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둘 다 아니더라...
나와 남편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 커리어 중심적인 삶을 살았다. 우리 인생의 95% 이상이 일에 집중될 만큼 치열하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커리어를 바라보는 관점은 서로 달랐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 돈을 따라 다양한 프로젝트를 찾아다니며 엑스팻(expat)으로서 세계를 누비다 캐나다에서 나를 만났다. 나는 좀 더 전통적으로 corporate ladder를 오르며 직장 내 승진을 목표로 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나에게는 더 높은 타이틀이 중요했다. 타이틀이 있어야 그에 맞는 보상과 인정이 따라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 남편은 타이틀보다는 무조건 보수가 높은 것이 최우선이라는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둘 다 커리어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을 경험했다. 초년병 때는 잘 몰랐지만, 경력이 10년 차를 넘어서자, glass ceiling과 bamboo ceiling이 중요한 미팅 때마다 눈에 띄기 시작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는 동양인도, 여자인 사람도 드물었다.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그 장벽은 두 배로 높다는 것이 두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는 나를 diversity trophy로 활용하기 좋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나를 가치 있게 평가해서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평가가 나의 진정한 능력이나 성과보다는 회사의 이미지 관리에 더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 역시 유러피언 계 Caucasion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한계에 부딪힌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그 천장의 존재를 깨닫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길이 더 옳은지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점점 남편의 의견에 더 동의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천직이 아니라면, 단지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면, 보수가 높은 일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결론 내렸다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돈을 우선시하는 현실적인 판단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내면 깊숙이 일의 의미와 성취감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다. 단순히 보수를 쫓아 일하는 것에는 불가피하게 공허함이 따른다. (아닐 수도 있다.) 높은 보상이 만족감을 주긴 하지만, 그 자체로 내 삶의 모든 부분을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남편의 방식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가끔 나 자신이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면 괜히 불안해지곤 했다.
직장에서의 타이틀과 성과는 단순한 명칭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들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이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였고, 그 지표가 사라진 순간부터 커리어적으로 나를 정의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달은 것은,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필요하다고 느껴질 수 있으며, 그 욕심은 끝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난 그 악순환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운 좋게도 어느 순간 멈춰서 돌아볼 기회를 보았다. 그때 정신을 차려보니, 나와 가족이 만족할 만한 인생을 꾸리는 데는 생각만큼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보였다. 결국, 이제는 돈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의미를 느끼고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찾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슬기로운 방황생활’이었다.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