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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Nov 03. 2024

012 서평 쓰기

<어른이 되는 시간, 크랙>, 조미자

거제시의 구 시가지였던 거제면에는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보물들이 숨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문화공간 ‘모음’이라는 보물 같은 장소에서 조미자 작가님의 원화 전시를 관람할 기회를 얻었지요. 좀처럼 보기 힘든 그림책 원화 전시를 동네에서 즐길 수 있게 되어 어찌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정말 운 좋게도 조미자 작가님도 직접 뵈었습니다. 전시를 보러 온 우리들에게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해 주셨던 작가님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작가님의 소박하고 밝은 미소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것이 제가 상상했던 작가님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화 전시를 보러 가기 전, 이미 작가님의 작품 <불안>이라는 책을 읽은 뒤였기에 제 나름대로 품고 있던 이미지가 있었거든요. 거친 그림체, 강렬한 색채, 그리고 불안과 우울을 이야기하는 책이었기에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를 상상했던 모양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게으르고 단순한 추정이지요. 물론 제가 작가님을 잠시 뵙고 느낀 인상 역시 단편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 작품‘이라는 표면(혹은 이면일 수도 있겠네요)을 통해 얻은 이미지와 직접 작가님을 뵀을 때의 느낌 사이의 간극. 다시 말해 제가 ’ 기대한 이미지’와 ‘실제로 마주한 이미지’ 사이의 차이가 꽤나 혼란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뛰면서 생각했지요. 아마 그것이 작가님의 작품, <크랙>이 내게 어렵게 다가오는 원인이라고 말입니다.


나무의 껍질을 본 적이 있어.
아주 가까이 눈을 들이대고 말이야.
겹겹이 갈라진 틈 사이로 나무가 자라고 있었어.


그림책 <크랙>은 주인공이 나무의 껍질 속 틈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서사가 시작됩니다. 저는 부제와 제목 그리고 서사의 시작을 여는 이 몇 문장만으로 앞으로 이어질 서사를 전망합니다. ‘나무의 갈라진 껍질처럼 나에게도 상처가 생기고, 그런 상처를 통해서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겠지!’하며 아주 섣부른 판단을 하지요. 처음에는 제가 ‘기대한’ 것과 비슷한 서사가 전개됩니다. 크랙 속으로 들어간 주인공은 ‘어디에도 붙어 있을 곳이 없는’ 험준한 시간을 보내며 절벽 아래 점과 같은 자신의 존재를 느낍니다. 외롭고 무서운 절벽 사이에서 동굴을 발견한 주인공. 우연히 발견한 동굴에 누워 잠을 청하려다 갈라진 틈으로 하늘을 보게 되죠. 황금처럼 반짝이는 빛을 받으며 아름다운 들판에 누워 있는 꿈을 꿉니다.


저는 이쯤에서 갈라진 서사가 봉합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마법처럼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서사로 마무리되기를 기다렸죠.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기자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집니다. 하늘의 별들이 무너지고, 바닥이 다시 갈라집니다. 크랙은 봉합되기는커녕 더 큰 혼란의 시기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순간 주인공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납니다. 크랙, 갈라짐, 절벽 그리고 검은색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밝은 빛과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되며 마무리하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결말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지요.


그렇게 단 하나의 별을 찾으며 다시 시작한 주인공의 여정은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도 완전히 종료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장면의 배경은 처음 나무껍질로 들어가던 순간의 장소와 크게 다르지 않죠. 첫 페이지와 제목을 보고 이 책이 ‘상처를 통한 뚜렷한 성장 서사’ 일 것이라 기대했던 저의 기대가 무너집니다. 갈라진 틈에서 걸어 나온 것도, 그 틈에서 싹이 돋아난 것도 혹은 그 틈을 메운 것도 아닌 모호한 결말은 어른이 되는 여정의 결론보다는 그 시간 자체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제 안에서 끝내 끝나지 않습니다. 아마 ‘많은 밤, 많은 낮이 지나’ 가도록 생각해야만 하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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