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모니터를 켜는 우리의 귓가에는 환청처럼 한 문장이 맴돈다.
“이번 분기도 무조건 S등급이어야 해.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내 밑천이 드러날 거야.”
남들이 보기엔 높은 연봉과 빠른 승진을 거머쥔 ‘핵심 인재’지만, 정작 당사자의 속은 타들어 간다.
성공은 기쁨이 아니라 ‘다음에 더 잘해야 한다’는 거대한 부채가 된다.
실적이 곧 나의 존재 증명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실적의 노예’로 전락했다.
박수 소리가 커질수록 “아직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 뒤로 서늘한 공포가 밀려온다.
이 숨 막히는 강박의 원형을 손현주 작가의 소설 『가짜 모범생』에서 발견했다.
주인공 선휘는 죽은 형의 자리를 대신해 ‘1등 모범생’이라는 가짜 삶을 연기한다.
엄마의 강박적인 기대와 “너를 위해서”라는 가스라이팅 속에서 선휘가 겪는 고통은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우리의 모습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엄마는 나를 형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완벽해야 해, 1등이어야 해. 실수하면 안 돼. 그게 나한테는 죽음이야.”
소설 속 엄마의 집착은 기업의 가혹한 핵심성과지표(KPI)를 닮았다.
“실패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암시는 개인을 조직의 부품으로 묶어두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죽은 듯 숨죽여야만 만족하는 엄마 앞에서 선휘가 느꼈던 그 끔찍함은, 자아를 지워가며 숫자를 채우는 우리의 내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AI는 이러한 심리를 ‘조건부 자존감’의 비극이라 진단한다.
선휘가 형을 복제하려 했듯, 직장인들도 조직이 원하는 ‘이상적인 인재상’을 연기하느라 진짜 자신의 욕망을 거세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뇌는 성취감을 느끼는 회로를 닫고 ‘생존 모드’로 전환된다.
이제 업무는 자아실현의 수단이 아니라, 실패라는 사형 선고를 피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된다.
AI는 경고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지배할수록 창의성은 죽고, 영혼이 빠져나간 ‘유능한 시체’들만 남게 된다고 말이다.
소설 속 선휘가 은빈을 만나 진짜 자아를 갈망했듯, 우리도 ‘실적의 노예’라는 사슬을 끊어낼 반란을 시작해야 한다.
성과와 존재를 분리하라 : 프로젝트의 실패가 당신이라는 인간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상사가 “실적 안 나오면 넌 끝이야”라고 협박할 때, 속으로 외치자. “성과는 회사의 것이지만, 나라는 존재는 나의 것이다.”
의도적인 ‘불완전함’ 즐기기 : 하루에 한 번은 완벽하지 않은 순간을 허용해 보자. 정갈하지 않은 메모, 10분간의 멍 때리기처럼 100점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작은 틈새가 당신의 숨통을 틔워준다.
‘가짜 삶’의 유통기한 정하기 : 언제까지 타인의 기대를 대리 운전하며 살 수는 없다. 선휘가 엄마의 세계에서 파문당할 각오를 했듯, 우리도 조직이 원하는 가면을 잠시 벗고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실적은 우리의 노동 가치를 증명할 순 있어도,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선휘가 죽은 듯 숨죽이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를 선택했듯, 이제 우리도 실적표 뒤에 숨겨진 진짜 우리의 얼굴을 마주하자.
우리는 성과를 위해 소모되는 노예가 아니라, 그 자체로 빛나는 삶의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