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간병사의 하루 "친절 베풀면 좋은 일 생겨요."

[퇴직 후 새 인생 개척 소시민] 종합병원 간병사(요양보호사) 장순녀 님

by 김부규
◈ 2008년(55세)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 2008년~2017년 인도 수도 뉴델리 안살 플라자 몰 3층 <서울식당> 운영
◈ 2017년(64세) 경기 부천시 여러 병원에서 간병사(요양보호사) 활동


장순녀.jpg 종합병원 간병사(요양보호사) 장순녀 님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초과해,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4일 발표한 '2025년 주민등록 인구통계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1084만822명으로 전체 주민등록 인구 5111만7378명 가운데 21.21%를 차지했다.


그만큼 간병 인력에 대한 수요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노인 입원 환자 중 상당수가 상시 돌봄이 필요하다. 종합병원에서 가족조차 감당하기 힘든 간병 수발을 오롯이 짊어지는 이는 간병사다.


특히 국내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도 활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1월 기준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자는 311만1천837명이다. 그러나 활동하는 인원은 2025년 6월 기준 22.9%에 그친다. 그중에서도 활동률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60대, 70대다. 60대는 30% 이상, 70대가 28% 이상 활동하고 있다. 노인 환자의 간병을 60, 70대 고령 인구가 도맡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은퇴 인력들이 유입될 전망이다.


환자의 생명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때로는 가족보다 더 깊은 유대를 맺으며 살아가는 70대 간병사 장순녀(73)씨를 지난 8일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 여성청소년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하루 24시간 병실에서 고된 돌봄 현장을 지키지만, 환자가 호전되어 퇴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IE003571436_STD.jpg ▲ 요양보호사 자격취득자 연령대별 현황 (2025년 6월 기준)


IE003571437_STD.jpg ▲ 요양보호사 연도별 자격취득자 활동률 추이 (2020~2025.6월)


▷ 한국에서 식당 자영업 하시다가 머나먼 인도까지 가셔서 '서울식당'을 운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인도 생활 이야기 부탁 드립니다.


"저는 경기도 부천시에서 아귀찜 식당을 하고 있었어요. 우리 조카가 인도 뉴델리에서 '서울식당'을 하다가 한국에 나와서 저한테 전화했어요. '고모! 제가 인도에서 식당 하는데 고모가 하시면 잘될 것 같아요.' 안 간다고 했더니 비행기표를 끊어놓은 거예요. 할 수 없이 따라갔어요. 식당에 손님이 별로 없더라고요. 우리 큰딸하고 사위를 불러서 인도 식당 사업에 동업하기로 했어요.


제가 주방을 꿰차고 네팔 사람인 주방장을 직접 가르쳤어요. 시장 채소, 김치 등 모두를 제가 직접 뛰면서 관리해 나갔어요. 음식 맛이 잡혀가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오고 인근 신한은행에서도 우리 식당에 와서 점심 먹고, 저녁에 와서 회식도 했어요. 점점 전 세계 사람이 다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인도에 와서 맛집을 찾으면 '서울식당'이 뜬다는 거예요. 또 여행사 가이드 한 40명이 우리 식당에 손님을 다 몰고 왔어요. 또 일본 여행 책자에까지 우리 식당이 맛집으로 올라갔어요.


처음에 가서 1년 동안은 고생을 많이 했죠. 제가 직접 발로 뛰니까 점점 나아지는 거예요. 우리 식당은 45평 정도의 크기에 홀이 있고 방이 따로 있었는데, 자리가 없어서 장사를 못 할 정도로 잘 됐어요.


그런데 한 10년쯤 지난 어느 날 큰딸과 사위가 갑자기 '치쿤구니야 바이러스' 병(모기에게 물려 걸리는 감염성 열병)에 걸렸어요. 덩치 큰 우리 사위가 대상포진까지 겹쳐서 걸리더라고요. 한 달 동안 치료 받고 나았어요. 어쩔 수 없이 가족 모두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그러고 2년 뒤에 코로나가 터졌었죠."


▷ 인도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 하나만 이야기해 주세요.


"한국에서 인도로 패키지 여행을 온 사람 중에 복통을 호소하는 교수님이 있었어요. 그분한테 발효시킨 매실 원액 반 컵과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넣어드렸어요. 바로 드시고 뱃속이 시원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5달러 치만 더 팔라고 하길래 팔지는 않고 그냥 드렸더니 공짜로 먹으면 낫지 않는다고 하면서 굳이 5달러를 놓고 갔어요. 이튿날 매실 가지고 간 분한테서 국제전화가 왔어요. '매실 먹고 우리 남편이 살아났는데, 풀을 뽑아놓으면 시들잖아요. 근데 물을 주면 조금씩 조금씩 살아나잖아요. 그렇게 살아났어요.' 선물로 뭘 하나 꼭 보내드린다고 해서 김 100장만 보내달라 했는데 1,000장을 보내주더라고요."


IE003571419_STD.jpg ▲ 두 모녀는 고되고 힘든 인도 생활이었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추억 속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사진 출처 : ①②③ 부산 대교공인중개사 이선희, ④장순녀


▷ 어떤 과정을 거쳐서 병원 간병사(요양보호사)를 하게 되셨나요?


"한국에 귀국하면 식당은 절대 안 한다고 애들한테 얘기했기 때문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활용해서 일을 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처음엔 조그만 재가복지센터에 소속되어서 일을 몇 개월 했어요. 그런 다음, 아는 동생이 있었는데 도와 달라고 하길래 큰 병원 요양원에 가서 일하게 되었어요. 그 동생한테서 일을 조금씩 배웠어요.


그 요양원에서 어떤 환자분이 '저 좀 도와주세요. 여사님 일하시는 거 보니까 제 마음에 쏙 들어요. 종합병원으로 갈 건데 저랑 같이 가요.' 그래서 따라간 거예요. 종합병원에 간병사로 가서는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남자 환자를 만나면 무조건 아버님, 여자분을 만나면 무조건 어머님이라고 불렀어요. 제가 더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훨씬 빨리 가까워져요."


▷ 병원 간병사 일은 어떤가요?


"간병사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해요. 하는 일마다 다 행복하긴 한데 여긴 또 다른 게 아프신 분이 병이 나아서 집에 가시는 거라 더 행복해요. 요양원으로 가시는 분도 계시는데 그분이 저한테 요양원에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면서 요양원에 가면 저처럼 그렇게 잘 안 해주니까 그게 걱정이라는 거예요.


간병사 일은 먼저 내가 간병사 일을 하겠다고 한국간병사협회 지역별 지회에 등록해야 해요. 그다음에 협회에서 전화가 오면 어디 병원, 어느 환자한테 가라고 전화가 와요. 그리로 가서 환자 돌보는 일을 하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몸 전체를 수건으로 닦아줘요. 오전 7시 10분에 아침밥이 오면 밥 드시게 도와드리는데 스스로 못 드시면 떠먹여 주기도 하고 오전, 오후가 비슷하게 돌아가요. 밤 9시가 되면 무조건 다 자요. 병실 전등을 다 꺼버려요. 잠자다가 환자 용변을 받든가 기저귀를 갈 수도 있어요. 또 수술해서 올라온 환자는 이튿날까지 밤잠을 못 자기도 해요. 거의 24시간 환자 옆에 붙어있어야 하는 일이에요.


환자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체위 변경'을 해드리는데 이거는 욕창(피부조직 괴사로 생긴 피부 궤양)을 예방하고, 호흡과 혈액순환에 좋아요. 투석하는 분이면 투석실로 모셔다드리고, 재활치료하는 분이면 재활치료실로 모시고 가요. 남자라 하더라도 나이가 어리면 나도 너 같은 애들이 있으니까 내가 말 놓을게 하고 바로 그냥 말을 터버려요. 그래야 일하기 편해요. 병원 간호사님과도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라 잘 지내는 게 좋아요.


환자 중에는 간병사가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방학 때는 더 많아요. 보호자들이 와 있지만 대변을 받아내질 못하잖아요. 제가 도와드려요. 그러면 전화번호 달라고 해요. 나중에 간병할 일 있으니 도와달라고 저한테 전화가 와요. 친절을 베풀면 좋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 현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있으셨다면?


"힘든 환자가 2명 있었어요. 그중에 몸 반 정도가 중풍이 든 80대 할아버지 환자 한 분이 있었어요. 말은 할 수 있었지만, 밥은 떠먹여 드려야 했어요. 가래 빼는 일은 간호사들이 와서 해줬고, 제가 체위 변경을 해야 하는데 덩치가 너무 커서 엄청 힘들더라고요. 성격이 안 좋은 환자라 내가 계속해야 하나 망설여지더라고요. 이튿날 다행히(?) 이 환자분이 요양원으로 가셨어요. 저는 안 따라갔어요. 아들이 전화가 왔어요. '여사님! 아버지가 여사님이 오셨으면 하는데 와주실 수 있으세요?', '저 못 가요. 다른 환자 벌써 맡았어요' 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일주일 돌보는 게 1년 같더라고요. 돈을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싫더라고요."


▷ 간병사로 일하시는 동안 보람된 일이 있으셨다면?


"인천 계양구에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어요. 제게 배정됐던 환자의 침대 바로 옆자리에 계시는 할아버지였어요. 뚱뚱하셨는데 보호자(겸 간병인) 할머니는 마르셨었죠. 할아버지가 변을 보셨는데 부부이지만 그걸 못 치우시는 거예요. 제가 옆에서 보다가 안타까워서 제가 (대신) 해드리겠다고 했어요. 할머니가 '어떻게 해? 어떻게 해?' 그러시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안 보이게 할게요.' 평생 남한테 안 보여줬으니까 두려운 거예요. '아버님! 옆으로 하세요.' 깔끔하게 정리해서 오물을 버리니까 일 잘한다고 칭찬해주셨어요.


그러고서 퇴원하셨는데 보름 있다가 새벽 5시에 할아버지가 쓰러졌다고 (제게 간병을 도와달라고) 전화가 왔어요. 바로 달려갔죠. 그분을 6개월 동안 돌봐드렸는데 그 후 돌아가셨어요. 자식들이 이모님, 이모님 하면서 대우를 정말 잘해줬어요. 돌아가실 때 자식들 다 보라고 불렀고, 나중엔 할머니와 딸만 남으라 했죠. 1시 넘어서 '딸아! 아버지 청각은 두 시간은 살아 있으니까, 귀에 대고 좋은 말 많이 해라'라고 알려줬죠. 할아버지 손톱을 보니까 파래지더라고요. 할머니께서 '장 여사는 우리 집의 은인이다. 내 딸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씀하시고, 장례식 끝나고 아들이 전화해서 '여사님! 제 전화번호 지우지 마세요'라며 또 연결될 거라고 했어요. 저한테 워낙 잘해 주셔서 저도 성심껏 해드린 거죠."


IE003571422_STD.jpg ▲ 장순녀 간병사가 일하는 종합병원. 장순녀 간병사는 병원은 일터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정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 이 직종의 전망은 어떻게 보세요? 앞으로 언제까지 일하실 생각인가요?


"괜찮다고 봐요. 의료용 로봇이 병원에 들어와 있긴 하지만 아직 병원이나 요양원에 간병사 로봇은 없잖아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은 간병사 손이 더 세밀하게 돌봐주니까 전망은 좋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77~78세까지는 더 해도 될 것 같아요."


▷ 간병사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은 어떤 준비를 미리 해야 할까요?


"저 같은 경우를 말씀드리면 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단 간병사협회에 등록해야 해요. 직업소개소를 통해서 간병사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없어도 되고 있으면 더 좋아요. 반드시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대신 요양원 간병사는 반드시 자격증이 있어야 해요."


▷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현실 조언이 있다면?


"첫째, 겁먹지 말고 시작해라. 시작하면 다 할 수 있다. 집에서 아기 돌보는 거랑 똑같아요. 내가 부모님 모신다고 생각하면 못 할 것도 없어요.


둘째, 환자를 남자나 여자로 보지 말고 환자로만 봐라. 처음 하는 분들은 거부감이 있겠지만 생각을 바꿔야 해요.


셋째, 간병사비 못 받는 일도 있으니 관리 잘해야 한다. 저도 100만 원 못 받고 있어요. 50대 남자 한 명이 죄송하다고 하면서 아직 안 주네요.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현재까지 총 65화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전 인터뷰 기사가 궁금하시면 <퇴직 후 나는 다른 일을 한다> 책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999879)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장순녀 간병사님은 1일 1식을 실천하시며,
새벽 04:30 기상하셔서 큰 공원에서 근력운동과 걷기운동을
1시간 동안 하시며 철저히 건강관리를 하신다고 했다.
얼굴과 피부가 팽팽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공을 들인 만큼 돌려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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