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누운 배』 특집 2
동기보다 빠른 승진, 남보다 높은 고과를 받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피 터지게 싸운다.
엑셀 창과 씨름하며 밤을 새우고, 회의실에서는 내 기획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기를 쓴다.
직장인으로서 더 높은 연봉과 타이틀을 욕심내는 것은 당연하고도 건강한 생존 본능이다.
그런데 마침내 남들이 부러워하는 타이틀을 거머쥔 순간,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는 질문 하나가 스친다.
“내가 지금 목숨 걸고 쟁취한 이 '직함'과 '사내 정치력'이, 이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에도 쓸모가 있을까?”
우리는 조직이 짜놓은 트랙 위에서 1등을 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그 트랙 밖의 야생에서 살아남을 '진짜 생존 배낭'은 전혀 싸지 못하고 있다.
치열한 사내 정치와 조직의 생리를 서늘하게 그려낸 『누운 배』를 펼쳐보자.
소설 속 주인공은 조직 내에서 이기기 위해 분투하다가 마침내 어떤 자각에 이른다.
"희망과 기대라고 부르던 것. 더 높은 직함, 연봉, 영향력, 권세… 그것들이 정말 '나'라는 사람이 바라는 걸까? ... 그것은 남들의 욕망이었습니다."
우리가 밤잠 줄여가며 쫓았던 그 타이틀은 사실 내 것이 아니라 '회사가 필요로 하는 완벽한 부속품'의 조건이었다.
회사가 던져준 '가짜 성배'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느라, 정작 우리는 '나만의 무기'를 벼릴 시간을 통째로 조직에 헌납하고 있었던 것이다.
승리할 수는 있어도 영원히 지킬 수는 없는, 규칙 없는 다툼에 인생을 걸고 있었던 셈이다.
AI는 이런 현상을 데이터 과학의 용어인 '과적합'으로 설명한다.
특정 환경(현재의 회사)에만 너무 완벽하게 최적화된 모델은, 새로운 데이터(이직, 퇴사, 시장의 변화)가 주어졌을 때 형편없는 결과값을 내놓는다.
특정 회사의 결재 라인을 타고, 특정 임원의 성향에 맞추는 데 에너지를 올인한 직장인은 조직이 흔들리거나 배가 누워버릴 때 가장 큰 위험에 처한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 치열함이 오직 '이 조직' 안에서만 통하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조직에 과적합된 인재는 성벽 밖으로 밀려나는 순간,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고철이 될 확률이 높다.
승진과 연봉 향상을 향한 열망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그 훌륭한 치열함을 100% 회사에만 몰빵하지 말자는 경고이자 다짐이다.
명함 밖의 기술 축적 : 'A회사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떼어냈을 때, 우리의 이름 석 자 뒤에 붙일 수 있는 '기능'은 무엇인가? 사내 보고서용 글쓰기가 아니라 시장에서 통하는 기획력, 혹은 데이터 분석력처럼 언제든 빼들 수 있는 자신만의 칼을 갈아야 한다.
투트랙 생존법 : 회사에서의 인정은 철저히 비즈니스로 대하되, 남는 에너지는 '내 세계의 성배'를 찾는 데 투자하라. 조직의 별이 되려는 에너지를 20%만 떼어내도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
내 이력서의 주도권 : 회사가 시키는 일만 잘 해낸 이력서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지금 하는 업무 속에서도 '내 커리어'에 자산이 될 프로젝트를 선별하고 주도적으로 연결짓는 영악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충분히 치열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 치열함이 조직의 성벽 안에서만 유효하다면, 배가 기울 때 우리를 구해줄 구명정은 없다.
남들의 욕망이 빚어낸 가짜 성배를 향한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이제 명함 없이도 증명할 수 있는 자신만의 진짜 무기를 점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