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브라보 공무원, 브라보 공무원 라이프
난, 9월 중순에 ‘105일의 기록’이라는 글을 쓸 계획을 세웠었다. 근데 과연 쓸 수 있을까, 105일이 아닌 30일의 기록이 될 수 있겠다는 현실을 직면중이다.
월급 장난, ‘너를 한 구석에 아무일 없이 방치해 두겠다’란 수준 이하의 발언등에 2020년이 된지 2개월 만에 2020년 1년 계획이 산산조각났다. 이 1년 계획을 위해 내가 포기한 것이 있어 더 약이 올랐다.
몸도 마음도 병들고 번아웃상태였던 것을 회복시키고 나니 삶을 유지하기 위한 현실문제가 나를 압박해 왔다. 너무 갑자기 일을 관둬 미쳐 대비 못한 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구직시장은 더 열악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코로나가 만들어낸 일자리가 있다. 그때는 아이러니라고만 여겼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단기성 공공일자리를 마구 생산해 실업률 수준을 어느정도 맞추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정말 이렇게 추가 인원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나는 기회라 여겼고 잠시나마 내가 숨통을 틔우고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를 할 시간이 될 것이라 여겼다. ‘행정지원’란 이름으로 정부부처의 5개월 단기 계약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같이 일을 하게 된 사람은 5명인데, 난 a층, 1인은 b층, 2인은 c 층, 1인은 d 층에 배치가 되었다. 이중 c층에 배치된 2인 중 1명은 일주일 만에 관뒀고 바로 예비자를 불렀다.
이 행정지원은 전국적으로 꽤 많은 인원을 뽑았는데, 수시로 관뒀다는 인사동정이 게시판에 올라온다.
a층에서 , 난 접수된 서류를 정리하고, 보완이 필요한 서류는 추가자료를 요청해서 받는 일을 했다. 그리고 이 이후의 일은 ‘공무원’이 했다. 장기간 할 일은 아니었지만 단기로(솔직히 3개월 정도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꼭 추가 보조 인력이 필요한 것인가란 생각은 든다.
난, 정부 사업, 프로젝트 등을 했어서 공무원을 상대한 경험이 많다. 직접 부처를 찾아가 많은 회의를 했던 곳은 행자부, 외교부, 방통위다. 그러다가 지방자치단계까지 내려왔는데 종로구청이었다. 공교롭게 다 광화문에 있던 시기라 광화문을 숱하게 다녔다. 그 외에도 다른 부처 예산등을 받아봐 국방부랑 보건복지부 예산만 받으면 모든 부처를 다 섭렵하는게 아닌가 싶다. 이런 시간등을 통해 형성된 공무원집단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다. 무지 별로다.
공무원 인원이 반으로 줄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을 정도였다.
이제까지의 경험이 외부인 입장에서 공무원과 같이 일을 했던 것이고,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라면 지금은 공무원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공무원의 입장도 이해가 되긴 했다. 공무원을 직업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잠시나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7급을 해보면 그리 늦은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e층으로 이동을 한다.
a층에서 봤던 공무원이 이례적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내가 했던 일 자료가 메일로 온 것을 내게 전달해주었는데 솔직히 자료만 보내면 될 것을, 그 자료가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까지하고 보내준다. e층 공무원들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무원은 내가 알던 그대로 별로고, 아니 알던 것보다 훨씬 더 최악의 수준으로 별로다. 잠시나마 공무원이 이해가 되었다는 것 취소다. 인원을 반 이하로 줄여야 한다.
e층 공무원은 이제껏 본 공무원중에 최고로 낮은 수준을 보여준다. 잠시나마 공무원 시험을 생각했던 것이 큰 오산이었음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나절만이었다.
b층에 배정된 사람과 같이 e층으로 오게 되었다.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무조건 업무를 준다.
업무를 알려주거나, 숙지할 시간을 주는 것은 없다.
뭘 어떻게 할지 몰랐다. 일부는 해보겠는데 조금 익숙해질때까지 조정을 해달라고 하니 이미 분장이
다 되어 무조건 안 된단다. 할 일을 마냥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의욕이 안 생겼다.다시 조정을 해 달라고 했다.
1명의 공무원 일을 우리 둘에게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논리라면 업무량은 적은데(솔직히 양을 확인해 보지 않아 적은지도 확실지 않다) 해야 할 일은 공무원과 동일하다.
통상임금에 따라 민원인에게 돈이 지급되는데 통상임금을 자료를 보고 판단하고 직접 지급 결재를 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검토따위는 없다. 전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된다. 내 맘대로 통상임금을 높게 잡아서 그 수준에 따라 나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런게 행정지원이 해야 할 일인가? 공무원 자리가 비었으면 공무원으로 채워야 하는 것 아닌가? ( 현재 담당 인원은 4명인데, 과거 자료를 보니 계속 4명이었다가 잠시 5명었고 최근에 4명이 된 거다)
이들 공무원의 업무수준은 ‘행정지원’인가 보다. 왜 행정지원 수준의 업무에 공무원이 4명이나 있는 것일까? 심지어 7급도..
우리가 기존에 했던 지원일은 자기네에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인력배치와 인력운용의 대참사다. 뽑아놓고 어떻게든 활용하면 된다는 것인가, 이럴꺼면 계약 조기 종료 하는게 훨씬 낫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 종류였다. 일단 좀 익숙해지고 다른 일을 더 추가하면 안 되냐고 하니, 그럼 그 일은 확실히 할 수 있냐고 묻는다. 일 한지 하루 되었고 어떠한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300페이지는 되는 책 한권 받았을 뿐이다. 게다가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는데 시스템도 익숙하지 않다. 어차피 3개월 있다 갈 사람 아니냐고 조롱거린다. 근데 3개월 있다 갈 사람에게 당신들과 똑같은 수준, 동일한 업무를 주나요? 업무 숙지할 시간 주면 일은 언제 할꺼냐는 조롱이다. 시스템이라도 좀 익숙해지자,
고귀한 한 공무원은 파트장이 업무 조정 좀 해도 되냐고 하니 업무 많아지면 ‘병가’를 끊겠다고 한다.
브라보 공무원, 브라보 공무원라이프다.
첫날부터 전화가 너무 와서 응대를 못하겠다고 하니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한다. 여긴 정부부처고 전화는 광고도 아니고 민원인들이다.
세 종류의 일이 감당이 안된다니, 일단 한 종류만 하라고 하고 다른 일 두개를 붙여줬다. ‘간단한 것’이라 했지만 몇 개 해 본 결과 간단하지 않았고 많은 판단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또 건당 큰 돈이 나가는 것이다. 조건에 안 맞아도 내가 결재해서 지출해버리면 모를 일이다. 난 하루 평균 삼천만원의 돈을 민원인에게 내 이름으로 내 보낸다.
전화가 왔다. 내가 업무 한지 얼마 안 되어서 확인을 하고 연락을 준다니 대뜸 ‘업무 아는 사람 바꿔라’라고 소리 지른다. 전화를 돌렸다. 잠시 후 친히 내게 오더니 니 지역인데 전화 왜 돌렸냐고 grgr이다.
또 전화가 오니 민원인과 한참 통화하다가 그 업무는 내 담당이라고 사무실이 다 들리게 말하고 전화를 내게 돌린다. 사무실이 울리는 줄.. 첫날, 그 업무는 ‘병가’내겠다는 고귀한 공무원 분이 담당이지만 전화가 오면 받은 사람이 응대 해주니, 스스로 내용 익혀서 응대하라고 알려주었는데, 그것이 우리 업무가 되니 전화를 돌리는구나..
또, 본인 수다떨거나 농땡이 피느냐 자리비울때 전화는 내 자리 전화로 다 착신 돌려놔요.
그게 랜덤으로 오는 거라는데, 설정이라는 거 다 알아요. 누굴 바보 취급하나
직장내 괴롭힘 오지군요.
이 업무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4명이다.( 아 한명은 공무원은 아니지만 어차피 무기직 상담원 신분이다) 일주일을 보니, 자기가 일 한 점이라도 더하게 될까 선긋기 최고다. 일을 한 점이라도 더 하면 하늘이 무너지나보다. 이들을 이해하는 것은 애초에 포기했는데, 이 정도로 바닥의 수준이구나 했는데, 그 바닥이 파도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본 공무원 중 최악이다. 이례적인 공무원과 최악의 공무원을 경험해 본다. 극과 극 체험을 하라는 조직의 배려인가.
그런데 왜 우리 행정지원을 자기들과 동일한 수준으로 보는 줄 모르겠다. 이 일이 행정지원이 할 일이라면 공무원을 여기에 배치할 일이 아니지 않나? 행정지원인력으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그 시스템이라는 것이 ‘비밀은 없다’이다. 다른 직원들의 처리건수가 모두 확인이 된다. 우리에게 한 사람의 일을 나눠준 거라 하는데, 그들의 처리건수가 우리 각각의 건수와 다를 바 없다. 솔직히 두 명이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4명이고 야근도 한다. 등기로 신청서 들어온 거 분실해( 이러한 분실은 꽤나 있는 듯) 3명이 1시간을 넘게 헤맨다. 서류 관리도 못한다.
그리고 국민신문고가 들어왔다.
내 지역이라고 나보고 처리하란다.
행정지원 4일차는 이렇다.
국민신문고는 이렇게 처리 되는 것이었군요.
나도, 지금 이 상황을 국민신문고에라도 제보하고 싶은데 누군가 행정지원인력이 답해주겠지..
이런 것도 결국 다 참아내야 하는 것인가, 했지만
나보다 더 열받고 있는 옆의 동료를 보며,
그리고 다른 층에 있는 동료들도 상황은 다르지만 느끼는 바는 똑같다.
지금, 다들 언제 관둘지 모르는 상태다.
일주일 만에 홀연히 관둔 사람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옆자리 동료는 나보다 더 위태로운 상황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 난 여기서 위안을 얻었다.
이제껏 돈벌이 사회생활에 내가 잘 참지 못하고 실패를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껏 난 참 말도 안되는 상황에만 들어갔던 것이다. 무슨 마라도 꼈나..
난 전국 행정지원인력을 모아 노조라도 운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왜 돈벌이를 위한 사회생활은 날 자꾸 투사로 만들려 하는 것일까..
이렇게 ‘행정지원인력’를 공무원과 동일하게 간주하고, 직장내 괴롭힘이 빈번하고 직장갑질을 부리는 곳이 바로 고용과 노동 관련된 대한민국 정부 부처이다.
아니면 이 부처 7급, 9급 업무는 행정지원의 수준인가, 그러면 공무원을 왜 뽑고 왜 호봉과 급수를 올려주는 것일까?
한 나라의 고용과 노동을 관리하는 주무부처의 노동현실이 이런데, 우리나라 노동 현실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갈길이 멀다. 멀어도 한참 멀다.
근로감독하는 부처인데, 이 부처의 근로감독은 어디다 의뢰해야 하나?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