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상사의 기분에 맞추지 않기로 했다

'넵'병 탈출기

by 업스트리머

부제 : 영혼 없는 리액션은 그만, AI가 처방하는 『이방인』의 거리두기

* 유튜브 팟캐스트


우리는 모두 '넵'병 환자다


​'지잉-'.

월요일 아침 8시 50분, 팀 단톡방이 울린다. 부장님이 공유한 경제 기사 링크 하나.

"다들 이거 참고해."


​내용은 클릭해 보지도 않았지만, 손가락은 이미 생존 본능으로 움직이고 있다.


"넵! 알겠습니다.", "넵!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나 역시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넵'을 입력하고, 혹시나 너무 건조해 보일까 봐 웃음 이모티콘(^^)까지 황급히 덧붙인다. 마치 조건반사 실험에 참여한 파블로프의 개처럼.


회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이번 기획, 방향성 어때?"라는 질문에 내 속마음은 '현실성 제로'라고 아우성치지만, 입으로는 "넵, 신선한 접근입니다"라고 내뱉는다. 반대 의견을 냈다가 길어질 회의와 미묘하게 굳어질 상사의 표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퇴근길, 턱관절이 뻐근하다. 하루 종일 내 감정을 죽이고 상사의 기분에 맞춰 연기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일을 하러 온 걸까, 아니면 삼류 배우로 무대에 선 걸까.


이 병명은 명확하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 무조건 긍정하는 슬픈 방어 기제, 바로 만성 '넵'병(Yes Disease)이다.




거짓 감정을 거부한 남자, 뫼르소


​이 지독한 삼류 연극을 끝내기 위해, 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처방전으로 꺼내 들었다.


​소설 속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 비난받고, 급기야 재판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는다. 세상은 그가 사회적 관습을 무시했다며 분노했지만, 작가 카뮈는 그를 옹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단지 거짓말을 거부했을 뿐이다."


​여기서 거짓말이란 단순히 사실을 감추는 게 아니다. 내 안에 없는 감정을 있는 척 꾸며대는 행위, 즉 '사회적 연기'를 뜻한다. 뫼르소는 슬프지 않은데 슬픈 척하지 않았고, 동의하지 않는데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사회가 강요하는 '적절한 가면'을 거부하고, 철저히 자신의 감정 그대로 존재하기를 택한 것이다.


​우리의 '넵'병은 결국 타인의 기분을 맞추느라 나를 지우는 습관이다. 뫼르소의 무심한 태도는 차가움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정직한 '거리두기'였다.




AI 참모가 바라보는 '넵'병의 심리와 뫼르소 효과


​도대체 우리는 왜 0.1초 만에 반사적으로 "넵"을 외치는 걸까? 나는 AI 참모에게 '직장인의 넵 병과 뫼르소의 심리'에 대한 정밀 분석을 요청했다.


돌아온 AI의 답변은 뼈아팠다.


"당신의 '넵'은 긍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절 민감성(Rejection Sensitivity)'에서 오는 방어 기제입니다. 늦게 대답하면 미움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뇌를 지배해, 생각보다 반응이 먼저 튀어나가는 것이죠."


​그렇다면 뫼르소의 태도는 직장 생활에 독이 될까? AI는 오히려 그를 '현대적 멘탈 관리의 고수'로 재해석했다.


​"뫼르소의 무심함은 냉정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과 나의 업무를 분리하는 탁월한 '정서적 차단 기술'입니다. 그는 상사의 기분을 자신의 책임으로 떠안지 않음으로써 감정 소모와 번아웃을 원천 봉쇄합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기분이었다. 우리는 뫼르소를 사회부적응자라 손가락질했지만, 사실 그는 감정 노동의 가성비를 극대화한 '쿨한 전문가'의 원형이었다.


상사의 기분에 전염되지 않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감정 과잉의 사무실에서 가장 시급한 생존 전략이 아닐까.





​이제 회사에서 '이방인'이 되기로 했다


​AI 참모의 조언을 듣고, 나는 오늘부터 회사에서 자발적 '이방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왕따가 되겠다는 게 아니다. 습관적인 '감정 노동'을 파업하겠다는 선언이다.


​첫 번째 반란은 '반사 신경 끄기'다. 메신저 알림이 울려도 0.1초 만에 "넵" 하지 않는다. 대신 3초간 숨을 고르고 "내용 확인 후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한다. 무의식적인 복종의 속도를 늦추자, 쫓기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두 번째는 '영혼 없는 리액션 멈추기'다. 부장님의 썰렁한 농담에 억지로 박장대소하는 대신, 옅은 미소만 짓고 조용히 내 모니터로 돌아온다. 상사의 기분은 상사가 책임질 몫이다. 내가 그 감정의 쓰레기통이 될 필요는 없다.


​회사가 원하는 건 일 잘하는 직원이지, 기분 맞춰주는 하인이 아니다. 뫼르소처럼 조금은 건조하게, 하지만 솔직하게.


그 적당한 거리감이 나를 지키고, 역설적으로 회사를 더 오래 다니게 할 '쿨한 생존법'이 아니겠는가.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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