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꽤 열심히 산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방향이 맞는 걸까.”
김초엽 작가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떠올리면, 이 질문은 더 또렷해진다.
이 소설은 거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닿을 수 없는 거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더 묻게 된다.
우리는 지금 도착할 수 있는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멈추지 않고 가고 있는 걸까.
우리는 종종 방향보다 속도를 먼저 낸다.
남들이 가는 길, 안정적으로 보이는 선택, 지금 해야 할 것 같은 일들.
그 위에서 열심히 달린다.
하지만 방향이 없는 노력은 어느 순간 우리를 흔들리게 만든다.
이 소설의 표제작 속 안나는 말한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이 문장은 확신이 아니라 방향을 스스로 선택한 태도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르게 가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기준이다.
우리는 한 번 선택한 길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이미 시간과 노력을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계속 간다.
조금 불안해도, 조금 어긋난 것 같아도.
하지만 방향은 중간에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이런 질문이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이 문장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정말 의미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우리도 비슷하다.
이 길이 여전히 나에게 의미 있는지 처음의 이유와 지금이 같은지 한 번쯤 멈춰서 돌아봐야 한다.
멈추는 것은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맞추는 선택이다.
표제작 속 안나는 알고 있다.
자신이 향하는 곳이 도달할 수 없는 거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출발한다.
“실패가 예견된 여정이지만 ‘기억’하는 안나의 출발은 전혀 무모하지 않다.”
이 선택은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의미는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모든 선택이 정답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남들이 보기에 맞는 길이 아니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길.
결과보다 방향을 기준으로 선택할 때 불안은 조금씩 줄어든다.
우리는 자주 더 빨리 가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더 빨리 가야 할까”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의 노력은 틀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방향을 한 번 점검할 시점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잠깐 멈춰도 괜찮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어쩌면 변화는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다시 방향을 정하는 순간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