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이런 걸 쓰고 있을까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첫 번째로 쓰는 소식지예요. 아직도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좀 믿기지 않고, 좀 많이 떨리네요. 여기저기서 첫 발행을 기대하라고 떠들고 다녔는데 막상 읽으시고 실망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좀 소심해지네요. ㅎ 사실 아직 ‘소식지’라고, 해야 할지 ‘뉴스레터’라고, 해야 할지도 고민하는 중이지요.
왠지 뉴스레터라고 부르면 ‘뉴스’가 담겨있어야 하는데 ‘뉴스’가 주는 어감이 좀 중대한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좀 꺼려진달까. 하지만 방금 결심했어요! ‘소식지’라고 부르기로…
뭔가 ‘소식지’라는 게 굉장히 intimate(사전상 ‘친밀하다’라는 뜻이라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 뉘앙스가 비슷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네요.)하고 그러네요.
먼저 생각보다 훠얼씬 많은 분께서 구독해 주셔서 너무 황송해요. 정말 내가 쓰고, 나만 읽는 소식지가 될까 봐 엄청나게 걱정했거든요.
[여기서 감동의 눈물 좀 흘리고 갈게요.]
계속 구독을 하신다면, 제가 이 소식지를 통해서 꾸준히 뭔가 시도, 또 재시도 하는 모습을 보실 거예요. (이게 “예요”가 맞는다는데 전 좀 거슬리는 거든요, 아닌가요?).
제가 즐겨듣는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줄여서 ‘비보’)”이라는 팟캐스트가 있는데 ‘비보’ 초창기 시절엔 정말 매주 다른 걸 시도하시더라고요. 한 주 하고 사라지는 코너도 있고 한 달 후 사라지거나, 어떤 주는 막 새로운 코너가 서넛씩 되고, 근데 그걸 옆에서 지켜 듣는 것도 꽤나 즐겁더라고요. ‘비보’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청취자들의 고민을 받아서 그걸 답해주는 컨셉트예요. 송은이 김숙 언니는 유명한 지인들을 많이 아시니 고민에 가장 적합한 답을 해줄 수 있는 지인을 찾아 전화 연결해서 그 고민을 해결해 주는 그런 프로랄까요. 지금은 송은이 김숙 언니들이 다 정말 잘나가고 (숙언니는 연예 대상도 탔고), 그러지만 ‘비보’ 첨 시작했을 때는 (2015년인가) 둘 다 고정프로그램 없었던, 커리어면에서 좀 어려운 시절이었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 은이 언니가 객기로, 전자상가 가셔서 마이크 구입해서, 남의 사무실 빌려서, 그 사무실 코너에서, 팟캐스트 녹음하고, 그게 ‘비보’의 시작이었죠. 처음에는 청취자 사연이 많지 않아서 다른 게시판에서 막 끌어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은이 언니는 송쎄오(송 CEO)되고 승승장구하고 계시죠. 20+연차 연예인들도 그렇게 시작하는데, 저라고 뭐 별게 있겠어요.
당연히 제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로는 아니라서 너무 기뻐요!
(그리고 참! 이미 아셨겠지만 전 땡땡이입니다! 혹시 땡땡이 분들 있으시면 손들어고 소리 질러 주세요!)
사실 “슬방생*”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마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절 아시는 분일 가능성이 크겠죠.
제가 너무나 대단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뭐 지나가다 구독하시는 일은 없으시리라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 모르시는 분들도 구독하신 분, 있더라고요. (하핫, 이 기회를 통해 만나게 되어서 너무나 반갑습니다.)
일단, 제 이름은 케이 윤이고요. 한국 이름이 당연히 있지만 쿨짹이라는 닉네임으로 20년 넘게 온라인에서 끄적거렸습니다.
현재 거주지는 밴쿠버, 캐나다이고 본업은 음…
사실 이게 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거 같아요.
학력과 경력(educational and professional background)을 바탕으로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본업은 건설업에 종사하는 엔지니어(civil engineer)가 젤 비슷하긴 하겠지만 난 엔지니어야!!! (i.e. I am an engineer!)라고 말하고 다니려면 꼭 필요한 기술사 자격증(P.E. or P.Eng.)을 취득하지 않아서, 엔지니어라고는 못해요. 제가 지난 20년 정도 동안 해왔던 일이 디자인 설계가 아니라서 별 취득의 필요를 못느꼈거든요. 어쨌든 현재로는, 엔지니어이긴 한데 왜 엔지니어라고 말을 못 해! 뭐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이제 25년 차 엔지니어링 컨설턴트라고 하면 아마 그게 제일 정확한 타이틀이라고 생각해요. 엔지니어링 컨설팅 외에 비즈니스 컨설팅도 좀 하고 MBA 동기들과 작은 투자법인도 운영하며, 어떤 때는 야근에 지쳐있고, 또 어떤 때는 반백수 일상을 살고 있는 40대 한국계 캐나디언 프리랜서 초딩맘입니다.
이민 온 지는 올해로 만 30년 (1993년 9월 1일 랜딩)이고요. 그래서 말하거나 글 쓰다 보면 어떤 단어들은 빨리 한국어로 생각이 잘 안 날 때도 있어요. (아니 아주 많아요.) 그럴 때는 영어로 쓰고 나중에 한국어 첨삭을 하는 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처음 랜딩한 곳은 캐나다 비씨 주 빅토리아였어요. 거기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밴쿠버로 나왔다 미국 갔다 밴쿠버 왔다 그 후로 여기저기 떠돌이 인생을 살다 다시 밴쿠버에 정착한 건 아마 꼬맹이 1살 때인 거 같네요.
소개의 1%도 안 한 거 같지만 이번 회차에서는 여기까지…
사전적 의미의 방황, 彷徨은:
1. 이리저리 방향 없이 헤매는 것.
2. 분명한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을 뜻하는 명사라네요.
제가 하는 방황은 1번 정의라기보다는 2번 정의에 가까워요.
‘분명한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 이 저의 지난 3x 년 간의 모습이에요. 다만 확신하고 자신할 수 있는 건, 20년 전의 나, 10년 전의 나보다는 현재의 내가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게 별거 아닌 거 같아도 매우 크거든요. ‘나를 아는 것’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는 것도 성장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방황을 겪어보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면 자신을 알 수 없을 거 같아요.
이 방황생활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좀 막막하긴 하네요. 아마 거의 매 소식지에 적어도 한 단원씩 방황생활의 이유와 여정에 대해 썰을 풀게 될 거 같아요. 소식지 제목 자체가 “슬기로운 방황생활”이잖아요.
솔까말, 방황은 뭐 다 하는 거 아닌가요? 방황 한 번도 안 해보신 분 손? ♀️
어렸을 때부터 사실 초중고 대학교 순차적으로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뭐 그런 사회가 정해놓은 시나리오가 있잖아요.
저도 한국에 살면서는 당연히 그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며 살았던 거 같아요.
방황은 아마 중학교 때부터 했던 거 같아요. 원래 아주 어렸을 때는 미술 선생님이 꿈이었는데, 경영학과 나오신 아빠가 경영학조차도 찐 학문이 아니고 별 볼 일 없으니(혹시 구독하시는 분 중 경영학도이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저도 경영학 공부했어요! 아주 재미있게 즐기면서요.) 무조건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해서 공대에 가라 하셨죠. 그래서 내가 공대를 가면 난 건축공학과를 가야지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이민을 와서 11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정말 바로 대학입시준비를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더라고요.
영어도 제대로 못 하고, 그때는 인터넷 같은 것도 없고, 주위에 뭐 물어볼 수 있는 언니오빠들도 별로 없었어요.
그때 캐나다에서 진학을 고려한 대학에는 건축공학과가 없어서 그럼 제일 비슷한(?) 구조공학을 해야지 생각하며 어찌어찌 공대에 입학했죠. 생각해 보면 구조랑 건축이랑 많이 달라요. 어쨌든 대학에 갔는데 Civil engineering에서 구조공학 옵션을 택한 후 (Civil engineering – 토목공학과 요즘엔 과 이름이 엄청 다양하다고…) 3학년 때부터 전공 공부를 하다 보니 너무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근처의 다른 칼리지에서 미술 과목도 좀 들었지만 결국에는 울면서 같은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갔네요.
대학원에서도 연구하고 조교로 일하면서도 계속 탈토목을 시도했던 거 같아요. 대학원 졸업하고 취직하고서도 탈토목을 꿈꿨지만, 하지 못했고 그 후로도 계속 방황했으니 몇 년이나 된 방황일까요? 그렇다고 방황하는 동안 본업을 안 한 건 아니고 본업도 나름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그냥저냥 살다, 작년에 큰 깨달음(epiphany)이 왔죠. 뭔가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건지 제대로 깨달을 기회도 없이 이렇게 계속 영원히 아니 은퇴할 때까지 살게 되겠구나 싶은 그런 생각이 굉장히 쎄게 왔다고 해야 할까요? 본업을 대폭 줄이고, 그 외 시간을 좀 더 본격적으로 방황하는 데 쓰기로 했어요.
뭔가 대단한 빅픽쳐는 없었지만 지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글을 더 써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어렸을 때는 글 쓰는 거 참 싫어했는데 어른이 되어서 이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잘 못쓰더라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나이 들면서 더 자주 하게 됐죠.
게다가 꼬맹이가 태어나서 1학년이 되기까지, 꼬맹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가 되기 전에 교류했던 지인들 및 친구들과 너무 멀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예전에는 블로깅하면서 다른 블로거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는데, 뭔가 그동안 너무 ‘나‘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엄마‘역할에만 충실하고 그 외에 내가 나를 위해서 했던 것들에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랄까? 엄마들은 다 아시죠? 어떤 느낌인지?
뭐 약간 이런 느낌입니다.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 5%에서 30%으로 늘어나서 뭔가 내가 재미있을만한 일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그래서 시작한 게 이 소식지예요.
그런 이유로 잘 안 쓰던 트위터도 살리고, 인스타에도 좀 더 긴 글을 써보려 노력하고, 브런치도 다시 살려볼까 하고, 아니면 영어로 미디엄에 글을 써볼까 하다가, 요즘 인플루언서들은 다 뉴스레터를 쓴대!!!라는 얘기를 접했지만, 내 깜냥에 무슨 뉴스레터를 써…라고 생각하다가, 이게 마감 날짜가 없으면 글을 쓰지 않는 저를 발견하게 됐죠. (벌써 여기서 엄청난 방황이 느껴지잖아요. 얼마나 인터넷을 헤매고 다녔는지…) 그리고 그 마감 날짜가 저, 자신과의 약속이면 효과가 없더라고요. 다른 누군가 (즉, 구독자님들)와의 약속이 되어야만 글을 꾸준히 쓰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SUBSTACK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브런치에서도 읽으실 수 있지만 섭스택 구독하시면 매주 이메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해드립니다!
뭔가 대단한 내용도 없을 거 같고 현재로서는, 사실 타겟독자가 누군지도 잘 몰라요.
쓰다보면 좀 더 명확해지겠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시시콜콜한 얘기를 해나갈 예정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고 할 얘기가 없으면 제 본업에 관해서 얘기를 해드릴게요. 근데 크게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별로 흥미롭지 않거든요.
보너스로
이거 저만 몰랐나요?
MS 워드에서 emoji를 사용하려면 윈도 키랑 세미콜론(;) 키, 혹은 마침표(.) 키를 같이 누르면 이 창이 뜨는 거?
워드에서 emoji 이렇게 넣을 수 있는 거 아셨어요??? 저만 몰랐나요?
이렇게 말이죠. 전 몰랐어요!!! 대애박 사건…
뭐 저한테는 대박사건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너무 감사하고요, 다음 주에는 좀 더 재미있는 얘기로 찾아뵐게요. 아마 캐나다에서 사는 얘기 그리고 좀 더 구체적인 방황에 대한 얘기 생각하는 중이에요. 하지만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궁금하신 점이나 이런 주제의 얘기가 소식지에 포함되면 좋겠다 뭐 그런 게 있으신 분들은 이메일 보내주시거나 코멘트 남겨주시거나 DM 보내주셔도 됩니다.
제가 보기보다 악플에 약해서 (악플 때문에 블로그 옮긴 적도 있고 그래요) 상처받을 거 같은 댓글은 참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한 주 보내세요!
덧/ 여기까지 읽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제가 필력이 그닥 좋지 않아 부족함이 많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리뷰하면서 에딧 하는데 계속 한 글자씩 사라지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한글의 오류인지 잘 모르게지만 중간중간 한자씩 사라진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번 읽었는데 캐치 못한 곳도 있을 거 같아서요. 미리 양해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