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면서, 앞으로는 경조사에서 조사가 많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필연적인 죽음, 이제는 죽음을 잘 애도하는 법에 좀 더 익숙해져야 겠다.
3년전의 어느날 밤, 나의 할머니는 너무도 갑자기 혼자 주무시다가 홀로 돌아가셨고,
가족 모두 너무 황망한 가운데,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장례'식'이라는 절차를 이행해야만 한다.
할머니는 집안에서 돌아가셔서 검안의를 불러서 사망진단서를 받고, 사설 응급차를 불렀다.
그 사이에는 빈소를 정해야 했다. 빈소를 정한 뒤에는 장례에 필요한 예를 어떻게 할까를 다 정해야 한다.
할머니는 유언으로 oo병원에서 장례를 치러달라고
(죽음을 예기해서 남긴 유언이 아니라, 할머니는 장례를 치르는 것을, 제를 올리는 것을 오랜 세월 곁에서 보아와서인지, 꽤나 오래전부터 당신의 장례를 어떻게 해달라는 말을 종종 남기셨다.) 했는데, 공교롭게 그 병원에 장례식장 공실이 없어서 집 앞 병원으로 장례식장을 정하게 되었다. 여기서도, 빈소마다 수용인원이 달라, 어떤 규모를 해야하는지 결정을 해야만 했다. 어찌어찌 장례식장과 빈소까지 결정이 되었다.
상조회사에 가입이 되어 있었고, 상조회사 직원이 나왔다.
빈소를 정한 뒤부터 그 이후의 결정은 그 직원과 상의를 해서 정한다.
직원은 꽤 사무적이었고, 상조회사를 겪어보진 않았지만, 언론에서 들은 정보로 부정적인 이미지여서,
나는 실눈을 뜨고 그 직원을 봤다.
수의는 어떻게 할지, 꽃장식은 어떻게 할지, 장례식장의 음식은 어떻게 할지, 화장장 예약, 화장장 이동까지의 교통편, 그리고 염을 하는 시간, 장례식 동안 제를 올리는 것 등 정해야 할 것 투성이다. 자손들이 많은 할머니는 장례식장 모니터에 나오는 화면에 상주를 누구까지 적어야 하는지조차 정해야 했다. 직원은 일을 해야 했고, 난 슬픔을 가눌길이 없는 가족들이 현실의 시간에서 직원과 마주 앉아 이 사항들을 정해야 하는 것이 꽤나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라고 느껴졌다. 이것을 직원에게 알아서 해달라고 일임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직원이 임의로 할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선택의 결과는 비용, 즉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 비인간적이었다고 느꼈기에, 난 그 직원조차 비인간적이라고 느꼈다.
모두가 감정에 휘몰릴때, 혼자만 이성적인 존재 같았다.
직원은 장례식 내내 장례식장 근처에 있었고,
염을 하러 가는데, 그 직원이 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그의 모습이 너무도 다르게 보였다.
화장장에서 화장하면서 장례'식'의 절차는 마무리되었고,유족들은 타고 온 버스에 타고 다시 병원으로 출발하는데,그 직원은 버스를 보고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버스가 큰 길로 나갈때까지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난 그 장면이 잊히지 않고, 죽은 사람을 잘 보내는 일이 꽤 고귀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