS는 1년 전, 2년 전, 3년 전, 4년 전 매 년 과거의 오늘에 켜켜이 쌓인 추억을 부지런히도 상기시킨다. 4년 전의 우리는 새 차를 타고 여러 도시를 여행했었네. 여기도 갔고, 저기도 갔고, 이것 저것 같이 많이도 했었네. 여기 참 좋았었는데, 저기 참 맛있었는데, 그때 참 즐거웠는데.


에이 씨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인간은 지독한 종이야.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동원해 닥쳐온 시련과 맞서 싸웠을 때만, 그렇게 했는데도 끝내 실패했을 때만 비로소 끝이라는 걸 받아들여.”  - 김영하, <작별인사>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상처받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결코 불가한 것이기에. 그저 상처만 받은 것이 아니라, 아팠던 만큼 사랑도 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이제는 상대방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마음인지 더 이상 알 필요가 없다는 것, 다만 그 간절하고 절실했던 내 사랑의 시간들은  결코 쉬이 덜어질 농도의 것이 아니었기에, 희미해지는 과정 역시 타인의 잘못이 아닌 내 감정의 농도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지금은 그런 것들을 해 낼 노력을 할 시간.



그래 뭐 어쩌겠어. 헤어질 때도 그 미련을 떨며 늦은 결심을 했듯, 잊는 것도, 회복하는 것도, 이게 바로 내 속도인 것을. 충격과 상처 앞에서 내 속도가 아닌 속도로 서두르면 어떻게든 탈이 나기 마련이니. 슬폈다, 찌질했다, 이 모든 과정을 충실하게 앓고 앓아야지.


무엇보다 아픔에 잠식된 것이 아니라, 아픔으로부터 회복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등신 새끼라 그만 욕하고, 쉬이 잊지 못할 아득한 시간의 장성 앞에서 나는 결코 비겁하지 않은 이별 중이라고, 아주 잘 해내고 있다고, 나는 최고야 호들갑스럽게 나를 격려해야지.


“내가 잃은 것은 기만을 버리지 못한 인간이었지만, 그가 잃은 건 그런 사랑이었다. 누가 더 많은 것을 잃었는지 경쟁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경쟁에서 나는 패자가 아니었다.”- 최은영, <밝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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