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20

256. 장애

by 자작공작

우리 사회는 ‘장애’를 정상이 아닌 것,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무척 강했다. 여전히 강하기도 하다. 어쩌면 나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장애인을 장애자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도 아니라지만(여전히 국어사전에는 있다), 또한 장애우라는 것도 이미 ‘다르다’란 인식에서 사용된 것으로 사용하다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장애자, 장애우란 표현들은 많다.


이런 표현의 문제부터,

주위에서 손쉽게 듣기도 한다.

‘나 안하던 등산해서 손다리가 무겁고 장애인이 된 기분이다’.


장애인이 아닌 다른 표현, 너무 쉽게 장애를 말하는 것들이 아주 날카롭고 예민하게 나를 건드린다.

거슬리고 거슬리고 거슬리다.


내가 21살이 되던 해, 53세셨던 아빠는 쓰러지셨다. 몸의 오른쪽을 다 못쓰시게 되었다.

몇 달이 지나면 다시 쓰시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휠체어, 보조기,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혼자 계실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장애를 갖게 되신 것이다. 장애란 선천적일수도 있지만 이렇게 후천적으로 올 수도 있다.


약 4년여의 투병 기간 동안, 재활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재활병원 입원기간이 3-4개월인가 한정이 있어, 여러 곳의 병원을 돌아가며 입퇴원을 하곤 했다), 집에 있을 땐 늘 재활치료를 받으러 통원으로 병원을 갔다. 아, 여기서 재활이란 몸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는, 아니 사용할 수 없는 몸이 굳는 것을 예방해주는 치료이다.


재활병원을 다니면서 쓰러지거나,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등 여러 사유로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볼 수 있었고, 늘 입원실이 부족한 상황이라 병원을 드나들며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후천적 장애가 정말 많구나를 알기도 했다. (이건 또 병원을 들락일 일이 없으면 쉽게 까먹기도 한다)


후천적 장애란 것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고 사고나 건강 등에 대해 유난스러울 정도로 걱정이 많은 나다. 아주 우려를 끼고 산다.


장애를 다르게 볼 것도 아니고,

너무도 쉽게 장애인이 된 것 같아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피렌체에 가서 두오모 성당을 보고, 멋진 전경을 보기 위해 성당의 첨탑에 올라갔다. 전경을 볼 생각에 신이 나기만 했다. 올라가는 계단이 꽤 가파르고 너무 좁았다. 올라가다가 내려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갈 공간조차 없어 한 사람이 잠시 멈춰 벽에 밀착을 해야 한다. 올라가는 길 에잇, 그러면서 짜증도 났는데, 도착해서 눈 앞에 펼쳐진 전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


그러다 그 순간에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내가 여기를 올라올 수 있고,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그 때 아빠 생각이 났던 것이다.


건강이, 몸이 허락해야지만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당연한 일은 아니다.


오늘은 아빠, 우리 아빠의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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