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순간 순간에는 바라거나 혹은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생긴다.
그 바람들은 이뤄지기도, 이뤄지지 않아 절망감을 주기도 한다. 바람의 이뤄짐은 간절함의 정도와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 그 때의 상황, 준비성, 능력, 그리고 ‘운’에 따라 달렸다.
한창, 글을 배우고 쓰던 시절,
지망생들의 간절한 바람은 공모전 당선이었다.
그러나 앞선 작가들도, 선생님들도 ‘운’이 있어야 함을, 씁쓸하지만 명백한 현실임을 자꾸 강조한다.
아, 물론 ‘운’이 절대적인건 아니다. 기본기와 실력이 베이스가 된 이후에서의 진검승부이다.
작년에 냈던 글을 토씨하나 안 바꾸고 다시 냈는데, 이번 해에는 덜컥 당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일종의 신화에 불과한 줄 알았다. 이런 이야기는 교육원에서 참 많이 들었고, 그로 인해 인생에는 ‘운’이 따라야 함을 강조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덜컥 그 당사자를 눈 앞에서 만나고 나서야 ‘운’의 중요성이 현실화 되어 마치, 하나의 생명체 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그렇다고 ‘운’만 바라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만반의 준비를 마친 주사위가 내 손을 떠나 허공을 날면서 착지를 준비하는 순간, 바랄 것은 오직 ‘운’아니겠나.
지금은 공모전 당선도 아닌 다른 일을 나름 ‘간절히’바라고 있는데, 이 정도 일에 이리 간절할 일인가, 하며 은근히 부아도 치민다.
나의 바람,
이뤄지기를 바라는 나의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