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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스케 Aug 08. 2020

흠뻑 젖은 티셔츠가 주는  어떤 '해방감'

영화 <밤쉘> - 여성은 고유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 때 가장 멋지다

감독: 제이 로치
장르: 드라마
개봉: 2020.07.08
국가: 미국
출연: 샤를리즈 테론, 니콜 키드먼, 마고 로비


“아무도 TV에서 중년의 여자가 땀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 “일어나서 한 번 돌아봐. 이제 치마를 걷어봐. TV는 시각 매체란 걸 잊어선 안 돼” 미국의 케이블 방송사 폭스 뉴스의 회장 로저 에일스가 여성 앵커들에게 한 말이다. 그는 인사권과 프로그램 편성권을 들먹이며 수많은 여성 언론인에게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른다. 그레천 칼슨, 메긴 켈리 등 앵커들은 세상에 폭탄선언(bombshell, ‘밤쉘’)을 한다.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4년 전, 2016년에 벌어진 언론계 미투운동을 그려낸다.

폭스 뉴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세 사람의 모습

그레천 칼슨은 50대 앵커다. 그는 사회에 대한 여성의 시선을 타파하기 위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로 카메라 앞에 선다. “여러분은 화장하지 않은 앵커를 보고 계십니다. 저는 오늘 화장을 아예 안 하고 나왔어요. 여성의 성상품화를 반대하기 때문이죠. 여러분도 나 자신을 찾으세요.” 이 장면을 본 회장 로저 에일스는 뉴스가 끝난 직후 바로 스튜디오로 찾아온다. 그리고 내뱉는 말, “너 제정신이야? 아무도 TV에서 중년의 여자가 땀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

결국 그레천 칼슨은 해고된다. 하지만 그는 지난 시간 줄곧 성희롱일삼아온 로저 에일스를 고소한다. 이에 메긴 켈리를 포함한 수많은 여성 언론인이 로저 에일스의 성범죄를 잇달아 고발한다. 미투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그레천 칼슨의 첫 폭로 이후, 뒤를 잇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없어서 그는 몹시 외롭고 괴로웠다. 그러나 폭스 뉴스의 간판 앵커 메긴 켈리가 증언을 결심하며 판도가 바뀌었다.  

해고돼 짐을 싸 나온 그레천 칼슨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영화 후반부, 메긴 켈리의 폭로를 집에서 지켜보는 그레천 칼슨의 모습이다. 그레천 칼슨은 거실에서 운동하고 있었다. 운동기구에 올라 노트북으로 메긴 켈리의 폭로를 지켜봤다. 미투운동의 연대가 일어나는 중요한 장면에서 감독은 왜 그레천 칼슨을 운동 중인 상태로 그렸을까? 그레천 칼슨의 겉모습에 힌트가 있다. 얼굴과 목에 송골송골 맺힌 땀, 흠뻑 젖은 회색 운동복이 눈에 띈다. 그는 맨얼굴에 땀을 쏟고 있다.


여성들의 연대가 벌어지는 순간, 땀에 젖은 중년 여성이 스크린에 등장하면서 관객들의 통쾌함과 해방감은 배가 된다. 나이가 들고 화장을 안 한 중년이 나와도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전할 수 있다는 감독의 신념과 자신감이 느껴지는 상징적 장면이다. “아무도 TV에서 중년의 여자가 땀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라고 단언하던 로저 에일스의 말은 틀렸다. 여성은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주체적으로 드러내고 존중받을 때 가장 멋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채 타인의 연대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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