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어디에.
중학생때부터 대학시절까지..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신문읽기였다.
세상을 아는 즐거움이었고, 문자 읽기의 즐거움이었다. (옛날 신문은 한문표기가 병행되어 나름 한자도 눈에 꽤 익었는데, 전면 한글화 되면서 한자는
그만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한자의 그림화라니..)반면 내가 집, 학교를 벗어난 세계를 접하고 이해하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그런고로, 신문에 나오는 정치인은 다 훌륭한 사람인줄 알았다.
어린 시절, 정치면은 너무 머리가 아팠다. 맨날 삼김시대고, 통합되기도 분리되기도, 당이름도 이랬다 저랬다.. 난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줄 알았는데 정치판이란 것이 그렇게 혼탁한 것이었다. 대체 질서라곤 찾아보기 힘든...
집에서도 공부해라, 무엇을 하라는 압박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지라, 딱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꿈이 없었다. 중3시절, 생물시간에 유전에 대해 배우면서, 흥미를 가졌고 그때 ‘씨없는 수박’개발, ‘게놈프로젝트’같은 신문의 보도는 나의 흥미를 업그레이드시켜주었다. 그리고 난 그때 내가 정한 길을 그냥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난 매우 소박하게 내가 그 게놈프로젝트를 완성해 노벨상을 받아야겠다.는 길을 정했을 뿐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인가. 당시 대입제도로 4개 대학에 지원을 했는데 딱 1개 학교만 생물학과(정확히 말하면 자연과학전공이고 2학년때 세부전공을 정하는), 처음에는 H대에 합격을 하고 일단 등록을 했는데(무슨과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공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S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을 했지만, 난 S대는 가지 않겠다 했다.(아, SKY는 아니지만 부모님은 내심 바랬다.. 당시 나도 부모님도 뭔지는 잘 모르지만 컴퓨터공학과가 나름 유망학과였고, 난 이 요상한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았다).그리고 K대는 흔치 않은 유전공학과라는 이름의 과가 있어 가고 싶었지만 끝내 불합격(물론 난 그 과에 지원을 한 건 아니었다..하하)이 때의 입시제도는(요새도 그런가..) 4개 학교 지원을 하므로, 예비합격자제도가 있어서 계속 추가합격을 발표하는데, 내가 다닌 대학의 마지막 추가합격자로 가게 되었다. 160명 정원인데 내가 155~160번 사이쯤으로.. 거의 턱걸이로 들어간 것이다. (가끔 처음 등록한 과도 기억나지 않는 H대를 갔다면 지금의 나의 삶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결코 알 수 없지만)
난 혈액형원리니, 배추를 심으면 배추가 난다. 이런 것이 재미있었을 뿐이데, 대학을 가니 원자니 분자니 나노니.. 이런 것들이 나오고, 재미가 없없을 뿐이고... 그러다가 ‘신문론’,’커뮤니케이션효과이론’이란 제목에 끌려 수업을 듣고 무려 복수전공까지하게 된다. 아마도 습관적으로 읽어대던 신문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학시절, 집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들어왔다.
그리고 한겨레 신문을, 한겨레21을 알게 되면서 가끔 사봤다. 이때부터 진보와 보수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게 되고, 신문에 나오는 그들이 다 훌륭한 사람들이 아니구나를 점차 알게 되어갔다.
한 쪽으로 편향된 신문을 보면 그 프레임에 갇힌다고 하는데, 난 솔직히 ‘내가 소신을 갖고 내가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라며 이 프레임론에 콧방귀를 끼는 오만방자한 태도를 혼자서 속으로만 간직했는데... 당시 신문에서 ‘추억의 전시’같은 걸 한다고(50~80년대를 재현하고 회상할 수 있는 전시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조그마한 광고든, 관람객이 많았다, 인기있는 전시다, 그 시절을 추억한다 등의 단신기사가 계속 있었다. ‘엄청 재미있나봐, 나도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방문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와중에 불현듯 나를 스쳐지나간 섬광. 이것은 나의 오만방자함을 있는 힘껏 꺽어 놓았다. 아마도 이를 깨우치게 함이었는지... 이 기사는 조선일보에만 계속있었다. 동아일보에는 한 번도 없었다. 이때서야
눈에 들어오는 주관인지 주최인지 후원인지..(정확한 기억이;;)가 조선일보. 그래서 나는 가지 않았다.그리고 편향된 정보가 얼마나 위험한지 실천적 체험으로 깨달았다. 내가 중학교 시절 신문만으로 세상을 경험했으니 이 얼마나 위험했던 일인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차범근감독이 등장하며 ‘컴퓨터로 선수 분석’,’선진시스템’등 각종 찬사의 기사가 쏟아진다. 축구에 문외한이었던 나조차 축구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낯선 이름이었던 차범근감독이 어마무시했던 선수였던 것도 알게 되었다. 다 신문덕분이었다. 거의 신격화수준의 보도들이 쏟아졌는데... 신화가 될 뻔 했던 차붐은 5:0의 참패에 중도경질되고.. 그 때부터 종교문제다, 불화다등의 기사들이 쏟아졌는데.. 이 때 난 충격을 받았다. 쏟아지는 기사들이 정확한 근거인지 확실하지 않고, 자신들이 신격화한 사람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격분이라도 했는지 잡을 수 있는 흠이란(이것의 진위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채..) 다 잡는 듯 했다.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거지? 란 생각이 컸다.
그러고 시간이 지나고 황우석박사 기사가 날때, 처음엔 관심이 가다가(나름 생물학과 출신이라고 또..)나중엔 황우석박사가 오늘은 누구를 만났다,까지 기사가 나는 것을 보고.. 이 사람 과학자인가, 정치인인가하는 생각까지 들고..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는가 하면서 뭔가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는데 사태가 되어버렸다. 당시 생물학 대학원생인가 박사인가의 커뮤니티에선 이미 소문이 횡횡했는데, 누구 만나러 가는지 보도할 시간에 심층적으로 알아 볼 기자가 한명도 없었는지, 아니 알고 있어도 우상프레임이 우선이라 외면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때론 과한보도로 기대수준을 너무 높이거나, 심지어 신격화까지 하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아주 처참하게 내다버리는 것 같다.
인터넷 언론이 생기고, 진보언론이 다양화되고 하면서 알 수 있는 정보의 범위가 폭넓어졌다지만 진실만이 보도되는 것도 아니고 계층가르기가 되어버려진위여부를 판단하는 것 오롯이 읽는 사람의 몫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본인이 읽고 싶은 쪽만 읽는다.
최근 언론의 폭력같은 보도를 보면서,
거지같은 언론이라 욕하면서도,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우리 사회 기득권 계층의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이다는 썰과 정확한 자료가 보여주는 영향력은 매우 다르다. 내겐), 이걸 불쏘시개 삼아 아주 활활지피었다. 부어아, 퍼부어라, 모든 것을 샅샅이.
그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그대로 투과되니 이념만들기에 아주 혈안이 된 듯도 하다. 아주 극도의 피로감까지 왔다. 도이고 모이고 간에 그냥 그만
좀 하면 안 되겠니? 란 생각에, 도대체 진실이 뭔지 모르겠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신뢰가 가는 쪽을 진실이라 믿은 들, 그것이 진실이라 한들, 과연 진실일까?. 언론을 신뢰하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이번엔 거의 광기를 본 느낌이다.
전격 사퇴 후, 난 오히려 궁금해져서 기사를 찾아보는데 기사가 거의 없다. 전문가니, 논평가니 하면서 의견을 잘도 표명하건만, 이런 것도 없네.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는 국가여서 마냥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가. 과연 이런 광기의 견제는 누가해줘야 하는 것일까.오롯이 시민의 역할일까. 그 길이 멀고 험해도 가야만 하는. 의견 모으는데만 억조년.
기레기란 용어가 등장한지 몇 년짼인데,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없을까.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여과되지 않은 정보들, 특정계층의 입맛에 맞으라고 구성한 정보들, 그리고 정보를 가장한 루머들.... 자극적인 제목들로 보도라는 이름의 지껄이기를 하고 이것에 맞장구로 악담을 하는 사람들.. 이로 인해 누군가는 목숨을 끊기도 하는데..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이렇게도 쓰이라는 것일까.
익명성으로 온갖 악담을 내뿜어도..
피해자만 피해보는 구조..
어디서 자성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