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것도 한계, 7.7:1 경쟁 뚫은 은퇴자 인생2막

[퇴직 후 새 인생 개척 소시민] 보건소 방역소독 기간제 근로자 정찬우님

by 김부규

◈ 20223년 6월 말 ○○시 공무직 정년퇴직
◈ 2024년 3월 1일 ○○시보건소 방역소독 기간제근로자 취업
◈ 자격증 : 방역관리사 1급(2024년), 지게차운전기능사(2025년)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에서 채용하는 기간제근로자는 그 종류가 다양하고 많다. 그러나 쉽고 편한 직종일수록 경쟁률이 10대 1 이상이라 합격하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바깥에서 일하고 많이 움직여야 하는 직종은 쉽게 합격할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60세 이상 지원자가 워낙 많아서 어떤 직종이건 만만하지 않다.

7.7대 1의 경쟁을 뚫고 3년 동안 방역소독 기간제 근로를 하는 정찬우(64) 은퇴자를 3월 초 그의 집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은퇴 후 쉬어보니 일하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글쓴이 말)

IE003600794_STD.jpg ▲정찬우 은퇴자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매, 자신감 넘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이는 은퇴 후 제2 인생을 성공적으로 개척한 분의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 은퇴 후 소감 한 말씀해 주세요.


"은퇴하고 10개월 쉬었거든요. 은퇴하기 전에는 은퇴 후에 재미있게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10달 쉬어보니까 할 게 없는 거예요. 노는 게 지겹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사회에서 이탈해서 딴 세상에 있는 것 같았어요. 이탈됐으니까, 혼자서 놀거나 친구들하고 놀 때는 좋지만 친구들이 마냥 같이 놀아줄 수는 없잖아요. 운동장에 가서 운동하고 오전에 끝내고 오면 오후부터는 혼자 있어야 하니까 이런 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이너스더라고요. 집에서 쉴 때는 왠지 모르게 내가 왜 이렇게 화창하고 좋은 날에 집에 있지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또 집에 아내랑 같이 있다 보니까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현직에 있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기에 아내는 편하게 쉬라고는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인생 2막으로 새로운 직장에 취직하고 나서는 현역 때처럼 일할 수 있으니까 시간도 잘 가고, 동료들하고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방역소독 하니까 정말 기분이 좋은 거예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일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거예요. 그걸 퇴직하고 1년 만에 느낀 거죠. 퇴직하고 나니까 기간제 8개월도 너무 절실한 거예요.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니까요. 그게 정말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니까요."


-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일을 하게 되셨나요?


"현직에 있을 때 34~35년 동안 열심히 일하다가 은퇴 후 딱 10개월 쉬어 보니까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직 몸과 마음은 청춘인데 제가 사회에서 도태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뭐든 일을 찾자는 쪽으로 생각하게 된 거예요. 집에 혼자 있으면 알게 모르게 고립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하고도 많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처음에는 몰랐죠. 신나게 놀아야지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 했는데 막상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3개월도 채 안 돼서 빨리 끝나버리더라고요. 여행 다니면 다 돈이잖아요. 가는 데마다 부담되죠. 연금도 많지 않으니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된 거예요.


제가 거주하는 시 홈페이지에서 일거리를 찾아봤죠. 2024년 1월 중순쯤 ○○시보건소 방역소독 기간제근로자 채용한다는 공고가 떴더라고요. 6~7가지 정도 서류를 준비해서 접수했어요. 처음에 준비한 대로 면접까지 잘 봐서 첫해 합격했어요. 작년에는 첫해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거의 다 떨어졌어요. 두 번째 해에 제가 왜 붙었는지 모르지만, 일단 성실을 바탕으로 열심히 일했고, 특히 지역 지리를 구석구석 골목길 일방통행까지 속속들이 잘 아니까 붙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방역소독 기간제근로자가 있는 것도 몰랐어요. 도움이 될까 싶어서 2024년에 방역 관리사 자격증도 취득해 봤는데 저는 합격했지만, 같은 자격증 있는 동료는 떨어졌어요."


IE003600799_STD.jpg ▲ 지방자치단체별 방역소독 기간제 근로자 채용 공고 / 시군 모두가 방역소독 기간제 근로자를 뽑는 것은 아니다. 시군별 채용 공고 확인 필요(출처 : 고양시, 용인시 홈페이지)


- 지금 하시는 일 소개 부탁합니다.


"보건소에서 방역소독 일을 하는 동료 4명이 한 조로 현장에 나가요. 1톤 6인승 더블캡 트럭 운전은 동료 간에 번갈아가면서 하고, 일은 역할에 따라 한 달 단위로 바꿔서 순환해가며 일하고 있어요. 아침에 보건소 약재 창고에서 약재를 받아서 배합할 거 있으면 배합하고 자기 구역 일터로 나가요.


보건소 방역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위생해충(모기, 파리 등)을 방제하고 취약지역을 소독하는 활동이에요. 주로 3~10월에 하수구, 정화조 등 연무·분무 소독, 유충구제 등을 실시해요. 방역은 연막(기름 사용), 연무(친환경), 분무 방역이 있는데 우리 시는 연무(주로 5월 이후)와 분무 방역을 주로 하고 있어요. 방역소독 방법은 민원 현장이나 위치, 또 날씨에 따라서 달라요. 분무방역은 아파트, 단독주택, 상가는 제외하고 연립주택 정화조 뚜껑 열고 분사하는 거예요.


IE003600800_STD.jpg ▲ 방역소독하는 모습


우리 일은 주 5일(월 ~ 금) 근무에 1일 8시간(09:00~18:00) 일하고, 휴식[점심] 시간은 12:00~13:00(1시간)예요. 그렇게 8개월 일하고 4개월 쉬는 거예요. 다행히 11월부터 2월까지 겨울에 쉬는 거니까 너무 좋죠."


- 나만의 건강 비결이 있으시다면?


"제 개인 운동으로 헬스랑 족구 두 개만 해요. 은퇴 전부터 아파트 헬스장 정기권 끊어서 새벽에 가서 땀 나도록 근력 운동하고 오전 7시 30분 쯤에 집에 와요. 아침밥으로 빵과 우유 먹고 출근하는 거죠. 족구장은 토요일만 가요. 10개월 쉬었을 때는 족구장에 매일 갔어요. 그리고 방역소독 일이 많이 걷는 거라 하루 2만 보까지 나오니까 평일에 족구장은 안 가요. 헬스장 다닌 지는 한 30년 된 것 같은데 배가 안 들어가요. 술을 좋아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 은퇴 후 나만의 취미생활이 있으신가요?


"은퇴 전 현역 시절에는 비박 백패킹(Bivouac Backpacking, 텐트 치지 않고 산에서 잠자는 배낭여행)을 많이 했었는데 퇴직하고 나니까 이것도 힘들어지더라고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간단한 등산만 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니까 족구에 더 많이 치중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족구를 너무 좋아해서 심판 자격증과 지도자 자격증까지 땄었거든요. 또 ○○시청 족구팀 감독도 좀 했었어요. 재미있었죠."


- 이 일을 하시는 동안 특별히 힘든 일이 있으셨다면?


"일 자체는 힘들지 않은데, 여름에 엄청 덥잖아요. 우리 일은 특성상 바깥에서 일해야 하니까 날씨는 더운데 무거운 거 끌고 다니면서 골목골목 누벼야 하는 거라 힘이 안 들 수가 없어요. 땀이 비 오듯 쏟아지지만, 냉방시설이 있는 방역 차량에 와서 시원한 바람 한번 쇠면 더운 거, 힘든 거 싹 가셔요. 일 끝나고 사무실 들어와서 샤워하고 커피 한잔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요.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예요."


- 이 직종은 어떤 매력(보람)이 있나요?


"거창하게 보람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이런 건 있어요. 아파트 벽에 벌레가 잔뜩 붙어 있는데 그것 좀 제거해 달라는 민원이 가끔 들어와요. 현장에 가서 연무 소독이나 분무소독 중 하나를 검토한 후에 적절한 방역소독을 해주거든요. 싹 없어지죠. 그때 민원인이 수고하셨다, 고맙다면서 음료수 하나 갖다 줘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면 그게 보람이죠. 그리고 이 일의 매력이라면 공무원과 똑같이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공휴일이면 쉰다는 거죠. 주말에 남들 쉴 때 같이 쉬고 남들 일할 때 같이 일하는 게 최고더라고요."


image.png


- 월 평균 수입과 두 분 월 평균 생활비는 어느 정도 되나요?


"방역소독 기간제근로자 월 수입은 세후 210~220만 원이에요. 거기에다 국민연금과 오래전에 가입한 개인연금이 있어서 모두 합하면 350만 원 정도 되니까 생활하는 데는 걱정 없어요. 아내가 하는 말이 문화생활, 외식비, 여행 경비 다 포함해서 한 300만 원은 있어야 생활이 된대요."


- 앞으로 언제까지 이 일을 하실 계획인가요?


"이 일을 햇수로 3년째 하고 있는데 건강만 허락한다면 70세까지는 하고 싶어요. 헬스나 족구 등으로 건강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70세까지 채용만 해주신다면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방역소독 기간제근로자 채용 경쟁률이 상당하더라고요. 12명 뽑는데 93명인가 지원했대요.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니까 경쟁률이 높은가 봐요."


- 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면 어떤 준비를 미리 해야 할까요?


"방역소독 관련 일은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한 직종은 아니에요. 저도 방역 관리사 자격증이 있지만 필수 자격증은 아니에요. 1종 보통 이상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돼요. 1톤 화물차 정도는 쉽게 운전할 수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어요."


IE003600798_STD.jpg ▲정찬우 은퇴자가 취득한 자격증 / 족구를 워낙 좋아해서 심판 자격증에 경기지도자 자격증까지 땄다. 좋아하면 뭐든 한다.


- 은퇴 후 평소 인생 후배들에게 이 얘기는 꼭 해주고 싶다 하는 현실 조언?


"첫째, 노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제가 퇴직하기 전에는 나도 좀 놀아보고 여행도 다녀보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3개월 지나니까 그게 싹 없어졌어요.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않나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는 데 한계에 도달한 거죠. 아내는 30년 넘게 열심히 일했는데 뭘 그렇게 불안해 하느냐고 해요. 알았다고 말은 하지만 뭔지 모르게 불안한 거예요. 나이를 먹을수록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요. 70세가 되면 모르겠지만 현재 60대라 앞으로 10년은 팔팔 날아다닐 텐데 이렇게 방치(?)돼도 되나 그런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둘째, 미래를 위해 재테크를 통해 노후 준비를 미리 해라.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등 공적연금 말고 현직에 있을 때 20~30대부터 개인연금이든 뭐든 노후를 위해 재테크를 시작하는 게 좋아요. 공적 연금에 개인 연금이 더해지면 더 윤택하게 노후를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국민연금에다가 오래 전에 개인연금 들어 놓은 걸 55세부터 종신으로 받을 수 있게 만들어 놨어요. 거기다가 다른 재테크도 계속 하고 있어서 아직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못 해 봤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현재까지 총 66화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전 인터뷰 기사가 궁금하시면 <퇴직 후 나는 다른 일을 한다> 책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999879)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