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기에 홈카페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요
취미가 없는 남편에게 커피를 권했습니다.
남편은 취미가 없었다. 회사일만 하고 아이랑 노는 게 고작.
해야 하는 일은 하지만 특히 원해서 좋아서 하는 게 없었다.
출장이 많아도 기껏해야 호텔 커피를 마시던 그가 하루에 한 번 자기 직속 상사와 사무실 옆 로컬 로스팅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일 얘기 사는 얘기 하는 게 가족 외의 유일한 낙이 되었다.
그러더니 남편은 조금씩 커피를 가리기 시작했다. 이 커피는 맛이 없네 이거보다 차라리 이게 더 낫네 그러면서....
다운타운에 살다 아이가 두 돌이 되던 해에 외곽으로 이사를 했다. 가장 가까운 카페는 스타벅스였고 그나마도 10분 정도를 운전하고 가야 했다. 조금 더 가면 맥도널드가 있고 팀호튼이 있고... 참, 요즘에는 코스트코에서도 커피를 팔긴 하더라.
커피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마실만한 커피가 있고 못 마시겠는 커피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언제나 사무실 커피는 쓰기만 했다. Seattle's Best Coffee 빈을 써도 스타벅스 빈을 써도 왜 사무실 커피는 다 쓰기만 할까...
어쨌든 커피 맛을 깨우치기 시작한 남편에게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 줄 테니 커피를 취미로 해보라고 권했다. 커피야 뭐 마시면 되는 거겠지 전자동이면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 반자동 기게를 사서 뭐 유지도 하고 다른 커피빈들도 사다 마셔보고 그렇게 해보지 뭐...
그렇게 해서 에스프레소 머신과 그라인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온라인 쇼핑은 내 담당이기 때문에 뭔가 구입을 하기 전에 모든 리서치는 내가 해야 했다. (남편은 IT담당이다. 인터넷과 컴퓨터 기기 등을 담당한다).
처음에는 그냥 에스프레소 머신만 구입하면 되는 줄 알았다. 종류도 가격대도 천차만별이었다. 브레빌은 주위에 너무 많았고 Jura는 전자동이라 매력이 없었다. 네스프레소도 있어본 적이 없던 우리가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을 찾아보니 참 어려웠다. 그러다 예전에 친한 언니가 구입한 로켓 머신이 기억났다. 디자인도 너무 멋졌고 리뷰를 찾아보니 리뷰도 좋았다.
로켓 에스프레소에서 가장 저가 모델은 아파트멘토라는 모델이다. 그것도 200만 원 정도 했으니 큰 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에스프레소 머신보다 더 결정하기 힘든 건 버그라인더였다. 보통 그라인더랑 버 그라인더의 차이점도 몰랐던 나인데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웹사이트와 유튜브 리뷰들을 본 뒤에 Baratza 세트 270wi라는 모델을 구입하리라 생각했다.
이제 실물을 보고 싶었다. 실물을 보러 간 곳은 Espresso Tec이라는 밴쿠버의 한 Industrial Area에 있는 가게였다. 어려 보이는 세일즈 하는 분께서 뭘 보러 오셨냐고 했다. 로켓 머신을 좀 보고 싶다니까 좋은 머신이라며 로켓의 여러 라인을 설명해주면서 내가 원했던 아파트멘토는 엔트리 (입문자) 버전이라는 말에 남편이 난 엔트리 레벨은 싫다며 레벨 업을 원했다. 그래서 결정하게 된 것이 모자피아토 타입 V 버전이다. V 버전은 물탱크가 있고 수도와 연결이 되어있지 않다. 그때까지는 이 기계를 얼마나 사용할지 몰랐기 때문에 필요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수도와 연결하는 버전을 사고 싶지는 않다. 집에 필요 이상으로 손을 대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이다. 그래서 사실 벽에 액자도 못 붙이는 성격이다.)
집에 와서 한참을 고민하다 idrinkcoffee라는 온타리오의 한 커피머신 전문 샾에서 주문을 했다. 무슨 프로모션이 있었던 기억이다. 주문은 Rocket Expresso CRONOMETRO V에 두 가지 바디 타입이 있는데 그중 Mozzafiatto와 (다른 바디 타입은 Giotto라고 한다) 그리고 Barratza Sette 270wi라는 Time-base 대신 weight-base로 커피빈을 갈아주는 버그라인더를 같이 주문했다.
엄청난 거금이 신용카드에서 결제되어 나간 뒤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 계속 -
재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