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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스케 Oct 20. 2021

입 찢어진 베놈이 돌아다녀도 환영받는 곳

[작문]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도시(한겨레, 2019)

영화 '베놈' 중 한 장면 ⓒ소니픽쳐스코리아

지구는 인간의 행성이 아니다. ‘심비오트’의 행성이다. 적어도 영화 ‘베놈’ 세계관에서는 말이다. 심비오트는 외계 생명체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을 숙주로 삼아 살아간다. 영화 ‘베놈’은 우연히 지구에 온 심비오트 ‘베놈’이 겉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강력한 힘으로 뉴욕을 휘젓고 다니는 이야기다.


베놈이 들어간 인간 숙주는 평소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숙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또는 자신이 배고픈 경우 베놈은 본체를 드러낸다. 인간 형태를 하고 있지만, 키가 훨씬 크고 근육질이다. 몸은 온통 검은색 끈적이는 물질로 덮여있다. 찢어진 눈과 입, 셀 수 없이 많은 이빨, 기다란 혀까지 괴물이 따로 없다.


주목할 만한 점은 위급상황이 아닌데도 베놈이 오롯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베놈2’에서 베놈은 어떤 계기로 더 이상 숨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베놈이 누빌 수 있는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코스프레 클럽’에서만 베놈의 존재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베놈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만끽한다. 문제는 해당 장소를 벗어나기만 하면 베놈은 ‘비정상’이 된다는 것이다.

무지갯빛 깃발이 흔들리고 있다 ⓒpixabay

우리 사회에도 베놈과 같은 존재들이 있다. 도시 속 함께 살아가지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들의 존재가 인정되는 순간에만 눈에 띄는 사람들. 바로 성소수자다. 2호선 신촌역 성소수자 지지광고 훼손 사건부터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사건까지. 한국 사회는 아직 성소수자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1년에 한 번씩 화려한 모습으로 존재를 각인시키곤 한다. 특히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사회와 융화되는 상징적인 행사다. 문제는 일부 정치인들이 ‘거부할 권리’를 주장하며 “퀴어 퍼레이드는 도심 밖이 적절하다”는 혐오발언을 내뱉는다는 점이다. 성소수자 혐오는 코로나19와 겹치면서 퀴어들을 더더욱 보이지 않는 존재로 몰아갔다. 2020년 퀴어 축제는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개최됐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베놈은 코스프레 클럽에서 마이크를 쥐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유다.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멈춰야 한다.” 사람들은 환호한다. 이주민,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이 차별금지를 외칠 때 모든 이들이 환영해주는 날, 현실에서도 올까. 한국의 수도 서울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도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일상이 클럽, 퍼레이드가 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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