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함을 '어른의 책임감'으로 포장할 때

소설 『누운 배』 특집 3

by 업스트리머

부제 : 침묵의 대가로 받는 안락함, 이혁진 『누운 배』



'어른의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마취제


​회의실에서 상사가 명백히 부조리한 지시를 내린다.

누군가 총대를 메고 반박해야 할 타이밍.

목 끝까지 "이건 아닙니다"라는 말이 차오르지만 기어이 꾹 삼켜버린다.


​자리에 돌아와 모니터를 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래, 다음 달 대출 이자랑 아이 학원비 생각해야지. 더러워도 꾹 참고 넘어가는 게 진짜 어른이지.'



우리는 비겁한 침묵을 선택할 때마다 그것을 '가장의 무게' 혹은 '어른의 책임감'이라는 숭고하고 고결한 단어로 포장한다.

그래야만 바닥에 떨어진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포장지가 두꺼워질수록 속은 더 지독하게 곪아간다.




소설 『누운 배』가 묻는 서늘한 진실


침몰해 가는 거대 조직 안에서 타협하고 순응하는 인간 군상의 민낯을 파헤친 소설 『누운 배』는 이 지점을 정확히 찌른다.


소설 속 주인공은 부조리에 눈감는 중년 선배들을 보며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높은 곳에서 질금질금 떨어지는 쾌락과 평안을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대가라고 여겼기 때문에 구린 것을 구리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지켜야 할 가족과 체면이라는 것이 생긴 사람들이었다."


조직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족과 체면'을 아주 훌륭한 볼모로 잡는다.

위에서 떨어지는 월급이라는 '작은 안락함'에 길들여진 채, 우리는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가족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정작 나 자신의 영혼을 조직의 부품으로 헐값에 넘기고 있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가 낳은 만성적 자기혐오


​AI는 왜 우리가 부당한 지시에 순응한 날 유독 더 피곤하고 우울한지 그 이유를 분석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당화된 인지 부조화'로 설명한다.

​'이건 옳지 않다'는 신념과 '어쩔 수 없이 순응한다'는 행동 사이의 끔찍한 괴리를 견디기 위해, 뇌는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강력한 면죄부를 끌어온다.


하지만 이런 생존형 합리화가 반복되면, 뇌 깊은 곳에는 스스로를 향한 혐오가 차곡차곡 쌓인다.

직장인의 번아웃은 단순히 업무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매일 거울 속의 '비겁한 나'를 마주해야 하는 심리적 피로감에서 온다.




비겁함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법


​당장 상사의 책상을 엎고 사표를 던지라는 낭만적인 투쟁을 권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내 내면을 향한 기만은 멈춰야 살 수 있다.


미화의 중단 : 부당함에 침묵한 날, 그것을 '가족을 위한 위대한 희생'으로 포장하지 마라. 대신 일기장에 "나는 오늘 대출금 때문에 비겁했다"라고 한 줄로 적어라. 고통스럽지만 팩트를 직시하는 것만이 영혼의 부패를 막는다.


비겁함의 한계선 설정 : 모든 싸움에서 이길 순 없지만,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나만의 마지노선' 하나는 그어두어야 한다. 법적 책임을 뒤집어쓸 일이나 동료를 부당하게 짓밟는 일 앞에서는 타협의 스위치를 꺼야 한다.


알을 깰 동력 비축하기 : 정직하게 대면한 나의 비겁함은 묘한 분노를 낳는다. 그 분노를 술로 풀지 말고, 조직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독립 자금'과 '실력'을 모으는 차가운 에너지로 치환하라. 그 에너지가 언젠가 당신을 알 껍질 밖으로 밀어낼 것이다.


가족과 체면은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지만, 그것이 내 비겁함을 덮어주는 영원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구린 것을 구리다고 인정하는 그 아픈 정직함만이, 조직의 부품으로 전락하려는 우리를 끝까지 인간이게 한다.

오늘 당신의 침묵은 숭고했는가, 아니면 그저 편리했는가.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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