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쯤, 서점에서 충동적으로 젊은작가 수상작 책을 샀다. 당시, 관심있거나 읽고 싶어서 사거나, 혹은 서점에서 눈에 띄어 충동적으로 사서 쟁여두는 습관이 있었고, 내가 책을 읽는 속도보다 책을 사는 속도가 빨랐다. 고로, 내게는 늘 읽어야 할 책의 재고가 삼십여권이 있었다. 그리고 책이 손에 잡히는 순서는 책을 산 순서가 아니라 그때 그때 손에 잡히는 책이었다. 머리가 무겁고 복잡할때는 무거운 주제 책보다는 다소 가벼운 책을 읽고, 사자마자 너무 읽고 싶은 책은 바로 읽곤 했다.
젊은 작가 수상작은 충동적으로 사긴 했지만,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그 해의 수상작이었는데, 다음해가 되어서나 읽었다. 처음 접한 젊은 작가 수상작은 신선했고, 젊음이, 생생함이 느껴졌다. 바로 그 해의 책을 샀고, 이전년도의 수상작들을 사서 읽었다. 2018년부터는 나오자마자 서점에 가서 사서 읽었다. 해마다 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젊은 작가 애독자 능력시험 행사에 갈 정도로 애독자가 되었다. 올해 들어, 솔직히 수상작가도 해마다 중복이 되고, 이제 신선함이 다소 진부함으로 느껴질려는 찰라였다. 그럼에도 젊은 작가상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사단이 났다.
나도, 처음에는 내용을 깊이 알지 못했고,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한 책을 그 이전에 판매된
7만부와 교환해주는 정도로만 알았다.
그리고 이 맞교환을 위해서는 내가 책을 출판사로 보내야 한다. 난, 애독자로서 초판본의 소유자다.
굳이 교환을 해야 해? 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고,
출판사의 초기대응은 피해자를 전혀 보호해주지 못했다. 문제가 점점확산되자, 해당도서의 출판을 중단하겠다고 한다. 교환결정과 중지결정은 하루차이로 있던 일이다. 피해자로부터 문제제기가 된 건 몇 달 전이라 한다. 아마 출간 직후가 아닐까 싶다
피해자를 만든 수상작가의 자질도 의심스럽고,
이에 대한 출판사의 조치도 너무 화가 난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나니, 문제만 된 부분(해당 작가의 글 전체가 아닌, 작가의 글 중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한 것이었다)만 삭제하고 다시 출판을 한다는 출판사는 제정신인 것일까?
이것뿐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도 그러하다.
예전부터, 사건, 사고를 보면 난 피해자가 보호받는 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때론 피해자가 난도질을 당하기도 한다.
이 사회에선, 피해자가 되어도 아픔을, 고통을 홀로 져야 한다. 가해자가 법의 처분을 받는다 해도, 그건 이 사회의 준법 기준에 의한 것일 뿐이지, 피해자의
아픔이 고통이 계속 되는 것을 늘 봤다.
이 사회에 피해자를 위한 일말의 보호장치는 있는것인가?
과연 정의는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