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인이예요.

여전히 알량한 자존심에 먹이를 주는 죄인이죠.

by 그냥살기

스무살 이후 곧바로 독립해 버렸다. 아니 살기 위한 탈출. 그럼에도 어쩌다 일년에 몇번 들르지도 않는 부모님 댁은 내게 간신히 탈출한 지옥에 제발로 찾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게끔 만드는 일이었다.
부모님 집이란 공간은 어린시절부터 참고 견뎌야 하는 일에 가까웠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 그곳에 들를땐 단단히 각오하고 나선다.

큰맘 먹고 좋은 기분으로 내 집을 출발하지만 이 기분은 얼마 못가 힘을 잃고 만다.

부모님 댁에서는 단 몇시간도 단잠을 이룬 기억이 없다.

지쳐서 그 곳에 갔든 일정이 있어 피치 못해 갔든 간에 예외 없이 그런 편이었다. 에이 그럴리가 너무 심하게 오버하네. 그럴수도 있겠지만,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그 이상이면 이상이지 그 보다 덜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부모님을 찾아뵌 것은 어버이날도 있었고, 화가 부쩍늘은 아버지와 그 곁을 52년째 지키고 계신 엄마가 안스러워 재롱잔치라도 열어 드리고 싶어 길을 나서게 된 거였는데, 의외로 뜻밖에 수확을 안고 돌아오게 됐다.

증여라도 받은 거냐고?(나는 여전히 거지근성과 싸우는 중)

그건 아니고.

엄마가 화병이 있으셔서 상대가 듣는 것과 무관하게 사람만 곁에 있으면 자기 혼잣 말씀을 계속 하실 때가 종종 있으신데, 이번엔 엄마의 아버지에 대한 비난, 언제나 술을 끼고 사는 오빠에 대한 염려, 그 밖에 이미 고인이 되신지 오래인 조부모들 욕까지 싸잡아 시간만 나면 라디오 녹화 방송처럼 하시고, 또 하시고 주무시고 일어 나셔서 새벽녁에 또 하셨음에도 화가 나지 않고 편히 들을 수 있었다는 거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이해가 조금 넓어진 거 같아 내 자신이 기특하다.

아마도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늘어 갈수록 타인에 대한 이해도 더불어 넓어지는 듯.

그러나 고모의 시어머니 조문을 다녀 오느라 부모님 댁에 들른 오빠를 마주치는게 내심 불편하고 조심스러웠다. 내가 도착 했을때 이미 거나하게 술에 취해 차 안에서 자고 있던 오빠는 내가 도착하는 인기척을 들었는지 안방으로 들어와 꼬꾸라지듯 맨바닥에 몸을 뉘였다. 워낙에 마른데다 술로 끼니를 때우다 시피하니 자기발로 걷는게 신기할 정도의 오빠인데,
아마도 앙상한 정신력으로 버티는 중일지도 모른다.
읍내에서 준비해간 오징어와 깐새우 엄마 밭에서 뽑은 쪽파와 부추, 비싼 감자를 넣고 부침개를 만들었는데, 저녁을 겸해 드시라고 그걸 내어간게 발단이 되어 또 한번 미니 술판이 벌어졌다.

간이 딱 맞다는 말을 연발해가며 주지도 않은 술을 찾아와 술을 들이 붓는 오빠. 그러나 부침개를 젓가락으로 만지작댈뿐 먹지는 않고 있다.

이미 의식은 안드로메다로 가고, 숨어 있던 속마음을 거침없이 꺼내놓는 오빠.
술의 힘을 빌리지 않았을 때는 목소리 듣기 조차 쉽지 않은 오빠 입에서 응어리진 말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5남매중 중간에 낀 셋째 오빠는 가족돌봄의 책임감이라는 사명을 띄고 이 땅에 온 것 같은 사람이다.

클 때도 자기 몫을 주장하는 법이 없었고, 형제든 부모님이든 조금만 손 내밀라치면 자기 살점이라도 기꺼이 뜯어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리하면 서로 다정히 살아갈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간직한 사람 마냥. 오빠가 받고 싶은 사랑만큼 많이도 퍼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를 포함한 다른 형제들에게 건너간 돈은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마저 오빠 손에 들어 오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고등학교 무렵부터 오빠가 주는 정기적인 용돈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살았다.

르까프 양말을 사고, 언더우드 옷을 사고, 또 르까프 가방을 사고, 신발을 사고, 그 물건들을 걸치면 열등한 나도 멋진 사람으로 보여질 것 같아 돈만 생기면 몸뚱이 가리는 천조가리와 가방을 사들였었다.
모아 놓은 돈도 없으면서 으시대고 싶어 차렸던 두번째 이발소를 낼 때까지 오빠의 지갑은 언제나 내게 열려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시절 내게 살갑지 못해 미안 했다며 3천만원이 넘는 돈을 아무때나 전해준 오빠.
오빠의 피 같은 돈은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내 열등감과 자만심을 채워 주는데 쓰여 졌었다.

그땐 몰랐는데,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참 못된년 이었구나 싶어 뒤늦은 죄책감을 한켠에 두고 산다. 죄책감이 있다고 해서 딱히 오빠를 챙기는 건 아니다. 나의 지금의 인간성의 바닥은 딱 여기까지다.
한때는 건방지게 오빠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오빠를 대하기도 했었지만,
그거야말로 남의 인생에 도움 아닌 간섭을 하는 것에 불과하단걸 깨달은 뒤로는 그저 오빠의 자생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오빠는 본인이 믿고 존경하는 부동산을 했던 사람에게 장기투자 명목으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돈을 보냈다고 한다. 나중에사 알게 된 일이지만 애초에 투자가 이뤄진 적도 없고, 오빠의 그 지인 개인이 주식 선물이나 옵션같은 것을 하고 자기 생활비로 써버렸다는게 발각된 후에도 오빠는 지금까지 받을 수 있을꺼야라는 말로 다른 모든 상황 정리를 외면하고 있다. 인정하면 받을 수 없다며 불안해 하기도 하고, 그 돈을 받기전엔 죽을수도 없다며 울부 짖는다......
이미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이 대부분이라 형사고발을 한다 해도 6개월 구속이 될 뿐이라는 변호사의 말을 오빠에게 전했을 때도 화만 내며 받을 수 없다는 말을 제발 좀 하지 말라고......
원금만 몇억이다보니 그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살아 있는게 신기할 정도다.
젊은날 오빠 자신에게 돈 한번 써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 돈을 못 받냐며 억울해 하는 나의 오빠.
이성적으로 해결 하자며 길어지더라도 소송을 해보자 설득도 해봤고, 설령 돈은 못 받더라도 그 놈을 응징이라도 하자고 말하기도 했지만, 오빠는 그럴수록에 술병만 잡고 우울속으로 빨려 들어 갔다. 곁에서 보기에 오빠는 돈도 돈이지만, 믿었던 인간에 대한 배신과 상실로 더 혼란스러워 하는 듯 보여졌다.

너무 미안하고 미안하고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달리 어떻게 해줄 것도 없고, 돈이라도 있으면 여러뭉치 떡하니 떼주고 싶은데, 내가 성실하게 돈버는 재주가 메롱이다. 언제나 일을 하고 있긴 했는데, 그놈의 지랄같은 애정결핍이 뭔지 헛헛함을 채우려 쓰잘때기 없는 몸치장과 먹거리에 쓰는 돈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그거라도 했으니 목숨줄 연명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이젠 그리 살았던 내 자신이 싫어 옷을 사지 않는지도 모른다.
늘 주변 도움으로 근근이 살았던 나였고, 그나마도 이젠 지병이 있단 핑계로 일을 줄이게 되고 보니 돈하고 가까워지는 운발도 다 옛날 얘기가 됐다. 그래서 더 맘이 아리다.

오빠가 술만 먹으면 두세시간 한 맺힌 얘기를 하고 또 다음 날이면 그 얘길 한 줄은 꿈에도 기억 못하고, 다시 똑같은 얘기를 토씨하나 빠뜨리지 않고 반복하는걸 들을 땐 가슴이 내려 앉는다.

그렇게 몇 년간 긴 사연을 듣다 보니 더는 그 말들을 듣기 조차도 버거워지는 상태가 오고 말았다. 그렇지만 당장 돈을 갚지 못하니 오빠가 내게 전해 준 돈 만큼의 고마움이라도 갚아 보자고 그런 맘으로 오빠를 대하고 있는 나.

너무 터무니 없이 많은 지원을 받다 보니 오빠에게 빚진 마음으로 지내게 됐고, 날이 갈수록 죄책감은 땅이라도 뚫을 기세로 무거워지기만 한다.

지난날 그때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돈을 받으며 좋다고 희희낙낙 댔었는데, 어느새 갚지 못한 돈 앞에 고개 숙이고 있는 내가 있다.
오빠 앞에만 서면 염치없는 죄인이 되고 만다.

돈을 당장에 못 갚으니 오빠 한 맺힌 얘기라도 들어야 하는건데, 파렴치한 같이 그것도 힘들어서 오빠를 슬슬 피하고, 같잖은 선물이랍시며 오빠한테 택배나 투척하며, 죄책감을 씼어내려 하는 나.
오빠야 갚을 필요 없다. 받으려는 생각 없이줬다 하지만...

오빠가 아버지께 "나 죽어도 아무도 모를꺼 같다"
그런 얘길 했다고 하는 말을 동생 통해 들었을때, 마음은 아팠지만, 누구 말도 듣지 않는 오빠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 집으로 돌아가려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오빠가 데려다 주겠다며 급히 채비를 한다.
읍내 터미널까지만 데려다 줬으면 하는 맘이 굴뚝인데, 오빤 언제나처럼 내 집까지 데려다 줄 모양인가보다.

오빠랑 있는게 편치 않다. 죄인이 포승줄에 묶인채로 이송되는 기분이다. 죄인이 편하려고 하는게 도둑놈 심보기는 하지만...

고속도로에 올라 탔지만 공사중인 도로는 엄청 막히고 오빠는 명절도 아닌데, 이렇게 길 막히는 건 처음이라며 욕을 뱉고, 내내 속이 안 좋은지 배에 손을 얹고 인상을 쓴다. 숙취 해소제를 사다 줬더니 그건 잘 마셔 다행이다.

간신히 오빠네 동네 근처에 다다르고 나는 버스 타고 갈테니 여기까지만 태워줘도 좋다며 얘기하고 내렸다. 끼니를 챙겨 먹지 않는 오빠가 신경쓰여 함께 식당에 가자 해보지만 그냥 간단다.

미안함을 뒤로하고 버스칸에 몸을 실었다. 그제사 맘이 편해진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추어도 모르고 우매하게 언제나 돈을 받고 좋아라 하던 나는 이제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선에선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도우려 하지만, 도움받는 일은 꺼리게 되는 것 같다.
명분 없는 도움은 영혼을 저당 잡히게 되고, 목숨까지 내어 놓아야 할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도움은 사절이다. 피치 못할 만큼 힘들것이 아니라면.
내가 직접 하고 싶다.

그런 이유로 자립형 인간으로의 불타는 사투는 계속된다. 쭈욱~~

오빠의 생각이 바뀌어 고난이 전화위복이 되기를...

오빠가 평온하기를...

오빠가 자유롭기를...

메따를 보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