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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Aug 21. 2022

처서, 이른 계절 앓이

이별 기록

계절 앓이 치고는 조금 이른 것 같은 몸살이 왔다.

코로나인 줄 알고 몇 번을 테스트해봤지만 음성이고. 그럴 만도 했다. 주에 한 번씩 꽤 거나하게 술을 마셨고, 식단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정크푸드가 일상이 된 게 제법 되었으니.


하필 이 귀한 주말에 뻗어버렸다. 약속을 잔뜩 잡아놓은 8월 말의 귀한 주말에. 약을 먹고, 배를 채우고, 또다시 까무러치고. 사흘 내리 끙끙 앓았다. 그래도 그 모진 이별 후 석 달이 넘는 지금까지 감기 한 번을 안 하고 버티다가, 이제야 조금 긴장이 풀린 건가 되려 안도하는 마음도 들었다. 일요일인 오늘은 아프기 전보다 훨씬 상쾌한 컨디션으로, 오래 미뤄둔 집안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


걱정을 해 주는 벗들과, 무엇보다 요즘 내 마음 가장 큰 즐거움이 되어주는 J의 안부로 아픈 주말 외롭지 않게 보냈다. 아프지만 않았으면 J와 심야영화를 보고 밤새 술을 마실 작정이었는데. J는 못내 아쉬워했지만, 내 회복이 먼저라며 흔쾌히 약속을 미뤄주었다.


일상 구석구석, 그 사람의 생각을 하지 않은 순간을 손에 꼽을 만큼, 최근까지도 내 시간, 내 세상은 그 사람의 위성처럼 돌아갔다. 지금쯤이면 뭘 하겠구나, 지금쯤이면 어디에 있겠구나, 이 날은 뭘 하겠구나,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찬 날들이었다. 그러다 J라는 귀엽고 저돌적인 인물이 내 일상 속으로 불쑥 발을 디밀고 들어왔다. J는 내게 묻는다.


누나 뭐 먹었어?

누나 뭐해?

누나 좀 어때?

누나 보고 싶어.


내가  하는지  없이 물어보는 J덕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지 인지를 하고, 그에게 답을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하는 이는, 내가 나에게 집중할  있게  주는구나.


나는 그런 질문들을 받으며, 자연스레 그 사람의 행성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내 우주 안에서 내 속도로, 제 빛을 내며 돌기 시작한다.


처서를 이틀 앞둔 일요일 밤, 한낮의 뜨거운 빛은 흔적도 없이, 귀뚜라미 소리가 가득한 가을바람이 분다. 나는 또 한 걸음 지난 사랑, 지난 이별과 멀어졌음을 느낀다. J의 도움이 컸지만, 굳이 당장 다른 사람, 다른 사랑이 아니어도, 나 한 사람이어도 제법 괜찮겠다 싶은 시기가, 드디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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