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우연>, 김수빈
다정한 우주가 만들어지는 시간
<고요한 우연>은 주인공 수현이가 고요와 우연을 통해 자신만의 단단하고 다정한 우주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수현은 '지금도 충분히 예쁘지만' 사실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얼굴의 평범한 청소년이다. 아침부터 외모 걱정을 한가득 안고 등교하는 수현이에게는 장난스러운 친구 지아가 있다.
학교에선 항상 둘이 붙어다니지만 지아 외에도 수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이 세 명 등장한다. 짝사랑 상대 정후, 모든 게 완벽하지만 인성은 부족한 고요 그리고 꿈 속에서 수현이를 바라보던 우연. 수현이는 세 사람 모두 다른 이유로 관심을 가진다.
"수현이 너라면 빌려줄 것 같았어."
글씨가 못난 정후는 수현이에게 자기 대신 고요에게 노트를 빌려 줄 수 있는지 물으며 이렇게 말한다. 정후는 평범하지만 착한 성정을 지닌 수현이를 알아본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정후가 고요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수현의 가슴엔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커다란 달'이 뜬다.
정후의 소셜미디어만 염탐하던 수현이가 우연과 고요의 계정도 찾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우연히 두 사람의 비밀 계정을 알게 된 수현이는 자신을 숨긴 부계를 만들어 세 사람과 소통한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조금은 음침한 취미 생활이지만 수현이는 세 사람에게 진심을 다한다.
@the_eagle_has_landed가 수현인 줄 아는지 모르는지, 정후, 고요 그리고 우연은 숨겨 두었던 달의 뒷면을 수현이에게만 보여 준다. 세 사람이 자신에게 비밀을 터놓고 이야기할수록 거짓말을 했다는 수현이의 죄책감이 자라난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수현이가 다정한 사람이라는 증거다.
수현에게(혹은 @the_eagle_has_landed에게) 가족의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놓은 정후는 말을 들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하며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 어느 특정한 시점에 누군가의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것, 그걸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나는 그것도 위치 선정이라고 생각해요.'
수현의 위치 선정은 훌륭했지만 그래도 모두를 속였다는 사실에 힘들어 한다. 결국엔 그들에게 상처를 안기게 될까 우려하며 수현이는 자신을 '별거 없는 애라서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고 내 몫을 덜어 주고 가끔은 비겁해지기까지' 한다고 평가할 뿐이다. 그 말에 지아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답한다.
'사람들은 그걸 공감과 양보, 배려라고 불러.'
어느 날 우연히 고요한 달에 착륙한 독수리의 위치 선정은 분명 기가 막혔다. 비록 시작은 조금 비겁했지만 독수리의 다정함은 때때로 세 사람의 우주를 지탱했다. 각자의 우주가 결국 어떤 모양을 하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다정함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