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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배 Aug 14. 2022

모로 가도 그것이 떡볶이라면

밀가루.

그것은 사랑.

 

우리 가족은 밀가루를 너무나 애정 하는데,

특히 나는 밥을 먹고 후식으로 빵을 먹는 그 유명한 탄수화물 중독자로서 가끔씩 글루텐을 소화하지 못해 장트러블이 나는 내 소화기관을 용납할 수 없어, 오로지 밀가루를 먹기 위해 유산균을 챙겨 먹는 주도면밀함을 발휘할 정도였다.


하지만 글루텐이 과유불급이라는 건 하루에 두 끼 이상 밀가루를 먹으면 그날 밤 꼭 장에 탈이 나는 큰딸도 알 지경이라 되도록이면 밀가루 섭취를 줄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떡볶이는 정말이지 떡볶이라 어찌할 방도가 없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는가.


떡볶이의 나라답게 배달은 물론이거니와 밀 키트의 종류도 맛도 엄청나다.

밀떡과 쌀떡의 큰 카테고리를 넘어서면,

이제는 너무도 단조로워진 크림이냐 고추장이냐 짜장이냐를 뒤로하고

크림과 고추장의 교집함, 로제 소스와 더불어 이제는 바질 페스토와 민트 초코까지 동서양, 메인 요리와 디저트의 경계를 가뿐히 넘나들고 있다.


떡볶이. 넌 어디까지 진화할 거니.


다양한 키트와 배달 세계에 도장깨기를 노리며 뛰어들었지만,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정도로 방대해지는 떡볶이의 세계관을 따라갈 수 없어 무기력함을 느껴 이제는 단순하게 즐기기로 했다.


짚 앞 식자재 마트에서 파는 순한 맛 떡볶이 가루와

오뎅, 그리고 떡. 우리 집은 이 세가지만 있으면 모두가 즐겁게 떡볶이 파티를 즐길 수 있다.


이제 떡볶이의 매력에 눈을 떠가는 중인 초3 큰딸과 군대의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배식문화에 길들여져 맵찔이가 된 신랑에게 매운맛의 강도는 순한 맛이 딱이며,

떡볶이의 "떡"만 좋아하는 나와 딸들 "볶이"를 좋아하는 남편인지라 서로 싸울 일 없이 사이좋게 노나 먹으니 떡볶이를 먹을 땐 언제나 평화롭다.

또 밀떡 파였던 우리가 글루텐의 공격을 피해보고자 먹어봤던 국산 쌀로 만든 쌀떡도 나름 쫠깃쫠깃 식감이 매력적이라 이제는 밀떡, 쌀떡(가끔은 가래떡) 구분 없이 다양하게 즐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은 밀떡, 누들 떡과 동그란 볶음용 오뎅으로 한솥 끓여본다.

그전에 혀끝에 고춧가루가 하나라도 붙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막내딸에게 짜장 떡볶이를 해주는 것은 저녁식사의 평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살짝 노란빛의 딱딱했던 밀떡이 빨간 떡볶이 국물을 흡수해 뽀얗게 부풀어 오르며 하늘하늘 부풀어 오를 때, 왠지 마음도 포근포근 따뜻해지면서 나도 이렇게 뽀얀 마음으로 부드럽게 세상을 살아가야지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유난이려나.


부풀어 올랐던 떡이 약간 투명해지며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갈 때 한 번 더 오로로로 끓여내

시원한 맥주와 함께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게 먹는다.


다음번엔 쌀떡으로 먹어보자,

오늘은 배불러서 못 먹었지만 다음엔 꼭 남은 국물에 김가루 뿌려 밥도 볶아먹자,

서로가 서로에게 다짐과 약속을 해가며,


오늘도 정말이지,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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