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에 대한 고찰3 - 각자의 이유
연간 독서량의 팔할 정도는 출/퇴근 혹은 외출시 지하철에서 발생한다.
그러다, 읽던 책의 남은 분량이, 왕복길에 읽기에 적을 때는 새 책을 집어 들고 나선다.
그렇게, 집에는 거의 읽다 만 책들이 있고, 난 틈틈이 그 책들을 마저 읽는다.
‘돈벌이의 업’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로 머리가 무겁고, 괴롭다고까지 말할 지경인 일요일 오후, 차분히 누워 2권의 읽다 만 책을 마무리 지었다.
그 중 한권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1월 초에 읽기 시작했다, 근 한달 간을 마무리짓지 못한 채 놓여 있었다.
실상, 난 신영복교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작년 ‘담론’이라는 책이 이슈가 되고, 20년간의 시간에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 때 담론을 사면서 같이 샀던 책이다.
(가끔씩 이슈에 오른 책을 사고, 그 작가의 책을 1-2권 더 사는 습관이 있다)
처음에는, 개인의 서신들로 아무런 감흥이 없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가족을 더 사랑해야지, 주위를 더 생각해야지라는 마음이 들게 하다가..
이 글에서는 ‘전율’까지 느꼈다.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그가 겪었을 모진 시련과 편력을 알지 못하는 ‘남’들로서는 함부로 단언할 수 없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p.254
담론에서도 동료 재소자의 부인이, 일을 나가게 되었다는 것(몸을 파는 일)에 대해, 비난을 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사정이 있다라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어쩌면, 개개인마다 본인의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는데,
‘내가 맞다’, ‘이것이 맞는 것이다’라는 잣대로 함부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조언까지 하는 현실에 대한 극심한 피로감의 발로였을까... 너무도 당연한 것에 전율까지 느끼다니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래 전 우스운 이야기로 ‘부잣집 아이’가 ‘가난’에 대한 숙제로 글을 썼는데..
‘우리집은 가난하다. 왜냐하면 요리사도 가난하고, 정원사도 가난하고, 가정부도 가난하다’는 것이다. 예전엔 웃고 말았는데, 정말 단순히 웃고 지나갈 이야기가 아니다.
부잣집 아이의 시각, 아이가 경험한 세계에 대한 표현이니, 부잣집 아이가 우스운 소재가 될 이유가 없다.
시대적 상황의 반영인지, 요새는 이런 류의 감성터치가 보기 힘들지만,
한 때, ‘정말 힘들게 고학해서, 이러한 성공을 이룬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참으로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만해도(고등학교적까지 신문,뉴스가 전해주는 소식을 가감없이, 비판없이 흡수했다), 아 ‘훌륭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대학에 간 이후로부터 이런 생각은 싸그리 없어졌다.
물론, 가난에 굴하지 않고 ‘고학’을 해서 그러한 ‘업적’을 이룬 것은 치하 하지만, 고학의 길이 아니어도 다른 방향으로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딴지도 걸자면, ‘그래도 고학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갖을 수 있지 않았나요?’라는 반발감도 생기기도 했다. 난, 그런 기회조차 갖을 수 없던 한 사람을 알기에.
그런 연유로 위인전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존경’이란 단어도 심하게 아낀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처럼, ‘각자에게는 각자 삶의 이유가 있다’.
p.s 한때는 꽤 읽었던 자기계발서에 염증이 났는데, 차라리 이 책이 자기계발서 아닌가 싶다
p.s 토끼야 일어나라(p.361)도 참 좋다.
‘공부 못하는 친구를 얕보는 토끼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친구를 따돌리고 몰래 혼자만 1등을 하는 거북이 같은 사람이 되어서도 안된다. 잠든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자. 그런 멋진 친구가 되자
(삶은 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