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을 보고 (1)
결혼 한 달 앞두고, 10년을 사귄 남자 친구인 한기준이 업무와 관련된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을 보고 헤어진 하경. 그녀는 일 끝내주게 잘하는, 최연소 과장 승진한 똑똑한 여자다. 그런 여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한 조직에서 같이 승승장구한 기준. 그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그의 칼럼도 모두 하경의 작품이다.
나는 그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줄 알았어.
하지만 헤어지고 나서 기준은 그녀에게 말한다. 숨이 막혔다고. 나보다 잘난 너를 만나서 버거웠다고. 기준이 바람피운 상대인 유진은 적당히 멍청하고 잘하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기준은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며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진에게 반했다고 말한다.
상대방이 똑똑해서 도와주는 것은 마음껏 물고 뜯고 맛보며 즐기다가, 받는 게 익숙해지고 나면 똑똑한 상대방이 따박거리는 건 부담스럽고 피곤하다고 말하는 자들.
열등감.
이런 자들은 자신을 건실하게 도와주고, 세상을 확장시키는 대화를 부담스러워한다. 그저 우쭈쭈 해 주는 자들만 주변에 포진시켜 대장 짓 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 것은 그들의 대표적인 종특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면 이들은 잘못이 없다.
그저 사이즈가 그 정도일 뿐.
이럴 땐 그냥 그렇게 되었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빨리 인정을 해야 한다. 기준은 애당초 하경 옆에 있을 그릇이 못 되는 자였다는 것, 기준이란 자의 수준은 그냥 딱 적당히 멍청한 유진이었다는 것. 상간남 상간녀라는 단어를 굳이 쓰지 않고, 그들의 권선징악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드라마의 흐름이 되려 이런 부분을 잘 보여준다.
열등감은 유유상종과 맞닿아 자웅동체처럼 함께 움직인다. 권선징악이고 나발이고 그냥 끼리끼리 만나는 게 순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좋은 관계란 늘 좋은 ‘상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둘이 부딪치고 깎이며 맞추고 쌓아 나가는 ‘과정’ 그 자체다. 그 과정에서 (그것도 자신의 열등감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바람 따위의 신의를 저버린 행동을 실드 쳐줄 순 없다. 이는 유유상종이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치여도 마찬가지다. 그 논리야말로 긴 시간 자신의 옆에서 응당 받았을 똑같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감수하면서도 성실히 신의를 지킨 상대방에게 행하는 가장 저열한 짓이다.
똑똑한 하경은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쌓아와 쉬이 끊어내지 못하고 물러터지게 행동하면서도 결국 깨닫는다. 기준이 아무리 ‘나도 너 때문에 숨 막히고 힘들었’다고 비겁한 자기변명을 늘어놔도, 잘못한 새끼는 그 새끼이고, 상처받은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경에게도 그렇게 되었어야 할 일이었다. 안 만났으면 좋았을 인연,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피눈물 나게 아까웠을지언정, 결국 헤어짐은 하경에게도 순리라는 것. 늦더라도 그렇게 되었음이 다행인 일인 것이다.
벌 받고 말고도 없다. 그냥 그런 것들은 그런 것들 끼리 끼리끼리 붙어먹게 두는 게 베스트다. 똑똑하고 바른 자들은 그 신의와 수준에 맞는 이들과 유유상종하면 된다. 애당초 인간은 갱생이 어렵고, 수준은 업그레이드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