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라비 공항의 짐 찾는 곳에서 나는 머리에는 커다란 헤어밴드를 하고(신혼여행으로 간 일본의 편의점에서 산 무인양품 제품이다. 한마디로 늘어질 대로 늘어진 것) 목이 늘어난 회색 반팔 티셔츠에(남동생이 입다 버린 것) 역시 늘어진 미니스커트를 입고(산 지 10년은 더 된 것), 끈 달린 슬리퍼(이마트!)를 신은 채였다. 등에는 내 복덩이 배낭을 메고 어깨에는 잡동사니를 넣은 숄더백도 하나 더 멨다.
내 옆에 선 선남선녀의 인생이, 나는 부러웠다. 부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과 내가 살아볼 수 없는 인생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 같은 거였다.
학창 시절의 어떤 여자애들에 대한, 그 여자애들의 인생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말간 얼굴에 입을 가리고 웃는 여자애들. 조용히 말하고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여자애들. 교복에 구겨진 자국 하나 없이 셔츠의 목과 소매가 언제나 깨끗한 여자애들. 체육 수업을 마치고 수돗가에서 얼굴을 씻고 난 후에는 손수건을 꺼내 찍어내듯 물기를 닦아내는 여자애들. 내 교복은 항상 구겨져 있었고 내가 수돗가에서 물을 틀기라도 하면 늘 옷이 흠뻑 젖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얼굴의 물기는 언제나 바람에 말렸다. 그런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자애들의 인생.
짐을 찾은 후 우리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라질 것이다. 나는 공항을 빠져나와 선착장으로 가장 싸게 가는 법을 찾아 헤맬 것이고, 그들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고급 리조트의 밴에 가볍게 올라탈 것이다. 내가 겨우 몸을 구겨 넣은 사설 셔틀버스는 나를 끄라비 시내의 알 수 없는 장소에 내려줄 것이다.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어리둥절해할 동안, 그들은 시 외곽의 리조트에 도착해 미소 띤 직원에게 방으로 가는 길을 안내받을 것이다. 아름답고 청결한 방에 도착해서는 벨보이에게 팁을 좀 쥐어주고 방문을 닫을 것이다.
여자가 창 너머의 프라이빗 풀을 향해 걸어가면 에어켠을 켠 남자가 웃으며 그녀의 뒤를 따를 것이다. 여자는 풀에 발끝을 담가볼 것이다. 남자는 “수영부터 먼저 할까?”라고 물을 것이고 여자는 “수영은 나중에 하고 우선 구경부터 할까?”라고 제안할 것이다. 둘은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지금까지도 무거운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가벼운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리조트를 산책할 것이다.
내가 겨우 피피행 페리 선착장에 도착해 떠나기 직전의 배를 잡아타기 위해 끝도 없이 긴 땡볕의 도크 위를 미친 듯이 달려 다이빙하듯 배에 뛰어들고, 커다란 몸집의 북유럽 남자들이 아우슈비츠행 열차를 타기나 한 것처럼 우울한 표정으로 구겨져 있는 지하 선실에 겨우 자리를 잡고 있을 때, 그들은 그들 인생의 아름다운 한때를 맛볼 것이다. 그런 그들의 인생이 나는 부러웠다. 그들의 인생 전반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을 운과 복이 부러웠다.
그때 내 인생의 운과 복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태국으로 2주 동안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운이 넘치고 복이 터져서가 아니라 남편이 실직을 했기 때문이다. 나의 운과 복의 시대는 이제 끝난 것인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인가. 이 정도면 내 주제에 과분할 정도로 운이 좋고 복이 넘치는 것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가끔씩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쓰셨던 일기장에서 훔쳐본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참 박복하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내 일기장에 그런 문장 따위는 쓰고 싶지 않다.
그때 남편이 활주로를 걷는 나와 아이들을 뒤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나는 헤어밴드를 하고 배낭을 등에 메고 배낭에 운동화를 매달고 숄더백까지 어깨에 멘 채로 끈 달린 슬리퍼를 신고서 씩씩하게 걷고 있다. 늠름한 어깨와 탄탄한 허벅지와 단단한 종아리. 나의 뒤를 배낭을 멘 아이들이 쫓아오고 있다. 각각 헬로키티와 도라에몽이다.
그리고 프레임 바깥쪽, 내 옆에 그 커플의 모습이 보인다. 팔짱을 낀 채 단정한 차림으로 다정히 걷는 그 커플이. 나와 다른 인생을 사는 그 커플이. 어쩌다 우연히 같은 프레임 안에 담긴 사람들이. 그 사진을 통해 나는 내가 아닌 나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옆에서 걷고 있는 그 커플의 뒷모습도 함께 본다. 둘은 한눈에도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처럼 살게 될 일도, 그들이 나처럼 살게 될 일도 없을 것이다. 운이고 복이고 상관없이, 그저 자기 인생을 사는 것뿐이다.
우리는 잠시 끄라비라는 도시의 공항에서 만났다가 헤어질 사람들이다. 심지어 그들은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고, 나도 거리에서 그들을 마주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때때로, 나는 세상의 여기저기에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