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이기 전에 한 남자.

보고 싶네 울 아버지... 진짜 아버지 보고 싶은 거 맞아?

by 그냥살기

실은 아직도 믿기질 않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한 줌 재로 땅 속에 묻히신 지가 두어달쯤 되었단 그 사실이 너무나 낯설다.


분당 서현역에서 3-2번 버스로 갈아탄뒤 잠시 피곤한 심신을 내려놓고 멍 때리다 보면 관리가 잘 된 몇 개의 공원과 하천을 지나치고 그러다 보면 금세 아버지의 요양병원 앞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몇 발자국 안 되는 곳에 위치한 인공 실개천을 끼고 있던 외관만 새 건물이었던 요양병원.

그 요양병원 1층에 들어서면 언제나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나를 반겼었다. 1층에서 잠시 머뭇거리며 찜찜해

하다 "어서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지"하고 정신을 가다듬고서는 아버지가 계신 2층으로 급하게 발걸음을 서둘렀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 병원을 선택했던 이유는 아버지께서 산책하실 때 실개천 흐르는 걸 보시면 잠시라도 기분이 나아지실까

싶어 일부러 그 병원에 모셨던 건데...

그런 나의 의도가 무색하게.
아버지께선 단 한 번의 짧은 산책을 마지막으로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망자가 되어 버리셨다.


올 7월 7일 처음 그 병원을 들어가실 때만 해도
그리 황망히 한 달도 못 사시고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나는 아버지께서 그리 가실 줄은 꿈에도 모르고 간병비 걱정에, 병원비 걱정에
아버지의 회복은 뒷전인 채로 앞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를 병원비 마련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땅을 팔아야 할지... 그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할지... 눈만 뜨면 내가 하는 짓거리라곤 노상 병원비 마련에 관한 얕은 방법을 꾀하는 것뿐이었다.


아버지를 위해 다른 가족들은 아무도 발 벗고 나서지 않으니.
내가 아버질 위해 총대를 메고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짓눌려 나 스스로 아버지의 간병에 총력을 기울이고, 나 스스로 만든 그 무게에 짓눌려 압사하기 직전이었던 그때에 아버지께서는 갑작스럽게 사뿐히 떠나 주셨다.

아버지께 "어떡해 이렇게 갑자기 떠나" 이런 말을 건넬 사이도 없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 저녁
전에 없이 기분이 좋아 보이시고, 다리 힘도 많이 회복 되셨었다.

강진의 안동역에서 라는 노래가 듣고 싶으시다 길래 이미 바닥이 나 버린 데이터를 의식하지도 않고, 몇 번씩 반복해서 그 노래를 들려 드렸었다.

혼자 힘으로 앉아 계시다 눕혀 드리고, 주무시는 걸 보고서는 그때서야 몰래 병원 문을 나섰었는데...

나는 그런 아버질 보며, 혹시나 아버지께서 오래 사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도 했었는데...

어쨌든 아버지는 내가 진심으로 참회할 시간을 주지 않으시고, 그렇게 훌쩍 가버리셨다.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러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네가 언제부터 아버지와 끈끈한 부녀 사이였다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자빠졌느냐"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다 알만한 내놓은 자식 코스프레를 서슴지 않았던 나.
내 애정결핍의 근원적 문제를 모조리 부모에게로 돌려 버렸던 나는 언제나 대놓고 부모에게 내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내뱉어 버리는 이 땅의 몹쓸 딸자식들 중 하나였었으니까.

그렇게 망나니 같던 내게
부모라는 사람들이 내 부모이기 이전에 한 존재로서의 욕망을 갖고,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이천구년 봄 나는 그 때 하고 있던 이발소에 싫증.. 아니 염증을 느끼고, 나가지도 않은 가게 문을 잠가 버리고 소심한 자살을 꾸준히 시도했었다. 어떻게하면 죽을까만 고민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땐 앞으로 내게 다가올 앞 날들이 시시하게만 느껴졌었고, 뒤를 돌아다 보아도 어디에도 따뜻한 구석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던 그때에 나는 죽어 버려야겠단 생각 외엔 달리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문득 이 세계에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내 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했었고, 나는 그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 어느 사찰의 단기출가를 하면서 자살시도를 멈추게 됐다.

어쨌든 단기출가 이후로 내 삶은 완전히 다른 색이 되어 버렸다.

갖가지 틀로 나를 억압했었고, 부모에겐 부모의 틀을, 친구에겐 친구의 틀을 씌워 놓고, 그 무엇이든 이건 이래야 해 저건 저래야만 해 라는 틀 속에 스스로 갇혀 살던 나란 인간이 그 틀의 구속에서 해방됐다고나 할까?......

내가 만든 내 틀을 가지고 나 자신을 괴롭히고, 남도 괴롭혔었구나! 라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면서 그 이후로는 아버지를 한 남자로 한 인간으로 보게 되기 시작했고,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엄마가 자주 궁금해졌고, 그만큼 자주 연락하게 됐었던 것 같다.

사실 내 애정결핍 때문에 아버지께 사랑을 갈구했었던 건지...
아버지와 내가 같은 인간으로 느껴져 거기에서 오는 연민이었는지...
뭐가 뭔지 지금까지도 헷갈리지만 어찌 됐건 나는 아버지를 보며 "인간이란 참 쓸쓸한 존재구나" 딸이 둘이나 있어도, 아들이 셋이나 있고, 아내가 있어도 아무도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들 자기 걱정에 한 시름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었다.

내가 목격한 아버지는 홀로 병과 외로움과 싸우다 돌아가셨다.

곁에 가족이란 이름의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고통을 나눠 가질 수는 없었던 듯싶다.
나도 늘 내 걱정이었다.
늦은 나이까지 가정을 꾸리지 않은 중년의 나는 허한 마음을 둘 곳이 없어 방황하다 뒤늦게사 아버지에게 효녀 노릇을 해보고 싶어 아버지에게 집착 아닌 집착을 했었을 뿐.

예전에 아버지를 아버지란 틀에 가두어 보았을 때는 그가 너무나 밉고 싫고 증오스러워 가까이 하기도 싫었다.
왠지 그가 나의 아비라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으니까... 내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것도 모두 그의 탓 같았으니까...
...
...
...
그러다
아버지가 한 인간으로 보이자 그가 너무 가여웠고,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졌고, 그의 얘기가 기꺼이 듣고 싶어졌다.

아버지이기 전에 그저 한낱 인간의 욕망을 품은 나약한 한 존재로서 그가 보이기 시작하자 더 자주 아버지가 보고 싶어 졌는데...

이젠 아버지는 곁에 없고 땅 속에 묻혀 추억으로만 남은 내 아버지...

오늘따라 아버지가 더 그리운 건 내가 외롭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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